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도현 시인의 후보자비방 혐의에 대해 배심원들은 무죄 평결을 내렸지만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했다.
원래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대상 사건은 살인, 강도, 강간 등 중범죄만 해당됐다. 그런데 2012년 7월 1일부터 제1심 형사합의부 관할사건으로 확대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즉 종래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도 사실관계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살인·강도·강간 등과 달리 이제는 일반 국민으로서는 생소하고 복잡한 법리를 동원해야 하는 뇌물 등 공무원범죄, 명예훼손 등 신용범죄, 배임·횡령 등 경제범죄 및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서 사실 판단 자체가 혼동될 우려가 있는 선거법·노동법·국가보안법 등 공안사건 등으로도 확대된 것이다.
‘무이유부기피’ 신청 적극 활용해야
무엇보다 공안사건에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좌·우 이념 대립, 계층과 세대 간 갈등, 지역감정이 심한 나라에서는 매우 부적절하다. 예를 들어 2013년 6월 24일 부산지법에서 인터넷 게시판에 ‘숨겨둔 자식하고 연관이 있는 것 아녀?’ 등 허위사실을 53회 공표한 것으로 기소된 강 모 씨는 무죄 평결과 판결을 받았다. 반면 이틀 뒤에 같은 부산지법에서 인터넷 게시판에 ‘칠푼아 숨겨논 사생아 저거 우짤껴’ 등 허위사실을 23회 공표한 것으로 기소된 전 모 씨는 유죄 평결 및 판결(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는 우리나라 법원 판결에 대한 불신풍조 확산 우려는 물론, 법치주의의 근간인 법적 안정성의 유지에도 장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공안사건 등은 국민참여재판 대상사건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하는 것이 맞다.
현재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은 다음과 같이 선정한다. 안전행정부 장관이 관할 지방법원장에게 매년 관할 구역 내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 국민의 성명·생년월일·주소에 관한 주민등록 정보를 송부하면 지방법원장이 이를 활용해 배심원후보예정자 명부를 작성한다. 그중에서 필요한 수의 배심원후보자를 무작위 추출하고, 선정된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의 재판 기일을 통지한다.
물론 이렇게 선정된 배심원에 대해 ‘무이유부기피’ 신청 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은 우리의 정치 성향을 감안한다면 공안사건, 정치적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에 부치는 것은 위험하다. 이 경우 전담 재판부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만 단독으로 설치하고, 다양한 경력의 배심원을 선정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법원에서는 정치적으로 ‘오염’된 배심원을 적극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