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4월 2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4시간짜리 연극 ‘파운틴헤드’를 위해 한국을 처음 찾은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 연출가 이보 반 호브(59)가 개막 하루 전 기자간담회에서 꺼낸 말이다. 러시아 출신 미국 작가 아인 랜드(1905~1982)가 1943년 발표한 원작소설이 미국 보수우파의 바이블 대접을 받는다는 비판을 의식한 해명이었다.
연극은 건축가 2명의 대조적 삶을 그린다. 자신의 예술적 영감에 충실한 천재 하워드 로크와 세속적 명성에 눈먼 피터 키팅이다. 건축계의 현자로 통하는 엘스워스 투히는 예술이 소수의 독점물이 돼선 안 된다는 이유로 키팅 뒤에 숨어 로크를 파멸로 몰고 간다. 760쪽 분량의 소설을 유려한 무대 연출과 농밀한 연기로 풀어간 점은 감탄할 만했다.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영국 올리비에 상(2015년)과 미국 토니 상(2016년)의 작품상과 연출상을 동시 수상한 연출가다웠다.
하지만 역시 주제의식이 문제였다. 연극의 대미를 장식한 로크의 연설은 이렇게 요약된다. “세상은 소수의 창조자와 그에 빌붙어 사는 다수의 기생자로 나뉜다. 기생자는 이타주의를 명분 삼아 창조자를 착취하고 파괴한다.” 이는 나치가 오도한 니체 철학(세상은 고귀한 강자와 비루한 약자로 나뉘어 있다)의 아류에 불과하다.
게다가 ‘창조의 원천’이란 제목의 이 작품이 헨리크 입센이 1863년 발표한 ‘왕위주장자들’에서 인물 구도와 대사(“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죽을 순 있어도 누군가를 위해 살 순 없다”)를 차용했음이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왕위주장자들’의 국내 초연 무대가 같은 날 서울 세종M씨어터에서 개막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