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부동산투기사범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하지만 각종 편법으로 투기를 부추기고 폭리를 취하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여전히 ‘딴 세상’에 살고 있다. 이들의 비리실태를 모르면 부동산은 속고 사는 수밖에 없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기 전 현지 중개업자를 통해 충남 서산에 농지를 매입한 최영숙(37·인천시 부평구)씨는 지금도 수수료 생각만 하면 속이 쓰리다. 중개업자에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아니냐”고 항의하자 “땅, 특히 전답을 포함한 임야는 매매가 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일반 부동산에 비해 중개수수료를 많이 받는 것이 관행”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현행 부동산중개 수수료 요율표에 따르면 중개업자가 최씨에게 요구할 수 있는 수수료 ‘상한선’은 매매가의 0.9%인 90만원. 하지만 최씨는 법정수수료 운운했다가 중개업자에게 ‘촌사람’ 취급을 당했다. 매도자와 매수자에게 각각 1000만원씩 모두 2000만원의 수수료를 챙긴 중개업자의 수완에 최씨는 혀를 내둘렀다.
2년 전 충남 당진군 임야 2000평을 매입한 박현옥(39·서울 용산구)씨도 최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매매가 2억원에 중개업자가 요구한 수수료는 평당 1만원씩 쳐서 2000만원.
“손윗동서가 나보다 먼저 그 지역에 있는 땅 2필지를 샀는데, ‘그때도 평당 1만원씩 수수료를 쳐줬다’며 ‘원래 땅 거래는 그렇게 한다’고 조언했다. 땅 투자를 처음 한 우리 부부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터무니없는 수수료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중개업자의 배짱에 또 한번 놀랐다. 남편은 법적 근거를 들이대며 ‘안 사면 안 샀지 절대로 그 금액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오죽하면 남편이 ‘내가 법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하면서 전공까지 들먹였겠나. 엎치락뒤치락하다 900만원에 합의했다. 그 사람들이 ‘수수료를 이렇게 깎아줘보기는 처음’이라고 하더라.”
최씨와 박씨가 산 땅의 수수료는 매매가의 0.2~0.9% 내에서 중개의뢰인과 중개업자가 협의해 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토지와 임야, 농지 거래에서 이러한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공인중개사 노모(49)씨는 “땅 거래할 때 법대로 수수료를 받는 중개업자는 거의 없다. 이것은 업계의 오랜 전통이자 불문율”이라고 주장했다. 앞에 언급한 두 사람의 사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부동산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다.
“형님이 나한테만 내놓은 물건”
지난 7월 중순. 취재차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 지축역 인근 G부동산을 방문했다. 그린벨트 지역 내에 있는 주택이 딸린 대지를 구입하겠다고 하자 중개업자가 “집주인인 형님과는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형님이 나한테만 내놓은 물건이다”며 매수의사를 타진했다. 요구한 수수료는 법정한도액인 170여 만원의 6배에 육박하는 1000만원.
또 다른 부동산 두 곳에 들러 “좋은 물건이 있냐”고 묻자 G부동산과 동일한 ‘물건’을 내놓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부동산 중개업자도 “집주인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다. 믿고 거래해도 된다. 매수자가 되도록 싸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머지 한 곳의 부동산도 집주인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내세웠다. 부동산 두 곳이 제시한 수수료는 G부동산과 동일한 1000만원.
경기도 고양시 원흥동 ○○○번지와 ○○○-1번지, 두 필지의 전(田)과 답(沓). 앞서 언급한 세 명의 중개업자가 제시한 또 다른 물건이다. 이들 중개업자는 모두 이 땅의 주인과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 중개업자는 “땅 주인이 내가 잘 아는 동생인데 ‘이번 주까지 계약하면 땅을 팔고 그렇지 않으면 걷어들인다’고 했다”며 한시라도 빨리 계약할 것을 종용했다.
