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 정부 출범 후 대통령 전세기 교체, 노선권 배분 놓고 티격태격
- 대한항공, 2002년부터 인·허가권 쥔 건교부에 초강수 법적 대응
- 법원, 2001년 이후 세 차례 대한항공 손 들어줘
- 모호한 규정, 기업 경쟁력만 약화
대한항공 전세기를 이용한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과 건설교통부와의 소송에서 잇단 승소로 대한항공은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오찬에는 청와대측에서 현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최고 실세로 불리는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과 윤병세 정책조정실장 등이 참석했다. 대한항공측에서는 이종희 총괄사장과 대통령 특별전세기 기장, 부기장과 남녀 승무원 40여명이 참석해 시종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대한항공 특별전세기를 이용해 이라크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고, 청와대측이 이에 대한 답례로 식사를 대접하고…. 일련의 ‘사건’들은 김대중 정부 5년간 온갖 ‘박해’를 받았다고 느끼는 대한항공으로선 실로 감격적인 일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한항공에겐 청와대의 이런 ‘정치적 해빙(解氷)’보다 지난해 말 법원에서 잇따라 취해진 ‘정치적 해빙’이 한층 더 의미 있어 보인다. 지난 정권에서 대한항공에 취해진 각종 제한과 규제 조치가 근거 없음을 법원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DJ 정부와의 질긴 악연
국내 항공업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대한항공은 1998년 DJ 정부 출범 이후 시련의 길을 걸었다. 물론 이 시련은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다. 역대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대한항공이 만년 야당이던 DJ 정부의 인사들과는 그다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던 것. 대한항공의 모그룹인 한진그룹의 고 조중훈 전 회장은 DJ측 인사들과는 뿌리깊은 악연을 맺고 있었다.
1973년 DJ 납치사건 때 일본 정치인들을 접촉해 일본정부가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문제 삼지 않게끔 막후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조 전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대선에서 DJ의 영원한 라이벌 YS(김영삼 전 대통령)를 반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DJ의 핵심 측근들은 집권 전부터 대한항공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러한 악연은 DJ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 특별전세기의 ‘교체’로 나타났다. 당시만 해도 역대 대통령의 해외 방문은 국적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맡는 게 당연시돼왔다. 그러나 1998년 11월 DJ 정부는 공개입찰 형식을 빌려 아시아나항공에 기회를 넘겨줬다. 이 사건은 이후 5년간 이어질 시련을 알리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물론 이런 시련의 원인을 ‘정치적’인 데서만 찾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한항공도 부실 경영과 잦은 사고로 시련을 자초한 면이 크다는 것. 그러나 반강제적인 경영진 퇴진,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이은 노선권 배분 차별은 항공사로선 치명적인 조치였다.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의 각종 규제와 제한으로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빈 것은 DJ의 권력누수 현상이 가시화하던 2002년경. 항공산업의 각종 인·허가권을 쥔 건교부를 상대로 대한항공이 법적 대응이란 초강수를 둔 것이다. 적자에 시달리던 대한항공으로서는 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건교부는 1999년 12월 대한항공의 중국 구이린(桂林), 우한(武漢), 쿤밍(昆明) 등 7개 노선권을 몰수했다. 노선권을 받은 뒤 1년간 취항하지 않았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다. 대한항공은 건교부의 처분이 위법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소송은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마침내 대한항공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 노선권 몰수는 재량권 남용”
대법원 2부(주심·김용담 대법관)는 지난해 11월26일 “서울-구이린 노선을 제외한 서울-우한 등 6개 노선에 대한 건교부의 노선면허 취소처분을 취소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건교부가 노선권 몰수의 근거로 내세운 ‘노선권 배분 후 1년 내 취항해야 한다’는 지침은 상위법에 근거가 없는 내부 사무처리 준칙에 불과해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었다.
대한항공이 이들 중국 노선권을 배분받은 것은 1998년 1월. 외환위기 직후여서 국제선 승객이 급감한 시기였다. 대한항공으로선 도저히 ‘1년 이내’에 취항할 수 없었고, 이런 사정을 건교부에도 미리 알렸다. 그런데도 건교부는 내부지침을 근거로 노선면허 취소를 강행했던 것. 대법원은 건교부의 조치가 재량권을 벗어난 행위라 판단했다.
당초 대한항공은 수익성이 높은 광저우(廣州) 창춘(長春) 등을 우선순위로 신청했다. 그러나 이 노선들은 모두 아시아나에 돌아갔고 대한항공에는 후순위로 신청한 구이린, 우한, 쿤밍, 우르무치 등이 배분됐다.
