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이면 술자리와 관련된 뉴스가 늘어난다. 대다수 기사는 과음을 경고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술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도 이상으로 많이 마신다. 술과 사람의 몸은 서로를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숙명적 관계일 수 있다.
술은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음주운전 소식은 연일 언론에 오르고 있다. 연말이면 더하다. 음주운전자가 단속에 불만을 품고 순찰차와 파출소 기물을 부숴버렸다는 소식,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자 분신을 기도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 여성 연예인은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다. 아랍계 최초로 미스 USA가 된 여성은 음주운전으로 체포되었다고 한다. 경찰청은 음주운전 관련 교통사고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북 지방경찰청은 2010년 도내 교통사고 사망자 6명 중 1명이 음주운전자라고 했다.
술자리가 잦은 이맘때면 으레 음주운전 근절 캠페인이 펼쳐진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우리는 술이 몸에 해롭고 정신을 혼미하게 해 여러모로 위험을 초래한다는 점을 잘 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술을 마신다. 그것도 많이.
몸 망가지고 실수하고
세계적으로 중상 이상 치명적 교통사고의 20~40%는 음주운전으로 발생한다. 살인, 가정 폭력, 아동 학대도 이에 못지않게 음주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술은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고 엄청난 비용을 부담시키는 요인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잦은 음주와 과음은 건강에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간, 췌장, 심혈관을 손상시키고 신경 퇴행 질환을 일으킨다. 암도 일으킨다.
적당한 술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을 오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잠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수면무호흡증이 있는 사람은 술을 마시면 호흡이 중단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술을 많이 마시면 혈관이 수축돼 혈압이 상승하고 편두통과 동상이 악화된다.
술은 태아에게도 손상을 준다. 임신한 여성이 술을 마시면 태아가 알코올 스펙트럼 장애라는 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알코올 중독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기 중 약 3분의 1은 주의력 결핍, 과다활동 장애, 지능 저하 같은 증상을 보인다. 알코올이 태아의 정상적인 발달을 방해해 평생 학습 능력과 사회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렇게 술 때문에 중추신경계에 이상이 생기는 등 심신 발달에 문제가 나타나는 것이 태아 알코올 스펙트럼 장애다.
쥐를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는 여기에 유전적인 요소가 있음을 보여준다. 뇌에는 갑상샘 호르몬 농도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부모로부터 정상 유전자를 물려받은 태아는 엄마가 술을 마셔도 별문제가 없다. 엄마로부터 변이형 유전자를 받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엄마의 유전자가 변이형이라도 아빠의 유전자가 정상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엄마가 술을 마시면 아빠로부터 받은 정상 유전자가 억제될 수 있다. 그러면 태아의 뇌에 갑상샘 호르몬 농도가 높아져서 뇌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가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엄마가 변이 유전자를 지니는지 여부를 검사하는 진단 키트를 만들면 된다. 지금의 과학기술이라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까지 술을 마시고 싶은 엄마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과음이 아니라 적당한 수준의 음주도 몸에 안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02년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연구진은 실수를 했을 때 알아차리는 일을 하는 뇌 부위를 조사했다. 술을 마시면 대개 반응이 느려지고 실수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런데 연구진은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4% 때에도 즉, 소주 두 잔 정도만 마셨을 때에도 실수를 알아차리고 바로잡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결과를 얻었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자 클로드 스틸은 술이 사회적 인지 능력과 행동에 미치는 효과를 ‘알코올 근시’ 이론으로 설명한다. 술에 취하면 근시가 된다는 것이다. 멀리 넓게 보지 못하고 지금 눈앞에서 경험하는 것에만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즉흥적 감정을 나타낸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숙고할 때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술은 이러한 숙고를 방해함으로써 즉각적인 반응을 유발한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은 술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알코올 근시 이론에 따르면 사람이 술을 마시고 후회막급한 일을 저지르는 것이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과음하는 이유
술이 부정적인 효과만을 낳는다면 사람들은 음주를 법으로 금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시피 술은 긍정적인 효과도 미친다. 술은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약간 몽롱하면서도 유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처음에 마시는 술 두세 잔이 삶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러한 효과는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지혜와 통찰력을 얻은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사람은 이 즐거움을 반복적으로 느껴보기 위해 계속 술을 마시고 결국 과음에 이르는 것으로 가정될 수 있다.
술은 두려움도 없애준다. 1975년 미국의 한 연구진은 술 시음회를 한다고 남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연구진은 이들을 두 무리로 나눴다. 한 무리에는 시음회 뒤 여학생 사진들을 놓고 매력도를 평가하는 실험을 한다고 말해줬다. 다른 집단에는 여학생들과 대화 시간을 가진 뒤에 서로의 매력을 평가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후자에 속한 남학생들이 술을 더 마셨다. 남학생들은 술이 용기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믿고 있었다.