땅주인과 가까운 사이라고 주장하는 중개업자들의 말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등기부등본을 뗀 후 지주와 접촉을 시도했다.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에 살고 있는 지주 최모(43)씨는 전화통화에서 “지축동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자 중 알고 지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쪽 부동산 관계자와 전화통화를 한 사실조차 없으며 (고양시) 행신동에 있는 한 부동산업자에게 3개월 전 땅을 내놓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고양시 삼송동 ○○○ - ○. 물건 소재지 인근 중개업자는 “내 친구인 K사장 장모의 땅”이라고 소개했다. 이 땅의 등기부등본을 떼봤다. 소유주는 1954년생 여성이었다. 우리 나이로 쉰둘. 이 물건을 소개한 중개업자는 50대 초반의 남자였다.
등기부등본을 들고 중개업자를 찾아가 “땅주인이 스무 살에 아이를 낳았다 해도 그 딸이 올해 30대 초반이다. 지주의 딸이 스무 살 남짓 연상인 김 사장(중개업자) 친구와 결혼했냐”고 물었다. 중개업자는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아, 참.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장모가 아니라 고모라고 했던 거 같은데” 하고 말을 바꿨다.
중개업자들은 한결같이 지주와 절친한 관계임을 강조했다. 이는 매수자에게 ‘물건’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매매를 성사시키기 위한 전략 중 하나다. 하지만 중개업자들의 거짓말은 단번에 들통났다.
“그까짓 것 신경 안 써도 돼요”
8월말 정부의 부동산 대책발표를 앞두고 아파트 시장은 잠잠해진 반면 전국의 땅투기 열풍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정부가 각종 지역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땅값은 하루가 다르게 뜀박질하고 있다.
정부는 땅값이 오르자 무분별한 땅 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넓혀 나갔다. 외지인은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 농지·임야 구입이 금지돼 있다. 세대주 및 세대원 모두 6개월 이상 해당지역에 거주해야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땅을 구입할 수 있다. 현재 전국 토지의 20.9%(면적기준 63억3000만평)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다. 하지만 중개업자는 정부의 정책과 규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온갖 편법을 동원해 외지인에게 땅 매매를 알선하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필자는 앞서 언급한 고양시 원흥동과 삼송동의 농지를 매입할 자격이 없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개업자는 “그까짓 것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며 몇 가지 편법을 제시했다.
중개업자는 먼저 근저당을 설정하는 것이 간단하고 안전한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땅값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근저당설정을 한 후 해당지역에 주소지를 옮겨 ‘서류상’ 6개월 거주한 뒤 토지거래허가를 받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중개업자는 이 방법이 전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애용’하는 편법 1순위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만약 자녀가 학교에 다니거나 주소이전으로 기존 부동산(아파트 또는 주택)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에 차질을 빚어 주소지를 옮길 수 없는 처지라면 근저당설정 또는 가압류 후 경매에 넘겨 낙찰받는 방법을 동원하면 된다고 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도 경매를 통한 취득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었다.
편법 토지매매는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7월30일, 경기도 일대를 둘러보았다. 오산, 평택, 기흥, 화성, 용인시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같은 방법을 제시했다. 영업방법도 타 지역 중개업자들의 ‘판박이’였다.
며칠 만에 두 배로 뛴 땅값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올 들어 6월까지 전국 땅값은 2.672%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2.464%보다 0.2%포인트가량 높은 것이다. 6월 상승률은 0.798%로 올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토지시장의 위기경보 수준을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7월21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6월 부동산시장 조기경보시스템(EWS) 점검회의 결과 향후 1년 이내 토지시장 전망이 한 달 전보다 한 단계 높은 주의(S-3) 단계로 상향 조정됐다. 특히 토지시장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기업도시 추진 등으로 지가(地價) 불안 가능성이 두드러진 것으로 판단됐다.
지역별로는 충남(4.73%) 대전(3.72%) 서울(3.40%) 경기(3.38%) 인천(2.97%) 등이 상승했다. 특히 그동안 땅값이 안정세를 보이던 광주(지난해 연간 상승률 0.68%), 전북(0.70%), 전남(0.93%) 등 호남권의 상반기 오름폭도 1.10%, 0.54%, 0.82%로 지난 한 해 수준에 이르렀거나 이미 능가해 전국적인 부동산 열풍을 실감케 했다.