당시는 외환위기 직후로 항공시장이 얼어붙었고 특히 대한항공이 받은 신규 노선들은 수요가 극히 적었다. 더욱이 국가간 항공회담에서 노선권이 확보됐다 해도 취항하려면 양국 항공사가 협정을 맺어야 하는데, 대한항공의 중국측 파트너인 남방항공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노선권을 받은 지 1년 넘게 취항하지 못한 것.
그러자 건교부는 1999년 12월 내부지침인 ‘국제항공 정책방향’을 내세워 구이린 우한 쿤밍 등 7개 노선권을 몰수했다. 그중 구이린 노선은 아시아나에 넘겨줬다.
이에 대한항공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7월 1심 법원인 서울행정법원은 “(대한항공이) 7개 노선을 받고도 취항하지 않은 것은 대한항공의 귀책사유로 돌릴 수 없고, 노선배정 뒤 1년 내에 취항하지 않으면 노선권을 반려해야 한다는 규정도 사무처리 준칙에 불과해 법적 효력이 없다”며 대한항공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구이린 노선의 경우 아시아나가 이미 취항해 있고 제소기간이 경과했다는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노선의 몰수도 위법한 조치였음을 분명히 밝혔다.
대한항공은 소송이 진행중이던 2001년 7월 아시아나에 넘어간 구이린을 제외한 6개 노선에 대해 노선면허 없이 정기 전세기를 운항할 수 있도록 건교부의 허가를 받아 쿤밍, 우한, 텐진(天津), 대구-칭다오(淸島) 4개 노선을 운항해왔다.
“화물노선 면허취소 근거 없다”
대법원 판결이 있고 나서 10여일 후인 지난해 12월8일. 노 대통령이 대한항공 전세기를 이용해 이라크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이날, 법원은 대한항공에 또 하나의 선물을 안겼다.
서울고법 특별6부(부장판사·이동흡)는 건교부가 1999년 중국 상하이 공항 화물기 추락사고의 책임을 물어 상하이 화물노선 면허를 취소한 데 대해 대한항공이 낸 행정소송 항소심에서 “건교부가 면허 취소 사유로 삼은 승무원들의 중과실로 화물기가 추락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2003년 8월의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대한항공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노선면허 취소는 특정 항공사를 돕기 위한 공권력 남용으로 공정한 법의 심판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과잉 징계와 행정권 남용으로 선발 국적 항공사의 발목을 잡아 특정 항공사를 보살펴온 건교 행정에 철퇴를 내린 것”이라고 건교부를 강력 비판했다.
당초 건교부는 상하이 공항 화물기 추락사고 조사결과를 중국당국으로부터 넘겨받아 2001년 6월 대한항공의 상하이 화물노선 면허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면허 취소의 근거는 항공법 129조. 이 조항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하거나 항공 종사자의 선임·감독에 상당한 주의 의무를 게을리함으로써 항공기 사고가 발생한 때’에 면허 취소나 6개월 이내 기간 동안 사업 전부나 일부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1년 11월 건교부가 면허 취소 방침을 확정한 직후 대한항공은 곧바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초 2003년 8월 1심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은 “사고 조사 결과 기체결함은 없었지만 승무원의 중대한 과실이 인정된다”면서 건교부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크고 국가 위신이 추락한 만큼 면허 취소 처분이 정당하다는 것. 게다가 항공법에 규정된 면허 취소 사유에도 합당할 뿐 아니라 노선 중단에 따른 항공사의 손실보다 국가가 얻는 이득이 더 크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건교부의 잇단 무리수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1심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고 대한항공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될 경우 건교부의 당시 조치는 다분히 ‘정치적 판단’에서 이뤄진 것이었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한항공이 건교부 처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대목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노선면허 취소 사유에 해당할 정도의 ‘중대한 과실’이나 ‘주의의무를 게을리했다’는 확증이 없다는 점이다. 승무원의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항공기의 기계적 결함 등에 의해 발생한 사고였다는 것.
건교부가 처분의 근거로 삼은 중국민항총국의 조사보고서도 사고원인을 밝힐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단서인 비행기록장치(FDR·Flight Data Recorder)가 완전히 파손된 데다, 조종실의 음성기록장치(CVR·Cockpit Voice Recorder)에 녹음된 내용도 일부만 복원돼 불충분한 자료를 기초로 작성됐다는 것이 대한항공측의 주장이다. 비행분석, CVR 분석 등에 오류가 있고 항공기 기계결함 등에 대한 정밀 분석없이 이뤄진 조사결과에 불과한 만큼 이를 근거로 한 면허 취소 처분은 부당하다는 것.
특히 사고 당시 시행중이던 항공법 시행규칙에는 건교부의 면허 취소 처분 근거가 된 항공법 129조와 관련해 구체적인 처분 기준과 절차 규정이 없었다는 것이 대한항공의 주장이다.
