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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입국의 꿈을 펼친 지도자, 박정희

  • 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과학입국의 꿈을 펼친 지도자,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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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입국의 꿈을 펼친 지도자, 박정희

‘과학대통령 박정희와 리더십’<br>김영섭 외 15인 공저, MSD미디어, 552쪽, 1만5000원

20세기 역사에서 한국의 경제 기적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여력이 있다면 이를 연구하고 싶다.”

20세기가 낳은 석학 피터 드러커 선생은 90세 무렵부터 이렇게 자주 말했다. 그는 96세로 영면함으로써 이 연구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다. 드러커뿐만 아니라 여러 석학이 한국의 발전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에 관심을 나타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벗어난 140여 국가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게 선진권에 들어선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발전 비결은 무엇인가. 이 화두를 놓고 1998년 몇몇 경제전문가가 오원철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초청해 여러 차례 세미나를 열었을 때 필자도 참관한 적이 있다. 저녁식사로 김밥을 먹으며 밤늦게까지 진지한 토론을 벌이는 자리였다. 오원철 전 수석은 박정희 정부 시대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관여한 인물이다. 세미나가 진행될수록 오 전 수석의 과학기술 지식에 놀랐다. 흑판에 쓰는 글씨와 그림은 대부분이 기술 관련 내용이었다. 경성공전(서울대 공대 전신) 화공과 졸업생인 그는 한국 산업이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범위를 넓혀야 한 이유를 설명했다. 산업 고도화를 이뤄야 수천만 한국인이 배를 곯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신념과 열정이 돋보이는 인물이었으며 기술의 중요성을 피를 토하듯 역설했다. ‘한국형 경제건설’이라는 두툼한 책 6권을 집필하기도 한 그는 토론이 활성화될수록 박정희 대통령의 역할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박 대통령만큼 뼛속깊이 절실히 여긴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자를 우대하고 과학입국 기술입국을 외치는 대통령의 통치철학은 거의 신앙 수준이었단다.

작고한 최형섭 전 과학기술처 장관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증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선진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과학 두뇌들을 모셔와 키스트를 만들고 카이스트, 기술학교를 세우는 등 과학기술 인력을 키운 업적은 박 대통령의 통찰력 덕분”이라면서 “대통령은 나에게 장관 임명장을 주면서 과학기술처 예산을 따려고 경제기획원을 들락거리지 말 것이며 어떠한 인사 청탁도 받지 말라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고 밝혔다.



서평으로 다룰 책을 고르려고 서점의 인문서적 신간 코너를 살필 때 ‘과학대통령 박정희와 리더십’이 눈에 띄었다. 박정희와 관련된 책은 워낙 많이 출판된 터여서 처음엔 별 관심이 없었다. 더욱이 박정희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논쟁적인 요소가 많으므로 박정희 관련 서적은 서평 대상으로 부적절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가졌다.

박정희 시대에 큰 빚 진 오늘

그러나 책을 펼쳐 이기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의 축사를 읽고서 마음이 달라졌다. 부국의 핵심 요소로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간파한 박정희의 치적을 평가한 그 글에서 진정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이 물질적 토대와 정신적 문화를 양립시키며 발전해 간다고 할 때 오늘날과 같은 발전의 토대는 ‘박정희 시대’에 큰 빚을 지며 성장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철학과 의지는 ‘그의 시대’에 비해 오히려 빛이 바래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됩니다.

그런 이유에서 ‘박정희’와 ‘과학기술’을 공통분모로 놓고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과학기술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과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되새겨본다는 점에서 곧, 이 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공저자 대부분은 과학기술 분야 인사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박정희와의 인연을 회고하며 척박한 상황을 이겨낸 성과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자세로 글을 썼다. 전상근 전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의 증언을 살펴보자. 미국 퍼듀대에서 화공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그는 충주비료공장, 문경시멘트공장 등에서 일하다 공무원으로 발탁됐다. 그는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울 때 함께 마련한 ‘기술진흥 5개년계획’을 입안한 실무책임자였다.

기술진흥 계획의 핵심은 기술인력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과학두뇌 여럿을 초치해 연구소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이 섰다. 그 장소로 홍릉과 대덕단지가 정해졌다. 홍릉 임업시험장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입지로 선정할 때의 일화다. 산림청이 반대하는 등 실무자 차원에서는 난제가 수두룩했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은 농림부장관, 산림청장, 서울시장 등을 즉시 불러 함께 홍릉으로 갔다. 산림을 되도록 훼손하지 않는 언덕을 골라 입지로 결정했다. 서울시장에게는 홍릉으로 가는 길을 넓히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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