필자는 취재 도중 지인 김모(45·경기도 고양시)씨가 땅을 구입할 의사를 밝히기에 7월 하순 김씨 부부를 따라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를 방문했다. 김씨가 “쓸 만한 땅이 있냐”고 묻자 중개업자 배모씨는 먼저 실수요자인지부터 살폈다. ‘진짜 손님’이라고 판단했는지 그는 물건을 내놓기 시작했다.
“인근에 이보다 더 좋은 땅이 없다. 지목은 답(沓)이다. 외곽순환도로 IC와 연결될 예정인 도로에 접해 있다. 은평뉴타운과 지축동 사람들이 이곳 IC를 이용하게 된다. 평당 250만원이면 아주 싼 가격이다. 8월말 은평뉴타운 2지구 보상금이 지급되기 시작해 엄청나게 돈이 풀릴 예정이다. 그 사람들은 또다시 땅에 돈을 묻는다. 그렇다고 멀리 가서 땅을 사겠나. 보상금 나오기 전에 이 땅을 빨리 사둬라. 그 사람들이 달려들면 평당 100만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김씨가 배씨에게 해당 물건의 지적도를 요구하면서 “시세가 250만원이냐”고 되물었다. 배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김씨가 할말이 없다는 듯 배씨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당신이 소개한 물건의 바로 옆에 있는 땅을 보름 전에 120만원에 계약했고 어제 중도금을 치렀다. 불과 며칠 만에 땅값이 두 배가 넘게 뛰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그 땅도 내가 사려고 했기 때문에 지주가 얼마에 내놓은 줄 다 알고 있다.”
배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위 ‘인정작업’을 하다 현장에서 들킨 것이다. 인정작업이란 지주가 내놓은 가격에 중개업자가 매도가를 부풀려 차익을 챙기는 수법을 말한다. 말하자면 지주가 중개업자에게 “평당 100만원만 손에 쥐어달라. 얼마를 더 받든지 그것은 중개업자 몫이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매도자는 중개업자에게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매도가를 부풀린 차익이 곧 수수료가 되기 때문이다. 목돈을 손에 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중개업자는 인정작업 물건에 대해 눈에 불을 켜고 ‘작업’을 한다.
인정작업은 토지나 상가 거래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방에 있는 땅을 ‘작업’해 팔았다”거나 “상가나 점포를 팔아서 한몫 챙겼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개업자들은 대부분 인정작업을 통해 거액의 수수료를 챙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는 중개업자의 매도호가 조작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배씨가 소개한 물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김씨는 “중개업자가 해도해도 너무한다. 평당 100만원이 넘게 부풀려 차익을 챙기려 한다. 땅값 올리는 ‘원료’는 정부가 제공하고 중개업자가 적절히 ‘요리’해 전국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고 지적했다.
땅투기의 고수들은 현지에서 오랫동안 영업한 토박이 중개업소를 선호한다. 인정작업 금액이 ‘떴다방’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인정작업을 안하는 대신 수수료를 많이 요구하는 중개업소를 선호한다. 인정작업 된 가격에 땅을 사는 것보다 수수료를 더 주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국세청 부동산 투기 대책반 직원들이 판교 중개업소를 돌며 청약통장 불법거래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기도 A시에 임야 2만3000평을 소유한 Y씨는 이 지역이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자 인근 부동산에 물건을 내놓았다. 중개업자는 인정작업을 요구했다. Y씨는 입금가로 평당 8만원을 지정했다. 중개업자는 ‘덩치’가 크니 “평당 1만원만 붙여서 팔겠다”고 했다. 중개업자의 뜻대로 거래가 성사될 경우 중개업자는 2억3000만원을 챙기게 된다.
“주변 시세와 땅의 가치가 8만원을 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중개업자의 인정작업에 흔쾌히 동의했다. 지주는 수수료가 없어서 좋고 중개업자는 능력에 따라 목돈을 손에 쥘 수 있어서 좋다. 양쪽 다 이익 아닌가. 물론 인정작업 과정을 통해 땅값이 오르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땅을 팔면 그만이다. 이후에 그 땅이 오르는 것과 상관없다. 중개수수료나 다름없는 2억3000만원은 매도가에 포함되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는 지주인 내가 납부하기로 합의했다.”