1997년 8월에 발생한 대한항공기 괌 추락사고. 건교부는 이 사고 이후 마련한 새로운 사고관련 지침을 소급적용해 대한항공에 노선배분제한 조치를 취했다.
게다가 1999년 12월 신설된 시행규칙에는 사망자가 5인 이상 10인 미만인 경우 120일 사업 정지 처분을 내리고 있다. 이 규정을 적용하더라도 9명이 사망한 상하이 사고는 면허 취소가 아니라 면허 정지 처분만 가능하다는 것이 대한항공의 주장이다.
이 시행규칙은 2000년 9월에 개정됐다. 사망자가 10인 미만인 때는 30일 사업정지, 10인 이상 50인 미만인 때는 60일 사업정지로 제재수준이 완화된 것. 중상자 1인을 사망자 0.5인으로 본다는 신설규정까지 포함해 이 개정 규칙에 따르더라도 상하이 사고는 60일 사업정지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건교부는 1999년 12월 신설된 시행규칙의 부칙에는 행정처분기준에 관한 경과조치로 ‘이 규칙 시행 전의 위반행위에 대한 행정처분은 개정 규정에도 불구하고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반박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2001년에도 과징금 부과했다 패소
대한항공에 대한 건교부의 노선권 배분 제한조치는 2001년 5월1일자로 해제됐다. 그러나 이후 주요 노선 배분에서도 불이익을 당했다는 게 대한항공의 주장이다.
2001년 4월 건교부는 부산발 김포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김포공항 야간운행 통제시간을 어겼다는 이유로 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대한항공은 “폭설 때문에 운항지연이 불가피했다”며 과징금 부과처분취소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하기도 했다.
대한항공은 1997년 이후 잇달아 사고를 내 정부로부터 각종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일부 노선 운항감축 등의 처분은 감내할 수 있어도 항공사로선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국제선 노선권 배분 제한은 견디기 힘든 조치였다.
잇단 사고에 따른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건교부는 기존 항공법과 별도로 1999년 11월 ‘사고 항공사에 대한 노선배분 및 면허 등 제한 방침’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갔다.
이 지침에 따라 대한항공은 괌 사고에 대한 제재로 1999년 11월부터 1년간 노선권 배분기회를 박탈당했다. 한 달 뒤에 일어난 스텐스테드 공항 사고로 6개월의 제재기간이 추가되는 바람에 1999년 11월부터 2001년 4월까지 1년6개월 동안 노선권을 받지 못했다. 이 기간 중 건교부가 확보한 노선권은 모두 아시아나항공에 돌아갔다.
대한항공은 당시 건교부가 새로운 지침을 마련하기 전 발생한 괌 사고에 대해 이 지침을 소급적용해 노선배분제한 조치를 취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에 억눌려 이러한 주장을 강하게 펴기 어려웠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1년6개월 동안 항공회담이 여러 차례 열려 흑자 노선으로 꼽히는 중국과 일본 노선 상당수가 아시아나로 넘어갔다. 물론 대한항공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건교부는 “억지 논리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건교부와 대한항공 간 법적 분쟁의 불씨가 된 것은 건교부가 1999년 7월 내부지침으로 만든 ‘국제항공 정책방향’이다. 항공노선 배분 기준을 담은 이 ‘정책방향’은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이해당사자와 주무당국 간에 자의적 해석이 가능해 갈등의 소지가 다분했다.
특히 이 ‘정책방향’에는 ‘항공사간 운항 규모 비율이 최소한 6 대 4가 될 수 있는 공정경쟁 환경을 조속히 조성한다’는 문구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운항 규모’가 어떤 의미인지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 때문에 이 조항은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부가 기업의 규모를 일정한 비율을 정해놓고서 한 기업은 키우고 다른 기업은 인위적으로 성장을 제한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모호한 항공정책
아시아나항공 출범 후 건교부(당시 교통부)는 양 항공사에 대한 노선권 배분기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1990년 10월 ‘정기항공운송사업자 지도·육성지침’(이하 ‘육성지침’)을 수립, 시행했다. 이 지침은 1994년 8월 일부 내용이 개정되면서 명칭이 ‘국적 항공사 경쟁력 강화지침’(이하 ‘강화지침’)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침에는 노선권 배분기준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어 새로 확보된 노선권이 어느 항공사로 갈 것인지 사전에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화지침’은 1998년 7월 법령에 근거하지 않는 행정규제를 정비하라는 국무총리실 지침에 따라 폐지됐다. 건교부는 이후 아무 기준도 없이 노선권을 배분할 수는 없어 고민 끝에 1년 후 ‘정책방향’을 만들어 시행했다.
그러나 결국 모호한 법 규정에 권력의 입김이 개입하면서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행정당국에 대한 불신만 키운 채 ‘쥐와 고양이’의 법정싸움은 쥐의 압승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