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의 블루레이는 경쟁사보다 큰 저장 용량이 자랑거리다. 기존 DVD 저장 용량의 6∼10배에 달한다. 파장이 짧은 청색 레이저를 사용하고 2개의 기록층을 만드는 ‘듀얼 레이어’ 방식을 채택, 저장 공간을 획기적으로 늘린 것이다. 문제는 가격이다. 블루레이 전용 DVD 플레이어를 별도로 구매해야 할 뿐 아니라, 블루레이 DVD 타이틀 1장 값도 10만원을 호가한다.
도시바의 HD DVD는 고화질 DVD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DVD 기술의 연장선에서 나왔다. 블루레이보다 저장 용량은 다소 적지만, 기존 DVD 플레이어와 호환이 가능하다. 가격도 저렴하다. 기존 DVD 생산 설비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년 전 VHS 전쟁의 교훈은 세력 싸움에서 밀리면, 표준 전쟁에서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점. 이를 잘 알기에 소니와 도시바는 세력 규합에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력화 대상에는 DVD 플레이어를 만들어줄 가전업체, DVD 타이틀을 공급해줄 게임기업체, 영화사와 같은 콘텐츠업체가 망라된다.
소니는 삼성·필립스·LG·샤프 등 세계적인 전자업체와 디즈니·21세기폭스·파라마운트·워너브라더스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우군으로 확보했다. 또 소니가 만드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3의 타이틀 포맷을 블루레이로 정했다. 도시바는 마이크로소프트·NEC·산요와 함께 유니버설스튜디오·워너브라더스 등을 끌어들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임기 X박스360의 게임 타이틀 포맷은 HD DVD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한 세력을 유지해온 두 진영에 균열이 시작됐다. 결정타는 할리우드 최대 영화사 워너브라더스가 날렸다. 양쪽 포맷을 모두 지원해온 워너브라더스가 앞으로는 블루레이만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두 포맷을 다 지원하기에는 DVD 타이틀 생산 비용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이제 HD DVD를 지원하는 메이저 영화사는 유니버설스튜디오밖에 남지 않았다. 콘텐츠 없는 차세대 저장장치를 누가 사겠느냐며 전문가들은 블루레이의 승리를 점친다.
그래도 이번 기술 전쟁에서는 소니의 ‘완승’을 장담할 수 없다.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초고속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로 DVD가 아닌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대세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차세대 DVD 시장 자체가 쪼그라든다면, 승리도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