경기도 북부에 대규모 땅을 소유하고 있는 K씨(66)는 지난해 초 부동산 소재지 인근 중개업소에 토지 매각을 의뢰했다. 지주의 매도 호가는 200억원. 이 물건은 서울 강남 대형 부동산중개업소에 삽시간에 뿌려졌다. 서울과 수도권, 지방 할 것 없이 덩치가 큰 부동산은 서울 강남 중개업소로 집합한다. 매수자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오랜 ‘산고’ 끝에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거래가는 150억원. K씨는 수수료로 5억원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다.
“‘딸린 식구(직원)가 많으니 부동산 수수료를 더 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했다. 토지를 매각하는 과정에 중개업자와 브로커 등 총 7명이 관여해 매매가 이뤄졌다. 대규모 토지를 거래하는 과정에서 법정수수료 운운하는 지주는 없다. 소규모 부동산과는 달리 이런 매물은 자주 시장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도 아니어서 높은 수수료를 요구한다. 결국 매도자는 땅값에 수수료를 포함시켜 매도가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고, 이것이 땅값을 올리는 데 한몫 한다.”
“내가 급해 두 배 줬다”
지난 6월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아파트 37평형을 매입한 여모(34)씨는 중개수수료로 법정수수료에 해당하는 매매가의 0.4%(2억원 이상 6억원 미만 매매나 교환시 적용되는 요율)를 지급했다. 여씨와 중개업자 모두 법정수수료 외에 더 주고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개업자는 매수자에게 중개수수료에 대한 영수증을 발급했다. 부동산 거래에 따른 수수료를 ‘법대로’ 적용한 것이다.
한마디로 수수료에 대한 잡음 없이 ‘쿨’하게 부동산 거래가 성사됐다. 그러나 여씨는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매도할 때는 중개업자에게 법정수수료의 두 배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살고 있던 아파트가 팔리기 전 새 집을 계약한 탓에 기존의 아파트를 빨리 처분해야 잔금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매도자인 내가 급해 두 배를 준 것이다. 이 경우 수수료를 더 얹어주는 것은 널리 알려진 부동산 거래 상식이다. 중개업자가 수수료를 한푼이라도 더 챙길 수 있는 물건을 매수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예상대로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쉽게 팔아치울 수 있었다.”
김씨의 경우처럼 아파트를 사고파는 것이 우리나라 부동산 거래의 보편적인 행태다. 아파트 매매 및 전세 등에 대한 수수료는 법정 금액 한도 내에서 이뤄지는 반면 월세는 예외에 속한다.
김모(39·서울 강남)씨는 지난 2월말 보증금 3000만원, 월세 108만원에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월세 수수료는 최초 지급한 보증금과 계약기간의 월세 총액을 합산한 금액을 거래금액으로 산정, 이에 해당하는 수수료율을 적용한다. 김씨가 부담해야 할 법정수수료 는 23만여 원. 한도액인 30만원 이상 받을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지만 중개업자는 “월세는 법정수수료가 아닌 전세가로 환산해 받고 있다”며 70만원을 요구했다.
김씨가 영수증을 요구하자 중개업자는 거절하며 “이것은 이 동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부동산 업계의 관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중개업자가 수수료에 대한 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개업자가 법정수수료보다 과다한 수수료를 받은 경우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영수증을 첨부해 관할 구청에 신고하면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소유한 상가지만 이것이 내 물건인지 부동산 것인지 헛갈릴 때가 많다. 중개업자가 마치 자기 물건처럼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1호선 인천 부평역 맞은편 1급 상권에 상가건물을 소유한 박모(57)씨의 말이다. 그는 “중개업자에게 상가 임대를 의뢰할 때마다 속이 뒤집어진다”고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보증금 5000만원, 월 300만원에 상가를 내놓으면 중개업자가 임차인에게 ‘주인은 가격절충이 안 된다고 못박았는데 내가 알아서 깎아줄 테니 수수료를 더 얹어달라’고 제안한다. 임차인은 수수료를 더 주는 게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대부분 중개업자의 제안에 동의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주인에게 수수료를 더 받고 비싸게 세를 놓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문 실정이다. 시세는 중개업자의 ‘입’에 달려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시세가 주인이 내놓은 가격보다 낮다고 우기는 중개업자를 당해낼 상가주인은 그리 많지 않다. 인근 중개업자끼리 짜고 ‘왕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과 강북을 가리지 않고 우뚝 선 대형 건물들. 이런 건물이 매매될 때 오가는 수수료는 얼마나 될까. 국내 대형 부동산 거래 물량의 다수를 소화하고 있는 ‘ERA코리아’ 조형래 과장은 “500억원짜리 물건은 매매가의 1.5% 정도, 1000억원대 물건은 매매가의 1~2%를 받는 것이 관행”이라며 “대형 부동산 거래시엔 수수료가 아니라 건물에 대한 평가 및 컨설팅에 따른 비용으로 받는다”고 설명했다. 규정에 따르면 1000억원짜리 건물의 법정수수료는 0.9%를 넘지 못한다. 따라서 한도액이 9000만원에 불과하지만, 이 같은 사정으로 실제 수수료는 10억~20억원가량 한다.
