2002년 11월호

‘周易 경영’으로 회사 키우고 돈번 사람들

역학과 비즈니스의 신비로운 접점

  • 글: 허 헌 자유기고가 parkers49@hanmail.net

    입력2002-11-05 10: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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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가 뜨고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뜨고
    • 꽃이 피고 새가 날고 움직이고 바빠지고
    •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 운명처럼 만났다가 헤어지고 소문 되고
    • 아쉬워지고 헤매다 다시 시작하고 다시 계획하고
    • 우는 사람 웃는 사람 서로 다르게 같은 시간 속에
    •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 어두운 곳 밝은 곳도 앞서다가 뒤서다가
    •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춤을 추듯) 돌고(노래하며)
    • 다시 돌고 돌고 돌고 돌고….”
    ‘周易 경영’으로 회사 키우고 돈번 사람들
    록가수 전인권이 1988년 작사, 작곡한 노래 ‘돌고 돌고 돌고’다.

    어느 일요일 오후, 집에서 윤도현 밴드의 음반을 듣던 중 이 노래를 듣게 됐다. 예전에 전인권의 목소리로 듣던 노래를 윤도현의 목소리로 들어보니 또 다른 맛이 있다. 특히 가사가 귀에 쏙 들어왔는데, 과거에는 느끼지 못한 어떤 의미가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노래를 들으며 같이 흥얼거리다보니 묵은 걱정거리도 별게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기분 좋았던 일도 시시하게 여겨졌다.

    주역(周易)과 경영의 접점을 주제로 한 이 글을 쓰기 위해 만난 경영인, 컨설턴트, 경영연구소장들도 이 가사가 주는 의미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사업이 잘 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가 있다. 웃는 직원이 있고, 우는 직원이 있다. 때로는 기술력보다 운이 따라준 덕분에 사업에 성공할 때도 있다.

    인생은 플러스와 원점, 그리고 마이너스 지점을 일정한 주기로 오가며 흘러가는 그래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명리학을 공부한 경영인들은 물러설 때와 나아갈 때를 가리고, 조화를 존중하며, 자신의 분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운명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의 자세는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주 보고 투자 결정



    우리 주변엔 경영이라는 극히 합리적인 영역에 명리학이라는 다소 신비스럽고 엉뚱한 학문을 연결시키려고 애쓰는 경영인이 적지 않다. 직접 명리학을 공부해서 사원을 뽑을 때 사주를 보는 경영인도 있고,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명리학을 이용하는 경영연구소장도 있다. 연초엔 으레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한 해의 팔자를 보고 사업계획을 세우는 경영인이 있는가 하면, “아직 때가 아니다”는 말을 듣고 미련없이 사업을 접은 경영인도 있다.

    한 외환딜러는 1분 앞의 미래를 예측하는 비법을 배우려고 10년 동안 웬만한 도사란 도사는 다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 결과 소원대로 직관력을 터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했는데, 투자하는 곳마다 대박이 터져 거부가 됐다고 한다.

    경영 컨설턴트인 김경준 딜로이트 투쉬 이사는 최근 3년 동안 200개가 넘는 중소기업 CEO들을 접촉했다. 이들에게 경영과 투자에 관해 자문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상당수 중소기업 사장들이 투자를 결정할 때 사주를 본다는 사실이다. 자금과 인력, 국내외 투자여건 등 모든 부분에 대해 상의한 끝에 투자하기로 결심하고서도 막상 투자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이 오면 머뭇거린다는 것.

    불확실성 속에서 적지 않은 자금이 투입되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김이사가 보기엔 단순히 이런 점 때문에 투자 직전에 와서 망설이는 것 같진 않다고 한다. 어떤 기업의 사장은 먼저 운세를 보고 난 뒤 그 결과를 반영해 김이사에게 특정한 사업계획을 세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김이사는 “한국인은 누구에게나 마음 속 깊이 샤머니즘적 요소가 자리잡고 있어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경영자들도 이런 비합리적 영역을 중시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코스닥의 대표주자로, 국내 벤처기업 중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 평가받는 디지털 셋톱박스 전문업체 휴맥스는 인사관리를 외부 업체에 맡겼다. 조직관리의 핵심인 인사관리를 아웃소싱하는 기업은, 필자가 알기로는 거의 없다. 휴맥스의 변대규 사장은 현덕경영연구소 임성원 소장에게 100명이 넘는 휴맥스 직원의 관리를 맡겼다. 물론 변사장이 인사권마저 임소장에게 넘겨준 것은 아니다. 직원들의 목표관리, 자리 이동, 사내 커뮤니케이션 등 직원들이 회사 생활을 원만하게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임소장의 임무다.

