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청년의 사랑을 그린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20세 전후 청년 잭과 에니스는 깊숙한 산골의 양 떼 목장 주인 사무실에서 처음 서로 마주하게 된다. 양 떼 주인은 이들에게 여름 동안 양 떼가 맹수들에게 희생되지 않도록 지키는 목동 역할을 맡기는 한시적 계약서를 내민다. 또한 국유림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산불 감시 헬기에 걸리지 않도록 불을 피우지 말라는 조건을 덧붙인다. 물론 지정된 캠핑장에서는 불을 피울 수 있었으나 양 떼가 그 지역 너머 멀리 이동했기 때문에 두 청년은 양 떼를 따라 깊은 산속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여름이라 해도 로키산맥의 밤은 거세고 춥다. 밤에는 바람이 거세지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둘은 점점 가까워지고, 결국 서로의 체온을 공유하며 지내게 되고,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다. 잘생긴 두 꽃미남은 참을 수 없는 열정에 이끌려 사랑의 행위에 빠져든다. 이쯤 되면 동성애에 대해서는 듣고 싶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며 책장을 넘기려는 독자도 있겠지만 불편한 마음을 참고 읽어주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놀랍게도 감동 그 이상을 주었다. 울창한 숲속에서 말을 타고 양 떼를 모는 카우보이 스타일의 두 청년은 보는 것만으로도 압권이었고, 두 남자 간의 끌림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놀라울 만큼 아름다웠다.
영화 속 잭과 에니스는 어떻게 됐을까. 그들은 각각 여성과 결혼했다. 에니스는 두 딸을, 잭은 한 아들을 얻는다. 그러다 4년 만에 우연히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20여 년 동안 1년에 한두 번씩 만나 격정적인 사랑의 시간을 보낸다. 비록 이들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들은 게이가 아니라고 부인했고, 결혼이라는 사회적 틀 안에 있었지만, 서로에게 끌리는 마음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동성애는 범죄도 질병도 아니다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인 1960년대 미국은 동성애자들을 ‘게이’라고 부르며 비난하고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법적으로는 ‘범죄’, 의학적으로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후 미국은 전 세계에서 동성애 인권과 인식 변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됐다.미국정신의학회에서는 1973년 동성애를 더는 ‘병’으로 보지 않기로 했고, 1990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다”라고 공식 발표하며 ‘성적 다양성의 한 형태’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성과의 관계만을 ‘정상적인 사랑’으로 여기고, 그 밖의 다른 형태의 관계나 성행위를 모두 ‘성적 이탈(sexual deviation)’이라 하던 과거와는 달라진 것이다.
동성애는 유전(遺傳)이 아니다. 하버드대 연구에서도 성정체성이나 동성애의 원인은 태아기 호르몬 노출, 사회문화적 요인, 신경 발달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뿐, ‘단일한 동성애 유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놀랍게도 동성애는 인류 역사와 함께 존재해 온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동성애적 행동은 인간뿐만 아니라 1500종이 넘는 동물에서도 관찰된다. 하지만 자손을 남길 수 없다는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사회에서 억제되고 억압돼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의학의 발전으로 시험관아기시술(IVF)을 통해 동성애자 역시 자손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남성 동성애자는 자신의 정자로 대리모를 통해 IVF로 자식을 낳을 수 있고, 여성 동성애자는 정자은행에서 공여받은 정자로 자신의 자궁에서 생명을 잉태할 수 있게 됐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동성애자 및 성소수자의 임신·출산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21년 미국 연방하원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평등법을 통과시켰다. 뉴시스
최근 영국에서는 여성 동성 커플과 독신 여성의 정자은행 이용과 IVF 출산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미 국무부는 “동성 부부 혹은 결혼한 부부가 외국에서 시험관아기시술 또는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자녀 역시 조건을 충족하면 미국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선진국에서는 성소수자(LGBTQ+)의 권리를 보호하고, 차별하면 처벌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는 “한국은 부부 평등의 측면에서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기에 성역할의 변화가 획기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면 출산율 회복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제 올 것이 온 것일까. 여전히 혐오와 차별의 시선으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에도 ‘성역할의 변화가 획기적으로 일어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인류 역사는 결국 생명 탄생의 연속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후원’이나 ‘장려’의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과 생명에 대한 균형 잡힌 시선이라고 생각한다.필자도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며 아름답게 느끼고 감동받았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한다. 이 영화를 본 관객 중 한 사람이 “이런 영화를 만든 주인공들과 영화 관계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자, 잭 역을 맡은 배우 제이크 질렌할이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책임감을 더 깊이 느꼈다”고 답했던 영화 시사회 인터뷰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다만, 생명의 시작점을 지켜보는 난임 의사로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것이다. 인류 역사는 결국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 그로부터 탄생한 생명의 연속성 위에 세워져 왔다는 사실이다.
수정란이 자궁 속에 착상하고, 태아로 자라나 세상에 태어나고, 배우고, 사랑하고, 다시 생명을 피워내는 이 단순한 순환이야말로 인류가 쌓아온 찬란한 역사 자체다. 이토록 평범하면서도 경이로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사랑은 다양할 수 있지만, 생명은 한길(정자+난자=수정란)로 태어난다는 사실만은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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