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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 전 세 시간 스마트폰으로 읽는 첫사랑 신화

  •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영화 시작 전 세 시간 스마트폰으로 읽는 첫사랑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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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퍼니 법칙

오 분쯤 앉아 있는 동안 도널드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똑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사람이 기억해내는 것을 절충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놀랍게도 낸시가 어렸을 때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처럼 지금도 여자로서 자신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삼십 분 동안 그는 아내와 사별한 뒤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은 20세기 초 단편소설 양식을 이끌었던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 파티’나 ‘행복’,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구현하고 있는 에피퍼니(epiphany)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에피퍼니는 현현(顯現)이라고 부르며, 갑자기 닥친 어떤 사태나 사안이 잠깐의 혼란(시험)을 통과하면서, 또는 견디면서 명료해지는 효과라 할 수 있다. 20년 전 사랑의 대상을 찾아 확인하는 과정(장면)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다. 이것이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에피퍼니를 장치해야 하는데, 피츠제럴드가 고안한 것은 한 사건에 대한 두 사람의 어긋난 기억이다. 아이러니, 또는 반전이 창출되는 지점이다.

여기 낸시라는 열 살짜리 여자애가 있다. 도널드라는 이름의 사내아이 두 명이 동시에 이 여자애를 좋아했고, 이 여자애는 그중 한 명을 좋아했다. 사내아이들의 이름은 도널드 플랜트와 도널드 바워스다. 두 도널드는 낸시에게 키스를 했다. 20년 후 도널드 플랜트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 낸시 홈스와 서로 기억을 맞춰가던 중, 서로가 생각하는 대상이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기억해. 너도 기억한다고. 하지만 그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잖아.”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굳어졌다. (…)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널드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제는 완전히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그 경험의 의미를 되씹어볼 수 없었다.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어두운 밤하늘로 높이 올라가고 (…) 도널드는 비행기를 갈아타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부란 여러 가지를 잃어가는 기나긴 과정인 탓에 이번의 경험도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

맨해튼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보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면서 나는 최근 ‘싱글에디션’으로 출시된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두 편을 스마트폰에 저장했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과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단편소설 한 편을 읽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30분 내외. 독자는 30분 안에 어느 시기 한 사람의 생을 통과하는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은 첫사랑을 둘러싼 인간의 기억에 관한 에피소드이고,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은 인간에게 주어진 생의 흐름을 모래시계 뒤집듯 거꾸로 놓음으로써 일상의 규칙을 낯설게 전복시키는 시간에 대한 에피소드다.

‘출간’이 아닌 ‘출시’

두 작품이 ‘출간’이 아닌 ‘출시’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학 시절부터 단편소설을 왕성하게 창작했던 피츠제럴드의 160편 중 대표 단편소설들은 단행본으로 출간된 상태다. 최근 들어, 음악 시장의 싱글 앨범처럼 싱글에디션으로 e북이 출시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그것이다. 장기로, 또 수시로 국외의 이 도시 저 도시로 이동 중인 현재의 나에게는 매우 유익한 독서 시스템이다.

비가 그치자, 이방인들이 봇물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영화가 시작되려면 한 시간이 남았고, 나는 밖이 잘 보이는 영화관 유리창가에 앉아 누군가로부터 온 메시지를 읽듯 스마트폰을 열어 피츠제럴드의 문장들을 읽을 것이다.개츠비, 아니 벤자민의 마지막 순간이 이방인들 틈에서 은밀하게 공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이다운 그의 잠에 괴로운 기억이라고는 없었다. (…) 낮과 밤이 흐르고 숨을 쉬었다. 그 위로 그의 귀에 간신히 들리는 웅얼거림과 간신히 식별되는 냄새와 빛과 어둠이 있었다. 모든 것이 어두워졌고 그가 누운 하얀 아기 침대와 위에서 움직이던 희미한 얼굴들, 따뜻하고 달콤한 우유향이 그의 뇌리에서 모두 사라져버렸다.

-F. 피츠제럴드,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신동아 2013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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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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