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한국은 反日 망상 빠져 날조로 자아 유지”

日 출판계 장악한 ‘혐한’ 마케팅

  • 김경주 │일본 도카이대 국제학과 교수

    입력2013-12-19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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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아마존’ 사회·정치 분야 1위 ‘바보 같은 한국’
    • “혐한은 ‘오타쿠적 흥행’이 아니라 대중적 현상”
    • ‘진보’ 브레이크 없는 ‘수정주의 사학’전력 질주
    “한국은 反日 망상 빠져 날조로 자아 유지”

    2013년 9월 일본에서 열린 혐한 시위.

    최근 한국에서는 ‘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가 인기라고 한다. 1994년은 한일관계에서도 추억을 되새겨볼 만한 해다. 다만 한국 드라마 속 이야기처럼 서로 공유할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양국 간 역사인식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씨앗이 본격적으로 싹트던 시절이라는 것이 다르다. 더구나 그 씨앗은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더욱 굵고 질긴 넝쿨로 자라나 양국관계의 팔다리를 옭아매고 있다.

    현재 일본 출판계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혐한류(嫌韓流) 현상’은 한일 역사인식 갈등이라는 넝쿨의 줄기가 얼마나 단단하게 자라고 있는지 보여준다. 일본 사회에서 혐한류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유행이 돌고 돌아 다시 시대의 평가를 받는 날이 오듯, 오늘날 일본 출판계의 혐한류는 의젓한 공적 언설로서 일반 대중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오타쿠적 흥행’과는 구분된다.

    출판, 방송 등 대중매체의 상품성은 수용자로서 대중의 취향과 욕구를 얼마나 충족하는지에 달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관련 서적이 일본 출판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일본 대중이 그만큼 한국에 대해 알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욕구’가 우려되는 이유는, 그 충족의 양상이 한국에 대해 지나치게 편파적인 정보만을 매개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충분한 근거와 논리를 결여했고, 특정 사례가 과잉 일반화했으며, 한국에 대한 멸시와 적개심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정보는 비판이 아닌 비난이며, 그 장르 역시 반한(反韓)이 아니라 혐한이다.

    상위 20권 중 4권이 ‘혐한’

    “한국은 反日 망상 빠져 날조로 자아 유지”

    2005년 발매된 만화 ‘혐한류’는 1년 만에 67만 부가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일본 최대의 인터넷 서점 사이트 아마존(Amazon.co.jp)을 살펴보면, 2013년 12월 8일 사회·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1위는 ‘보한론’이라는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한’이란 ‘바보 같은 한국’이란 뜻이다. 실제로 목차에는 ‘창피한 줄 모르는 국제적 비상식 국가’ ‘세계가 경멸하는 불쌍한 나라’ ‘매춘 수출대국의 철면피’ 등 매우 공격적이며 선정적인 문구가 나열돼 있다. 저자인 무로타니 가쓰미는 지지통신사의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서울특파원을 지낸 경력이 있으며, 2013년 4월에는 ‘악한론(惡韓論)’을 출간해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오른 유명인사다. 이 책은 현재 아마존의 전체 서적판매 순위에서도 7위에 올라 있다.



    또한 사회·정치 분야 4위에 오른 책 ‘거짓말투성이의 일한 근현대사’는 “한국은 반일(反日)이란 망상과 집착에 사로잡혀 날조로 자아를 유지하는 나라로, 한국의 역사인식은 모두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주장을 담고 있다. 이 밖에도 16위에 ‘왜 반일 한국에 미래는 없는가’, 20위에는 ‘일본이 싸워줘서 감사합니다’ 등이 올라 있다. 일본 사회·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20위 중 4권이 혐한류 서적이다.

    2008년을 정점으로 사양길을 걷고 있는 일본 출판업계에서, 혐한류 서적은 꾸준한 고객층을 확보하는 몇 안 되는 효자상품이다. 문제는 최근 2~3년 동안 혐한류 서적이 큰 인기를 끌면서 보도매체의 역할을 해야 할 일부 신문, 잡지 등 언론매체로까지 혐한류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대표적 우파 언론사인 후지산케이 그룹이 발행하는 잡지나 신문은 원래가 그렇다손치더라도, 보수 월간지로서 폭넓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문예춘추’는 2013년 10월호에 ‘일중한 100년 전쟁에 대비하라’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실었고, ‘News Week 일본판’은 최근 연이어 ‘반일 한국의 망상’(2013년 10월 1일 발간), ‘미국도 곤혹스러운 한국의 세계관’(2013년 12월 3일 발간) 등을 커버스토리로 실었다.

    ‘도쿄신문’은 2013년 10월 5일자 기사에서 혐한 보도가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상업성을 추구하는 일본 대중매체와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일본 사회의 우경화 분위기가 맞물린 결과”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했다. 하지만 혐한류가 그토록 한시적이고 국한된 현상일까. 만화 ‘혐한류’가 경이적인 판매부수를 올린 2005년만 하더라도 혐한류는 일본 극우세력의 과격한 이데올로기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일본 대중이 혐한류에 몰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4년,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한일 간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의 공론화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대중화·이론화하는 혐한류

    1994년 전후,‘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경기침체의 조짐이 보이면서 자민당 중심의 정치구도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어서 역사인식의 진보성을 표방한 좌파정당이 새로운 연립정권에 참여하게 되면서 침략전쟁과 식민 지배를 사과하는 일련의 ‘과거사 반성 발언’이 일본 정치 수반의 입을 통해 대외적으로 표명됐다. 1993년 발표된 고노 담화에서부터 호소카와 발언, 무라야마 담화 등이 그것이다.