    재미있는 것은 임소장이 호주머니 속에 늘 만세력을 넣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만세력이란 사주를 볼 때 사용하는 달력. 그는 이 만세력을 들추며 휴맥스 직원들의 사주를 봐준다. 그렇다고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변사장 곁에서 사주를 보는 것은 아니다. 임소장에게 명리학은 직원들과 격의없고 솔직한 대화를 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뿐이다.

    임소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 뒤 롯데그룹 기조실 인사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후 컨설팅업체에 근무할 때도 기업의 인사관리 프로젝트를 맡았다. 1997년 말, 휴맥스 변사장은 임소장에게 휴맥스의 인사관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했고, 임소장은 이를 받아들여 그후 지금까지 경기도 분당의 휴맥스 본사에서 사무실을 같이 쓰고 있다.

    변사장과 임소장은 대학시절 하숙집 선·후배였다. 변사장이 임소장의 서울대 4년 선배. 같은 하숙집에 기거했지만 두 사람은 전공(변사장은 공대 출신)도 다르고 성격도 딴판이었다. 실리적이고 결과를 중요시하는 변사장과 명리학을 공부하며 수행에 몰두하던 임소장은 서로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 지금도 변사장은 사주를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본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변사장은 임소장이 대기업과 컨설팅업체에 근무하면서 익힌 풍부한 경험을 인정, 임소장에게 인사관리를 맡겼다.

    어쨌든 휴맥스는 주목받는 벤처기업으로 성장했고, 이직률이 낮은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이와 같은 성과의 배경을 임소장 관점에서 풀어보면 경영학이나 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재미있는 얘기들이 나온다. “휴맥스 직원들은 30대 이후부터 운세가 좋다”거나 “변사장은 운세를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이라는 얘기, 사주를 본 뒤 스스로 직위를 낮춰 자신에게 맞는 부서로 옮겨간 직원들의 얘기 등 흥미진진한 것이 많다. 다음은 임소장과 나눈 대화.

    -역학을 인사관리에 접목시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겁니까.

    “산업심리학에서 인사관리는 입구(入口)를 관리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적성검사를 하는 것은 이를 통해 얻은 몇 가지 기초 정보를 갖고 사람을 배치하기 위해서죠. 적성에 맞춰서 직무를 줘야 하니까.

    그런데 역학은 심리학에서 제공한 적성검사 툴(tool)보다 우수합니다. 독보적이에요. 역학은 사람을 이해하게 할 뿐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시간에 따라 마인드가 바뀌거든요. 오늘은 이 일을 하고 싶어도 내일은 다른 일을 하고 싶을 수 있고, 또 그 일을 해야 운이 풀리기도 합니다.

    역학이 재미있는 것은 직원들이 저를 찾아와 상담하는 내용이 이미 그들의 사주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를 나가고 싶어하는 직원과 상담한 뒤 사주를 보면 그가 새로 시작할 사업 때문에 회사를 나가고 싶은지, 상사와의 갈등 때문인지, 아니면 본인의 에너지 흐름이 깨지면서 주위 사람들과 대화가 잘 안돼 퇴사를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주가 거짓말 탐지기는 아닙니다. 직원들의 얘기를 검증하기 위해 보는 게 아니에요. 저와 직원들은 서로를 신뢰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얘기합니다. 다만 사주에서 읽히는 데이터가 본인이 직접 얘기하는 내용과 일치하는 게 놀랍다는 겁니다.

    따라서 사장이 역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직원들이 원하거나 해야 하는 일을 찾아줄 수 있습니다. 휴맥스의 한 직원은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사주를 보고 난 뒤 마케팅 부서로 옮겼습니다. 처음에 그는 연구소 일이 자기에게 더 맞다고 주장했어요. 사실 사람은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합니다. 이 부분을 역학이 도와줄 수 있어요. 이 직원도 입사 초기엔 연구소 일이 맞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케팅 부서에 더 잘 맞도록 변했거든요. 제가 설득하고, 또 그 직원도 심사숙고한 뒤 자리를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은 옮긴 부서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합니다. 어떤 직원은 직위를 낮추는 희생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부서로 옮기기도 했어요.

    이 사례는 역학이 ‘소유의 마인드’보다 ‘존재의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우쳐 준다는 것이예요. 직위나 직책, 권력욕이 아니라 존재가치를 찾으면 사람은 운이 풀리고 행복해집니다. 순리대로 가는 것이죠. 이처럼 역학은 변화와 혼란의 순간에 논의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합니다.”

