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은 싫고 스티브는 좋아하는’, 두 사람에 대한 미묘한 감정 차이는 컴퓨팅과 인터넷 애호가들 사이에 적잖게 감지된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빌과 달리 태어나자마자 가난한 집안에 입양된 스티브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일까? 아니다. 단순한 취향으로 넘길 수 없는 컴퓨터 30년 역사와 애환이 두 사람에 대한 호불호 속에 녹아 있다. 이것은 IT산업을 이해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지난 30년 컴퓨터 역사는 MS 제국이 건설되는 시기의 기록이었다. 다시 말하면 수많은 벤처와 기업들이 MS에 무릎을 꿇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패자의 시각에서는 실패 연속의 역사였다. MS는 시장의 위험 부담을 감수하기보다 뒤늦게 제품을 내놓고 역전하는 방법을 즐긴다. 초기 PC 운용체계도 MS가 개발한 것이 아니었다. 빌은 IBM이 PC 사업 진출을 위해 운용체계를 찾는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Q-DOS’라는 제품을 인수해 납품했다. Q-DOS는 모방 제품이었고 버그도 많았다. MS의 DOS는 경쟁사 제품 값의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해 많이 팔렸고 ‘표준’이 되었다. MS는 ‘윈도 95’라는 제품으로 또 한번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스티브는 애플 ‘매킨토시’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도용한 것이라며 격노했지만, 시장은 빌의 편이었다. 빌이 확고부동한 세계 부호 1위로 등극하던 때다. 한때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했던 넷스케이프도 MS가 윈도에 ‘익스플로러’를 끼워 파는 전략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반면 스티브는 무모하리만큼 혁신적인 제품에 집착했다. 혈기 왕성한 청년 스티브는 시장성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는 결국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고 만다. 스티브는 1998년 ‘임시’라는 꼬리표를 달고 파산 직전의 애플 CEO에 복귀한다. 이어 ‘아이팟터치’ ‘아이폰’은 연이어 대박을 터뜨렸다. 조만간 ‘태블릿PC’를 내놓을 것이 알려지면서 애플의 주가는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창의성에 대한 스티브의 고집은 세상을 바꾸는 제품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신선한 감동을 선사했다. 스티브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빌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유일한 존재일지 모른다.
신은 두 사람을 같은 시대에 살게 했다. 시대는 사람을 허락한다. 20세기 말은 ‘표준’의 중요성을 가르친 빌 게이츠를 선택했다면, 21세기 초는 ‘혁신’의 스티브 잡스를 원한다. 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제 구현할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했다. 빌과 스티브에 대한 호불호는 역사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