    정치 수반들의 진보적이고도 획기적인 역사인식 표명은 보수우익들의 강한 반발을 샀고 일본 국민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정치, 사회적 갈등을 표면화했다. 진보적 역사인식에 대한 반동으로 정치계와 학계, 언론계를 포함한 보수우익 세력은 결집했고 소위 ‘올바른 역사인식’을 세우기 위한 범사회적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보수적 역사인식이 ‘자유주의사관’ 혹은 ‘수정주의사관’ 등으로 이론화했고, 이것이 언론 매체를 통해 퍼져나갔다.

    “한국은 反日 망상 빠져 날조로 자아 유지”

    일본 아마존 사회·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4위에 오른 ‘보한론’.

    이들은 과거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한 진보적 역사관을 ‘자학주의사관’으로 규정하고, ‘올바른 애국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 일본의 전쟁은 정당했고 연합국은 부당했다고 재평가하려 했다. 또한 한일합병은 아시아의 해방과 공영의 길을 모색한 것으로 한국 근대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측면에서 재조명돼야 한다는 주장을 공론화했다.

    1993년 자민당에 설치된 ‘역사검토위원회’에는 나중에 총리를 지낸 하시모토 류타로와 모리 요시로, 그리고 젊은 시절의 아베 신조 현 총리 등이 참여했는데, 이 위원회에서 1995년 발간한 ‘대동아전쟁의 총괄’은 지금도 수정주의 역사관의 교본으로 꼽힌다. 또한 1990년대 중후반에 결성된 ‘자유주의사관 연구회’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같은 민간단체에도 일본 정계와 연계된 저명한 학자와 언론인, 문화인, 경제인 등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은 출판과 방송 등의 대중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역사관 심기의 유격대 노릇을 했다.

    이들이 일본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영향력을 발휘한 시점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국내적으로는 장기화한 불황으로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었고,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둘러싼 한·중과의 외교적 갈등 등으로 지지요인이 더욱 강경해졌다.

    “우리의 불행은 모두 너희 탓”

    일본에 과거사 문제는 역사적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의 해석을 둘러싼 국내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문제다. 우리가 ‘극우세력’으로 부르는 그들 중 일부의 주장도 늘 갈등과 대립을 전제로 한 편 가르기 구도 속에서 상대의 논리를 공격,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정치적 논법에 의거하고 있다. 따라서 1994년부터 20년이 지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화법은 놀랄 만큼 유사하고 일사불란하다.

    문제는 그들이 공격하던 진보 세력이 일본 정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대중매체 차원에서 흥미를 수반한 사회적 설득력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혐한류 1차 파동’ 시점이라 할 수 있는 2005년과 지금 일본 사회의 결정적인 차이다.

    2009년 출범한 민주당 정권이 완전히 실패하면서 ‘양대 정당제’로서의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대립에 대한 기대도 사라진 지 오래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 내의 ‘비둘기파’와 ‘매파’의 대립도 파벌정치의 쇠퇴와 더불어 견제와 균형의 구심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은 더 이상 아시아의 종주국이 아니다. 중국과 북한의 안보 위협이 높아지고, 종군위안부 문제와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보수세력을 견제할 만한 정치세력이 없다는 것은 결국 ‘대외강경론’이 득세할 상황을 만들어냈다. 2011년 발생한 동북대지진 또한 다양한 의견의 수렴보다는 사회가 하나로 뭉치는 대동단결의 방향으로 일본의 여론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강경론자들의 ‘공공의 적’은 국내에서 국외로, 일본인에게서 재일외국인으로, ‘자학주의사관’에서 ‘반일국가(反日國家)’로 표적의 방향을 틀고 있다. 일본은 곧 하나이며, 하나가 된 일본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발언과 태도는 그 자체가 반일이자 비판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정당성이 아니라 너의 부당성”이라는 주장은 언뜻 듣기에는 유치하지만 이들에게는 낯익은 전술이다. 일본 대중매체에 불고 있는 혐한류의 언설은 제목도 내용도 다양하지만 “모두가 네 탓”이란 점에서는 분명 하나다.

    사람은 원래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만 취한다. 일본 사회의 혐한류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서도 이 관점이 유효하다. 가끔 일본 대중에게 혐한류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이 “그건 일부의 생각일 뿐”이라고 자르면서도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정말 그렇게 끔찍하게 싫어하나요?”라고 되묻는다. 그간 일본에 전달된 ‘한국이 일본을 보는 시선’이 어땠는지를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요즘 한일관계의 난타전을 보고 있으면 ‘막장 드라마’가 떠오른다. 막장 드라마는 인간의 애증이라는 심오한 문제를 다루면서 황당한 설정과 비상식적인 등장인물을 동원한다. 시청자의 욕구를 손쉽게 만족시키기 위해서다. 막장 드라마는 사회의 지탄을 받지만 선정적이고 막장으로 치달을수록 대중의 인기를 얻는다.

    “한국은 反日 망상 빠져 날조로 자아 유지”
    김경주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일본 도쿄대 박사(사회언어학)

    2005년 한일불교문학학술상 수상

    現 일본 도카이대 국제학과 교수


    일본 출판계는 혐한류에 동조하는 일본 대중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는 혐한류 서적을 출판한다. 여기에 대중매체까지 가세하면서 상황은 더욱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은 혐한류 현상을 일본의 ‘병적 문화’로 치부하면서 문제시하는 데 그치고 저만의 논리를 주장한다. 한일 양국의 진정한 화합과 발전을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멸시와 적개심으로 가득 찬 채 공격을 퍼붓는 지금의 프레임에서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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