2007년 뉴질랜드의 연구진은 적당한 술이 기억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였다. 신경세포의 연결을 강화해 기억력 증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있는데 적절한 양의 알코올이 이 단백질의 활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때의 음주량은 사람으로 따지면 한두 잔에 해당한다.
문제는 술이 증진시키는 기억이 반드시 좋은 기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술을 마시면 주로 좋은 기억보다는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기억이 더 촉진된다고 말한다.
술과 관련해 희소식도 있었다. 술을 적당히 마시는 것이 술을 안 마시는 것보다 건강에 더 좋다는 연구 결과다. 100여 년 전 의사들은 지나친 음주로 간이 손상되어 사망한 사람을 해부했다가 깜짝 놀랐다. 혈관이 이상하리만큼 깨끗했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술이 혈관의 콜레스테롤을 다 녹인 것일까?
1960년대 미국의 게리 프리드먼은 심장마비의 위험 인자를 파악하기로 했다. 그는 흡연, 콜레스테롤, 운동 습관 등 예상 가능한 모든 요인을 컴퓨터에 입력했다. 이어 심장마비의 예측 지표로 삼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금주가 오히려 심장마비 위험을 높인다고 나왔다.
그전까지 이 점을 몰랐던 이유는 음주와 흡연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가 많아 흡연의 부정적인 영향이 음주의 긍정적인 영향을 가렸기 때문이다. 흡연 변수를 제외하니 술이 심장마비 발병 위험을 줄인다는 점이 뚜렷이 드러났다. 그 뒤의 많은 연구도 비음주자가 술을 적당히 마시는 사람보다 관상동맥심질환 발병률이 높다고 밝혔다. 하루에 술을 약 두 잔씩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심장마비 등 주요 심질환 발병률이 20%포인트 더 낮았다.
적절한 음주는 관상동맥심질환 사망 위험을 거의 3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적절한 양이 어느 정도인지는 개인의 나이, 건강 상태, 운동, 직업, 생활 습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의학은 대개 하루 두 잔 정도라고 본다. 그보다 많아지면 전반적으로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술은 혈관을 튼튼하게 한다?
연말에는 술자리가 잦다.
많은 연구는 술을 적당히 마시는 사람이 안 마시는 사람보다 고밀도 콜레스테롤의 농도가 10~20%포인트 더 높음을 보여준다. 고밀도 콜레스테롤은 위험한 저밀도 콜레스테롤을 간으로 보낸다.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간에서 분해되거나 재활용된다. 이러면서 혈관 벽에 쌓이는 콜레스테롤이 적어진다. 알코올이 왜 고밀도 콜레스테롤 농도를 높이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고밀도 콜레스테롤 생산과 관련된 간의 효소에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운동도 몸의 고밀도 콜레스테롤 농도를 높인다. 하지만 고밀도 콜레스테롤은 여러 종류가 있다. 알코올로 농도가 증가하는 콜레스테롤은 운동으로 증가하는 것과 다르다. 따라서 알코올이 운동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혈액이 자주 엉겨 피떡을 만들면 심장마비 위험이 커진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피를 응고시키는 혈소판이 덜 끈적거려 응고 현상이 덜 일어나는 듯하다.
술이 심혈관계에 기여한다면 어떤 종류의 술이 더 나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아직 확실한 결론은 없다. 포도주와 맥주 같은 술이 독한 증류주보다 관상동맥심질환 위험을 낮춘다는 통계 결과들이 있다.
여러 술을 비교한 통계 자료는 심혈관 질환 위험을 줄이는 효과가 포도주, 맥주, 독한 증류주 순으로 크다고 말한다.
적포도주를 더 많이 마시는 프랑스인은 관상동맥심질환 사망률이 미국인의 절반 정도임을 강조한다. 적포도주에 항산화 성분이 많다는 말도 으레 한다. 그러나 이런 차이가 전적으로 술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은 독한 술을 즐기는 사람과 삶의 양식이 다를 수 있다. 안주도 달라진다. 직업, 흡연 여부, 운동 습관도 다르기 쉽다.
많은 사람이 술을 즐겨 마신다. 그런데 왜 술을 마시기 시작했을까? 술을 마셨다는 기록은 약 9000년 전부터 있었다. 이 무렵 메소포타미아에서 술 빚는 기술이 발명되었다고 한다. 술 빚는 법이 나오기 전부터 사람은 술과 비슷한 성분을 찾아 마셨다고 한다.