    ‘周易 경영’으로 회사 키우고 돈번 사람들

    역학이 기업의 인사 및 조직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는 이가 적지 않다. 기업의 신입사원 면접.

    -변대규 사장의 사주를 봐준 적이 있습니까.

    “변사장 사주는 본 적이 없어요. 변사장은 태어난 시(時)도 모릅니다. 사주에 관심이 없습니다. 임원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몇 있어요. 제가 볼 때 그런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바꿔나가는 부류입니다. 그런 스타일의 인물은 문제가 생겼을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할 수 있는 것부터 고쳐 나갑니다.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요. 스스로 수행(修行)하는 거죠. 도(道)를 닦는 겁니다. 목사님이나 스님은 사주가 안 나온다고 하는 것도 수행하는 분들이라 그렇습니다. 사주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사주를 볼 필요가 없는 거죠.

    하지만 휴맥스처럼 회사가 오너 체계이면 오너의 사주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역에는 제왕학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어요. 오너의 에너지 균형이 어그러지면 고집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고집을 부리다간 꺾이죠. 그래서 오너는 수양을 해야 합니다. 운세가 좋아도 담담하게, 나쁘면 좀더 겸손하게 남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이런 게 수행이에요.”

    -경영자의 운세가 좋으면 그 밑에도 좋은 사주를 가진 직원들이 모인다고 하던데요.

    “번듯한 직장에 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주가 좋아요. 휴맥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사 직원들의 사주를 보면 대개 30대가 넘어서면서 운이 좋아진다는 게 특징입니다. 초년보다는 중·후반의 운세가 좋은 직원이 많습니다. 이렇듯 초반에 고생하면서 세상의 어려움을 알고 후반에 풀리는 사주가 좋습니다. 발전하는 조직에는 이런 사람이 많아요.

    일 잘 하는 사람은 운세의 흐름이 좋습니다. 주위에서 일 못하는 사람으로 찍힌 직원은 운세가 좋지 않아요. 신기하죠. 하지만 명리학을 신비주의로만 볼 게 아닙니다. 명리학은 오행의 상생과 상극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여러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있어요. 인사·조직관리의 방법을 제시할 뿐 아니라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길러줍니다. 풀이가 족집게라는 게 아니에요. 사주를 풀이해주는 저와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들은 ‘내게 문제가 있구나’하고 인정합니다. 자기 인식이 깊어지는 것이죠.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바로 그 지점에서 여러가지 가능성이 생깁니다.”

    -한국의 샐러리맨들을 역학으로 분석하면 대개 어떤 사람들입니까.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목(木)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역학계에서는 한국을 목, 중국은 토(土), 일본은 화(火), 러시아는 수(水)로 분류합니다. 나무에 가장 중요한 것은 햇볕과 땅이에요. 회사원들에게 햇볕은 경영자가 제시하는 비전입니다. 샐러리맨은 사장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데, 이건 꼭 나쁘게 볼 일이 아닙니다. 나무는 생존을 위해 꼭 햇볕을 쬐야 하니까요.

    땅은 말 그대로 영역을 뜻합니다. 한국에서 동업하면 잘 안 된다고 하는 이유도 한 땅에 두 나무가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엉키거든요. 그러니 우리나라에선 기업합병이 잘 이뤄지지 않습니다. 발표는 거창하게 하지만 실속은 없어요. 땅을 공동 소유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한국 사람은 대개 단식에 강하고 복식에 약합니다. ‘깡통을 차더라도 내가 직접 하겠다’고 고집하는 것도 땅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죠.

    따라서 영역만 확실하게 주면 한국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일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아웃소싱 문화가 잘 정착하리라 믿습니다. 과정에 개입하지 않고 결과를 통제하는 것이 아웃소싱이죠. 아웃소싱한 업체에 특정 업무를 배타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오너십을 주고, 나중에 결과만 평가하면 됩니다. 공사장에서 인부들에게 일할 양을 주고 작업시간에 관계없이 임금은 약속한 대로 준다고 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일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적 조직의 원형을 아웃소싱 컨셉트에서 찾습니다.”

    -나무에겐 물(水)도 꼭 필요할 것 같은데요. 또한 금(金)이나 화(火)는 나무와 관계가 없습니까.

    “물은 월급, 교육, 사랑을 뜻합니다. 물은 나무를 살리게도 하지만 썩게도 합니다. 회사 주식이 많이 올라 부자가 된 직원들이 예전보다 일을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거죠. 또한 금(金)은 평가를, 화(火)는 명예와 인정을 뜻합니다.

