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깐깐한 상호주의로 ‘정상국가’화 상징적 신뢰 쌓기로 비용 최소화

박근혜 對北 로드맵 숨은그림찾기

  •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입력2013-12-18 17: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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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 한 해, 남북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탄 듯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가동해보지도 못한 채 시험대에 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 대북관계를 어떻게 가져가려는 것일까.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나는 어머니를 잃었다.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어머니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암살자의 총탄에 희생되셨다. 당시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슬픔이었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한반도에서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고 평화가 정착되기를 원했고 또 그것을 위해 노력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이 구상하는 대북정책을 총정리해 그 완결판을 처음 선보인 2011년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새로운 한반도를 향하여’의 도입부다. 박 대통령에게 북한은 어머니를 앗아가고 아버지를 암살하려 했던 원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사명인 ‘통일’의 대상이자 파트너이기도 하다. 김대중식 ‘햇볕정책’도, 이명박식 ‘상호주의’도 아닌 박근혜식 제3의 길 ‘균형정책’을 펼친 2013년 한 해, 남북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통일과 관련된 얘기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으로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내겠다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그의 입에서 ‘통일’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대통령 취임 이후다. 4대 국정기조에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담은 것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기조를 ‘한반도 평화통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북한을 자극할 수 있어 통일 기반 구축으로 바꾼 것일 뿐 통일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단골 의제

    깐깐한 상호주의로 ‘정상국가’화 상징적 신뢰 쌓기로 비용 최소화

    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 방북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찍은 기념사진.

    박 대통령은 지난 11월 25일 민주평통 운영·상임위원들과 대화하면서 “분단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늘어가고 있고, 특히 젊은 세대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들을 시대의 변화라고 방관할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의식을 깨워나가면서 현실감 있는 통일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통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삶이다. 북한 주민들도 우리 국민처럼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밝혀왔다. 12월 10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탈북자 지원 강화를 지시하면서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과 이웃에게 대한민국이 더 살기 좋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탈북자의 정착이 통일 이후 남북한 통합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통일 기반 구축의 핵심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공감대 확산이다. 이는 정상들 간에 풀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강하다. 2013년 5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작심하고 한반도 통일 문제를 의제로 꺼냈다.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때도 통일 문제가 거론됐다.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예정보다 길어진 것도 통일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때문이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통일이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요지로 설득했다.

    시 주석에게는 ‘한반도가 통일되면 북한 접경지역인 동북 3성의 개발과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낙후된 동북 3성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중국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것. 푸틴 대통령에게도 ‘러시아의 숙원사업인 극동지역 개발에 한반도 통일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푸틴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때 공약(空約)이 되어버린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 때문에 섭섭한 마음이 컸다. 박 대통령은 지금과 같은 분단 상태에서는 사실상 북한에 가스관을 매설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대신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이 러시아 지분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통일 이후 극동지역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이들 정상과 김정은 체제가 붕괴하는 급변사태까지 가정해 통일 논의를 깊이 있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붕괴할 경우 중국이 북한을 동북 4성으로 편입할 것이라는 설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는 게 여권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정상이 미국 중국 러시아 정상들과 한반도 통일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진전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박 대통령은 전임 이명박 정부가 통일 비용을 비축하겠다며 추진하던 ‘통일항아리’ 식의 통일 준비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 돈을 축적하면 불용 예산만 커진다고 보고, 통일 비용은 통일 이후 북한의 땅이나 자원을 개발하면서 국내외 기업과 국제기관 등의 투자와 지원을 받는 식으로 마련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6자회담 불신

    보수층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불만이 크다. 그 중심에는 대통령의 북핵 문제 해결 방식이 안이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어차피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텐데, 박 대통령이 계속 북한에 핵개발·경제발전 병진정책을 포기하라고 압박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강하다. 박 대통령도 북한이 핵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다. 장성택 실각 이후 그런 인식은 더 강해졌다. 김정은의 권력체제가 공고화한 상황에서 핵에 더욱 집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압박이 북핵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라고 여긴다. 북한의 친교 국가인 라오스와 베트남을 비롯해 취임 첫해 모든 정상회담에서 북핵을 반대하는 내용을 선언문에 담은 것은 북핵과 관련해선 전 세계 어느 누구도 북한의 편을 들 수 없도록 하겠다는 포석이다.