원시시대부터 술 냄새에 끌렸다
미국의 생물학자 로버트 더들리는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술에 끌리는 성향이 존재한다고 본다. 이런 성향은 원시 인류가 숲 속을 돌아다니던 시대에 형성됐다고 한다. 당시 인류는 과일이나 열매를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나 적당히 익은 과일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때 어디선가 풍겨오는 술 냄새가 바로 이런 잘 익은 과일의 존재를 알려주는 단서였다고 더들리는 추정한다. 더 일찍 익은 과일은 나무에 붙은 채로 혹은 땅에 떨어져 발효되기 시작할 것이고 이때 풍기는 술 냄새는 주변에 익어가는 과일이 있음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발효된 과일, 한마디로 썩고 있는 과일을 먹는 동물은 극히 드물다. 미국의 인류학자 캐서린 밀턴은 영장류 22종을 대상으로 발효된 과일에 끌리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어떤 종도 발효된 과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과일을 주식으로 삼는 과일박쥐조차 썩어가는 과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실 막 발효되기 시작한 과일이 가장 열량이 높은데도 말이다. 이렇게 보면 술 냄새는 주변에 먹음직한 익은 과일이 있음을 알리는 단서로 기능했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인류는 술을 어떻게 마시기 시작한 것일까?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술과 비슷한 성분의 식용식물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가 있다. 1990년대 독일의 동물학자들은 말레이시아의 붓꼬리나무타기쥐가 인간과 비슷한 술꾼임을 발견했다. 꼬리가 붓처럼 생긴 이 동물은 하루에 맥주 약 2.5L 분량의 술을 마신다.
이 술은 버트램야자라는 꽃에서 나오는 꿀에 섞여 있다. 연구자들은 이 꽃의 꿀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맡고서 이 꿀이 술이라는 것을 알았다. 원시 인류도 마찬가지로 냄새로 이러한 술 성분의 천연식품을 발견했을 것이다. 연구자들이 살펴보니 꿀 위쪽에 맥주 거품 같은 것이 떠 있었다. 이 식물은 천연 효모를 지니고 있어서 꿀을 발효시킨다. 발효된 꿀의 알코올 함량은 약 3.8%다. 약한 맥주 수준이다. 그래도 천연식품 중에서 알코올 함량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매일 마셔도 건강 유지
붓꼬리나무타기쥐는 하룻밤에 평균 2시간씩 이 꿀술을 마신다. 이것이 이들의 주식이다. 붓꼬리나무타기쥐의 털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의 포유동물에게는 위험할 수 있는 수준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았다. 그러나 이들은 취하지 않는다. 비틀거리지도 않고 해롱대지도 않는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화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꿀술은 버트램야자 꽃이 꽃가루받이 매개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제공하는 것이다. 꽃가루받이를 해줄 동물이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도 못한다면 꽃가루받이는 불가능해진다. 그러면 버트램야자 꽃은 사라졌을 것이고, 꿀술을 주식으로 삼는 붓꼬리나무타기쥐도 멸종했을 것이다.
말레이시아 우림에서는 붓꼬리나무타기쥐뿐 아니라 로리스원숭이 등 포유류 7종이 밤에 이 술을 홀짝거린다. 하룻밤에 두세 번 와서 마시기도 한다. 이 야자수로부터 술을 얻는 대가로 동물들은 꽃가루받이를 해준다. 붓꼬리나무타기쥐가 술을 즐겨 마시는 점은, 원시시대 인류가 천연식품에서 나온 술을 접한 뒤 점점 술맛에 빠져 급기야 인공적으로 술을 빚어내 즐기게 되는 점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붓꼬리나무타기쥐가 자기 몸집에 비해 엄청난 양의 술을 매일 마시고 있음에도 전혀 취하지 않고 건강을 해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 이유를 알아내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다. 사람이 매일 과음해도 건강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사람이 술을 마시는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많은 동물은 술을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인도에서 코끼리가 술에 취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북아메리카에서 곰이 집을 덮쳐서 맥주를 강탈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동물원의 원숭이도 대체로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는 이들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고 확신할 수 있다.
동물의 음주 성향을 다룬 연구는 그리 활발하지 않다. 식물로부터 숙취제거제를 얻어 상품화하는 사례는 있지만 동물로부터 숙취제거제를 얻는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다. 그러나 동물의 음주로 연구를 확대한다면 설령 진지한 연구라는 인상은 주지 못할지라도 사람과의 흥미로운 비교 사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람에게 술은 식량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가 아니다. 사람은 술로부터 다양한 용도를 찾아냈다. 단합을 도모하고 의욕을 고취시키며 삶을 돌아보게 하는 용도로 쓴다. 식량이 부족하던 시대에서 유래한 열량 섭취 본능이 오늘날 비만을 일으키듯 술을 즐기는 본능적 성향도 술이 풍족해진 오늘날에는 알코올 중독과 각종 폐해를 낳고 있다.
사람은 술이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음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보인다. 그러니 앞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과음해도 건강에 전혀 해로움을 주지 않는 방법을 고안하거나 아니면 술에 대한 본능적 지향성을 통제할 자제력을 몸속에 심어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