    나라별로 또 사람별로 각각 다른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겁니다. 너는 금이고 나는 목이니까 다르다, 이걸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경영은 다름을 조화시켜 돌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금에게 아무리 목이 되라고 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맞는 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역학에서 말하는 조직관리의 포인트예요. 21세기에는 열등이나 우등, 혹은 옳다거나 그르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수평사회, 즉 각자가 주인공이 되는 세상이고, 이런 점에서 역학이 유용합니다.”

    -요즘 세상에도 역학이 중요하다는 이유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죠.

    “가령 역학은 컴퓨터와도 잘 맞습니다. 디지털은 0과 1이라는 전기신호로 데이터를 구성하죠. 역학 역시 음과 양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구성합니다. 다원주의, 모두가 주체가 되는 세상,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네트워크, 평화 등이 역학의 사상과 잘 어울려요. 때문에 중·고등학교 때부터 철학시간에 역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영대학에서도 역학 과목을 개설해서 가르치고, 경영과 역학을 접목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우리 역학계의 문제점이라면 사회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자기의 언어로만 역학을 풀어준다는 것입니다. 경영을 해본 사람들이 역학을 배우면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될 겁니다. 그러니 경영자는 역학을 필수로 공부해야 합니다. 역학을 미신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적 천박을 드러내는 겁니다. 경영자는 자기 분수를 알고, 물러 설 때와 나아갈 때를 알고, 조화를 존중하고,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을 곁에 둬야 합니다. 역학을 배우면 자기 조절 능력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사실 돈을 버는 것은 제대로 행동한 결과일 뿐입니다. 역학은 흉한 기운을 피하고 길한 기운을 좇는 데 의미가 있어요. 어쩌면 인생은 이승에서 받은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숙제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죠. 제게 부여된 숙제는 다른 사람에게 말로 보시(布施)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역학과 경영의 접합점은 우선 인재 채용에서 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에선 삼성이 가장 앞서간 기업인 듯하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이 신입사원 채용 때 관상가를 불러다 놓고 인재를 골랐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모 벤처기업의 L사장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 반드시 관상 보는 사람을 불러온다. L사장이 처음부터 관상학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2000년 어느 날 L사장은 벤처기업인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지인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가 인사를 건넸다. 얼굴을 보니 모르는 사람이었다. 얼떨결에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받았는데, 알고 보니 관상가였다.

    모임이 끝나갈 즈음 그 관상가가 L사장을 찾아와 “회사를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 뒤 회사를 찾아온 그는 사내를 한바퀴 돌아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호기심이 동한 L사장은 그를 데리고 회사를 돌며 임직원들을 소개했다. 사원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는 그의 표정이 다소 어두웠다. 그러던 그는 부사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그는 사장실로 돌아와 이렇게 털어놨다.

    “제가 처음 사장님을 봤을 때 ‘이 사람은 사장 얼굴이 아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명함을 받고 보니 ‘대표이사’라고 돼 있더군요. 제 공부가 부족해서 잘못 봤나 하면서도 직접 회사에 가보면 제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방문하고 싶다고 한 겁니다. 회사를 둘러보고 부사장을 만났을 때 제 공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부사장을 보니 누군가를 사장으로 만들어주는 관상이더군요. 그 사람 때문에 사장님이 지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겁니다.”

    이후 L사장은 신입사원이나 경력자를 채용할 때 그 관상가를 부르는 것은 물론, 이미 채용한 직원들의 사진이 붙어있는 이력서를 보여주며 의견을 구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은 6개월 안에 회사를 나간다” “이 직원은 한때 흔들리지만 오래 근무할 것” 등의 얘기를 L사장에게 했고, 이는 신기할 정도로 맞아들었다고 한다.