    이는 미국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12월 초 중국 방문 때 시진핑 주석에게 “이란이 핵을 포기하기까지 미국이 얼마나 많은 압박을 가했는지 아는가. 북한도 가만히 두면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한결같은 압박이 필요하다”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취임 이후 동맹국인 미국 못지않게 중국에 그토록 많은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의 마지막 버팀목이다. 그런 중국도 2013년 한 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유엔 결의안을 적극 실천하는 등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미중관계 개선이 한반도 평화에 요긴하다는 전략적 판단에 있다. 박 대통령은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중관계가 발전할수록 북한의 비정상적 행태는 미국과의 관계 증진을 희망하는 중국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반대로 미중관계의 긴장은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외교게임을 시도하게 만들어 비타협적 태도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 핵 퍼즐을 푸는 방법과 관련해 6자회담에 대한 불신이 꽤 큰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이 북한이 핵을 만들 시간만 벌어준 꼴이 됐다는 인식이다. 지난 8월 제1차 국가안보자문단 오찬회의에서 “오늘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시작된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지난 10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 개발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평화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핵 포기 의사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기 전까지 6자회담을 열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강하다.

    비정상의 정상화

    박 대통령은 6자회담과 별도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 실현되면 여기에서 북핵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본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북한의 핵 문제만 다루는 6자회담과 달리 기후변화, 핵안전, 사이버 안보 등 다양한 범세계적 이슈를 함께 다루게 된다. 이처럼 합의가 쉬운 문제부터 해결하며 신뢰를 쌓아가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도 풀어보자는 장기적 접근법이다.

    북한을 바라보는 박 대통령의 시각은 철저히 이중적이다. 스스로는 이를 ‘균형정책’으로 일컫는다. 남북한 간 ‘안보’와 ‘교류협력’ 사이의 균형, ‘남북대화’와 ‘국제공조’ 사이의 균형을 잡겠다는 것이다. 단호한 자세가 요구될 때는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고, 동시에 협상을 추진할 때는 개방적인 태도를 택하겠다는 게 요체다.

    모든 북한 문제 해법의 전제는 철저한 안보 태세다. 그의 머릿속에 북한은 최대 위협국이다. 1979년 아버지의 시해 소식을 들은 뒤 처음 내뱉은 말이 “전방은요?”였던 인식과 큰 차이가 없다. 취임 후에도 북한이 도발할 경우 즉시 원점을 타격하라는 지침을 여러 차례 내렸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특수성을 인정하기보다 국제사회의 규범에 맞는 ‘정상국가’로 대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어떻게 보면 역대 어느 정권보다 강한 상호주의 정책이다. 2013년 6월로 예정된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파견하겠다고 하자 수석대표의 격(格)을 맞춰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차관급인 김남식 통일부 차관을 내보내겠다고 통보했다. 북한은 통일부 장관이 나오지 않으면 회담에 나서지 않겠다고 압박했지만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2013년 4월, 북한이 전쟁 분위기를 부추기며 개성공단 사업 중단을 선언하자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근로자의 안전을 위해 전원 철수를 지시했다. 북한은 처음에 신변 보장을 약속했다가 막판에 미수금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직원 7명을 보내주지 않았다. 직원들이 인질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먼저 돈을 보내고 그것이 확인된 뒤 우리 직원들을 풀어주는 과거 방식 대신 송금과 직원 출국을 동시에 진행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북한 문제에 있어 ‘비정상의 정상화’인 셈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국제사회 규범에 맞는 정상국가로 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북한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정상화 협상 과정에서 정상화뿐 아니라 유사한 조치의 재발 방지와 함께 3통(통신·통행·통관) 보장을 조건으로 내걸어 북한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개성공단 국제화까지 내다본 것이다. 개성공단에 외국 기업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고, 북한에도 이익이 된다고 보기에 중국뿐 아니라 이탈리아 총리에게도 개성공단 국제화 참여를 요청했다.

    깐깐한 상호주의로 ‘정상국가’화 상징적 신뢰 쌓기로 비용 최소화

    지난 11월 2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민주평통 운영·상임위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박 대통령.

    DMZ 평화공원에 숨은 뜻

    북한을 국제사회의 틀 속에 넣으려고 하는 데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북한에 핵 포기를 압박하기 위해서도, 대북 경제 지원을 위해서도 국제사회의 관심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한-유럽연합(EU) 정상회담 때 개성공단 원산지 상품도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성공단 국제화를 통해 해외 기업들이 개성공단의 저렴한 노동력과 토지 등에 매력을 느낄 경우 새로운 투자처로서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통일이 됐을 때 우리의 통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외국의 투자를 유치해 북한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박 대통령은 원칙을 지키면서도 남북 경색을 풀기 위한 조치를 계속 취해왔다. 그런 고민 속에서 나온 구상이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설립이다. DMZ 평화공원은 대선 때는 물론 대통령직인수위 때도 검토되지 않은 사업이다. 그러다 대통령 취임 이후 다른 대북 공약을 제치고 최대 역점 사업으로 추진됐다. 201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함께 취임 후 처음으로 북한에 제안한 사업이다.