‘보따리장수’ 통해 ‘껌값’에 계약
사업가 A씨는 지난해 연말 수도권에 있는 상가건물을 200억원에 처분했다. 매도 호가는 240억원. 중개수수료는 3억원을 지급했다. 이 중 법정수수료 한도액인 0.9%에 대해서는 수수료에 따른 세금계산서를, 나머지 금액은 부동산 중개업이 아닌 다른 업종의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았다고 한다.
“대형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는 중개업소는 대부분 두 개의 사업자등록증을 갖고 있다. 하나는 부동산 중개업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동산 컨설팅 관련업이다. 법정수수료보다 많이 받으면 행정처분은 물론 중개업자 자격 취득이 취소되니까 또 다른 사업자로 등록해 법망을 피해 고액의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A씨는 이 물건을 매각한 직후 서울 강남 요지에 상가건물을 매입했다. 매매가는 200억원. A씨는 이 건물의 중개수수료로 2000만원을 지급했다. 업계 관례대로라면 수수료로 최하 2억~3억원을 지급해야 하지만 속칭 ‘보따리장수’를 통해 ‘껌값’에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수첩 하나 달랑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업계에서 이런 사람을 브로커나 ‘보따리장수’라고 부른다. 매도·매수 의뢰자 이름이 빼곡히 적힌 수첩이 그 사람 밥줄이다. 대형 부동산 중개업소를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수집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그 바닥에서 신용을 얻어 매도·매수자를 확보한 경우도 있다.”
대검찰청은 7월7일 건설교통부, 국세청, 경찰청,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부동산투기사범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이동기 대검 형사부장)를 꾸려 앞으로 6개월 동안 부동산 투기사범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를 위해 39개 전국 검찰청에 합동수사부를 설치하고 주로 특수부 검사들을 수사에 투입하기로 했다. 검찰의 부동산투기 단속은 1990년 대검 중수부의 합동단속 이후 15년 만이다.
검찰의 주요 단속대상은 부동산 투기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전주(錢主)와 부동산 컨설팅·개발업체 등 이른바 ‘기획부동산업자’와 행정중심 복합도시·신도시 건설 예정지역에서 활동하는 부동산 중개업자, 투기꾼과 결탁한 공무원 등이다. 검찰은 허위·과장 광고로 투자자를 모아 가치가 낮은 부동산을 고가에 팔거나, 등기 없이 전매해 시세조종이나 무허가개발을 하거나, 양도소득세를 포탈하는 행위 등을 집중 단속할 방침이라고 한다.
또 개발예정 지역에서의 무등록 중개업, 위장전입, 명의신탁, 중개수수료 과다징수 등도 단속 대상이다. 공무원의 개발계획 누설이나 불법 토지분할 허가 행위도 중점 단속하기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단속을 ‘투기와의 전쟁’이라고 불러도 좋다”며 “연말까지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기간을 연장해 투기 억제에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취재 중(7월 초~8월 초)에 만난 중개업자들은 검찰의 투기근절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검찰 발표내용에 아랑곳하지 않고 ‘본업’에 충실했다. 일부 중개업자들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여전히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고 있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정부가 각종 규제와 대책을 수립하며 숨차게 뛰어갈 때 중개업자는 마치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식으로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정부는 언제쯤 ‘나는 놈’의 ‘날개’를 제대로 부러뜨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