    요즘 미국 기업의 경영자들이 관심을 많이 쏟는 분야는 인사관리다. 직원을 뽑고 적절한 자리에 앉히는 것, 그리고 자리 배치가 잘못됐을 때는 그때그때 다른 곳으로 옮겨주는 것이 성공적인 경영을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딜로이트 투쉬 김경준 이사는 “한국 기업에선 인사관리에 명리학을 적용하는 것도 유효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패션제품 수출업체인 오수주식회사 구재인 사장은 지난 2년 동안 주역을 공부했다. 계룡산에서 명리학을 터득한 낭월스님 밑에서 1년을 공부했고, 그뒤 1년 동안 서울 시내 다른 선생들에게 관상학, 명리학 등을 배웠다. 구사장은 “좀더 일찍 명리학을 공부했다면 사업을 더 키울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제 사주를 보니 앞으로 대운이 트여 사업이 잘 될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2∼3년은 (운이) 안 좋았어요. 일찍 명리학을 공부했다면 무리한 사업 확장을 자제했을 겁니다. 제가 명리학을 공부할 기회를 얻은 것도 어쩌면 제 운이 좋아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구사장은 서울대 수학과 출신. 그는 “명리학은 공부하면 할수록 과학적인 학문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말한다. 명리학을 공부하기 전에는 자신의 판단이곧 사업의 원칙이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고 나서는 투자를 할 때도 우선 투자할 회사 사장의 사주를 보고 인성을 파악하거나 운의 흐름을 본다.

    “상대방의 사주를 봐서 윤리의식이나 도덕성이 부족한 것으로 나오면 절대로 같이 사업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뽑을 때도 도움이 되는데, 가령 사기꾼 기질이 있는지, 로비력이 좋은지를 단박에 알 수 있어요. 또한 사장의 운이 좋으면 역시 운이 좋은 직원들이 회사에 들어오고, 사장의 운이 나쁘면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운이 좋지 않은 직원과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돼 있습니다. 제가 스승으로 모셨던 낭월스님도 가끔 미래를 읽고 그에 맞는 대비책을 마련했지만, 결국 팔자대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탄식한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물론 저는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는 또 “여러 형제가 경영하는 재벌기업을 보면 운의 흐름이 좋은 사람이 결정한 사업은 잘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판단한 것은 실패로 귀결된다”고 했다. 재벌가의 자손들이라도 각자 팔자에 따라 할 일이 다르다는 얘기다.

    외환딜러 출신인 A씨(47)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도사’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도’를 터득해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그의 얘기를 100% 믿을 수는 없겠지만, 워낙 특이한 사례여서 소개한다.

    그는 돈도 ‘빽’도 없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는데, 지난 몇년 동안 탁월한 재테크로 1000억원대의 재산을 모았다. 지금은 이를 밑천삼아 작은 벤처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A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과 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를 했다. 초(秒) 단위로 수백억원의 자금이 오가는 일이어서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날 그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10초가 멀다 하고 급변하는 외환시장을 지켜보면서 그는 ‘1분 뒤의 상황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세상의 부(富)를 거머쥘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그렇다면 어떻게 1분 뒤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그는 회사생활 틈틈이 한국의 내로라하는 도사는 다 찾아다니며 만났다. 그들에게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며 묻고 또 물었다.

    아울러 통계학을 근간으로 미래를 예측해내는 서양의 예측술도 탐구했다. 이를 통해 그가 얻은 결론은 서양 것보다 한국 것이 더 잘 맞는다는 것. 서양의 예측술은 과거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지만, 한국의 도사들은 직감으로 미래를 예견한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끌었다. 특히 유명한 도사들은 대개 단전호흡을 한다는 것을 알고 따라한 결과 머리가 맑아지면서 직관력이 생겼다고 한다.

    A씨는 1997년부터 주식투자를 시작했는데, 오랜 공부의 덕택인지 그가 투자한 기업의 주가는 대부분 수십배씩 급등했다. 마치 미래를 예견한 듯 정확하게 대박 종목을 찍었던 것. 그러다 1999년 여름을 넘기면서 투자를 줄여갔고, 보유한 주식을 그해 말까지 모두 처분했다. 그때부터 2∼3년은 증시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주식을 팔고 나온 직후부터 주가가 하향세로 돌아섰다.

    “재산이 50억원 정도면 어디에 돈이 있고 부동산이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요. 100억원 정도면 다 파악하지는 못해도 대충은 기억납니다. 그러나 100억원이 넘어서면 서류를 일일이 챙겨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때쯤이면 재산이라는 게 행복과 직접 연관되지 않아요. 제가 이만한 재산을 일구고도 일에 몰두하는 것은 저 나름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기 위해서예요.”

    기업인 가운데 상당수가 겉으로는 명리학을 미신쯤으로 무시하지만, 속으로는 그 반대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일본인들의 혼네(本音·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겉 표정) 를 보는 듯했다.

    김경준 이사는 최근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그는 싱가포르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로부터 ‘손자병법을 경영에 적용한 사례’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었다. 듣다 보니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런 얘기가 생소한 백인들은 커다란 호기심을 보이며 경청했다. 평소 주역에 관심이 많은 그는 “주역도 경영에 접목시킨다면 한국형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계에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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