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맥락에서 최근 진행되는 도심 재개발은 제게 양가감정을 갖게 합니다. 도시학자들은 도심 낙후지역에 고급 주거 및 상업지구가 새로 조성되는 것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선 광화문이나 종로1가 지역이 그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낙후된 건물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서면서 중·상류층의 주거지구와 이와 관련된 상업지구가 형성돼왔습니다.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의 주거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쾌적한 주거 및 사무 공간이 새롭게 조성되는 것은 서울이 그만큼 발전한다는 점에서 좋은 일입니다. 그곳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추억이 담긴 곳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선, 저만의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쾌적함 속에서 오히려 느껴지는 삭막감 탓에 아쉬움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켜보면서 ‘나의 도시’였던 서울이 다른 사람들의 도시인 서울로 바뀌어가는 느낌을 가졌다면 저 역시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요.
빌딩과 자동차는 도시의 또 다른 주인입니다. 특히 자동차는 도시 생활을 하는 데 필수품이기도 합니다. 자동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호퍼의 작품이 있습니다. ‘밤샘하는 사람들’과 함께 널리 알려진 ‘주유소’(Gas·1940)입니다. 이 그림의 배경이 된 주유소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실제로 있었다고 합니다. 언뜻 보면 길가에 있는 한 모빌 주유소의 평범한 풍경을 담았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 느낌을 안겨줍니다.
환한 주유소와 어두워가는 숲, 주유소라는 문명의 이기와 혼자 주유 시설을 점검하는 사람의 쓸쓸함, 그리고 시골인 듯하면서도 도시의 외곽인 듯한 풍경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전형적인 미국 풍경이지만, 우리나라를 여행할 때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는 이 작품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깊은 인상을 주는데, 이 그림을 볼 때 제가 갖는 느낌은 한가로움과 쓸쓸함이 공존하는 묘한 감정입니다.

‘주유소’
호퍼의 작품을 통해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현대 도시인의 정서적 정체성입니다. 자유로움과 외로움이라는 이중 감정을 느끼며 각자의 하루하루를 고군분투하면서 살아내는 존재가 현대 도시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유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외롭고 쓸쓸한 현대인의 이중적 모습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개인의 심리적 성숙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잘 통합된 형태는 함께 있을 수도 있고 혼자 있을 수도 있는, 즉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오케스트라의 화음이 좋을 때가 있고 독주가 아름답게 들릴 때가 있듯이, 인간 역시 함께 어울려야 할 때가 있고, 혼자 견뎌내야 할 시간이 있습니다. 이 둘 사이를 적절하게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건조하고 차가운 현대사회에서 적절한 기능을 발휘하며 살아간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따로’도 잘 존재할 수 있고 ‘같이’도 잘 어울릴 수 있는 태도를 위해 필요한 능력은 균형감각일 것입니다. ‘따로’의 감정이 과잉되면 외로움을 느끼고, ‘같이’의 감정이 과잉되면 답답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이 오래 지속되면 우울감에 빠지기 쉽고, 답답함이 오래 지속되면 불안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
인간은 본래 자율을 추구하는 완전 지향의 존재인 동시에 연대를 갈망하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불완전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완전함을 지향하는 것이 현대 도시인의 숙명, 아니 인간 본래의 사명이 아닐까요. 오늘도 도시 생활에 지쳐 있다면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호퍼의 작품들이 제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