    DMZ 평화공원이 대통령의 선택을 받은 건 2013년 4월.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계속되고 개성공단 가동이 잠정 중단되면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제대로 빛도 못 보고 벽에 부딪힌 상황이었다. 청와대는 그 즈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대표상품’을 거듭 구상했다. 개성공단이나 이산가족 상봉은 중요한 사업이되 새로운 화두는 아니었다. ‘박근혜 작품’이 필요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DMZ 생태공원을 경기 북부지역 공약에 반영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생태관광 차원의 접근이었다. 여기에 남북긴장 완화를 위해 DMZ를 활용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더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와 함께하는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으로 다듬어졌고 대통령은 “바로 이거다”라며 틀어쥐었다고 한다. 꽉 막힌 남북관계를 유엔, 미국, 중국 등과 DMZ 공원을 논의하며 우회적으로 뚫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DMZ 평화공원을 5월 초 방미 때 핵심 화두로 준비했고 미 의회 연설 때 처음 선보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오바마 미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과도 논의해 지지를 이끌어냈다.

    처음부터 큰 욕심을 내기보다 남북이 상징적으로 작은 범위에서라도 중무장 상태인 DMZ에서 무기를 빼내고 글자 그대로 비무장지대를 만들며 신뢰를 쌓아보자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다. 공원의 규모를 크게 하거나 대규모 시설물을 지으려는 생각도 없다. 남북 간에 거액이 오가는 경제협력 모델이 아니라 평화와 신뢰를 쌓는 모델로 보고 있다. DMZ 공원 논의 과정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할 당사국의 협의가 선행돼야 하기에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평화협정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북한의 첫 반응은 괜찮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시진핑 주석이 북한에 한국의 DMZ 공원 추진 의사를 전달했을 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

    ‘비선’과 ‘비공식’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2년 방북한 박 대통령에게 금강산댐 공동조사, 남북철도 연결, 국군포로 행방 확인 등에서 화끈하게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김정일은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며 “적절한 시기에 서울 답방을 하게 되면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싶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 관계자들 중에는 김정일이 살아 있었다면 박 대통령과 신뢰를 쌓으며 지금보다 나은 남북관계를 만들 수 있었으리라며 아쉬워하는 이가 많다.

    김정은의 경우 박 대통령이 만난 적도 없는 데다 취임 이후 계속 마찰을 빚었기 때문에 호감도가 낮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정은은 박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인 2013년 2월 중순 3차 핵실험을 했고, 이후 정전협정 무효화를 선언하는 등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다. 개성공단 갈등 때는 우리 국민을 인질로 잡아두려 했고, 공단 정상화 이후에도 3통 등의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장성택 실각 이후 김정은에 대해 더 비판적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12월 10일 국무회의에서 김정은의 호칭도 생략하고 “북한이 김정은의 권력 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면서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박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다고 한다. 지난 대선 때도 여러 차례 “북한 정상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굵직굵직한 문제들을 푸는 데는 정상회담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수위 시절 최대석 당시 인수위원의 방중설을 비롯해 2013년 8월 박 대통령 측근이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북한 인사와 접촉을 시도했다는 등의 소문이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여권 고위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직함이 없거나 직위가 낮은 측근이 비선(秘線)으로 북한과 접촉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비선’과 ‘비공식’은 다르다. 물밑 접촉은 할 수 있고, 이 경우 최소한 국정원 차장급 이상의 고위직 인사가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 임태희 당시 비서실장이 정상회담을 추진한 건 대통령의 미션을 받았다기보다 암묵적 동의하에 임 비서실장 개인의 의지로 강하게 추진한 것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선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접촉하려면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야 하고, 비선으로 하거나 돈을 대가로 주는 일은 없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대북 로드맵을 국내외적으로 각인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특히 김정은에겐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대북 문제에서 조급해하지 않겠다는 의사도 분명히 밝혔다. 청와대는 2014년에도 이 같은 기조로 남북관계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날이 밝지는 않다. 2013년 9월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된 이후 남북교류가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중국에서 투자설명회를 열기로 했던 개성공단 국제화 사업, 북한과 협의를 시작하려던 DMZ 평화공원도 아직 진척을 못 보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태도가 가장 큰 변수다. 장성택 실각 이후 김정은이 북한 권부 내부 동요를 막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경우 개성공단 국제화 투자 사업에 적극 나서고, DMZ 평화공원을 추진하면서 남북이 지뢰 제거 작업에 착수하는 등 훈풍이 불 수도 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그다음의 주요 변수는 중국의 태도다. 중국이 한국, 미국과 함께 북한을 더 강하게 압박하는 역할을 맡을지, 북한의 조력자가 될지가 포인트다. 청와대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려는 김정은의 요청에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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