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호

美, 우크라이나에서 물러서면 ‘종이호랑이’ 된다

[백승주 칼럼]

  • 백승주 국민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원 kidabsj@gmail.com

    입력2022-02-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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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 극복하려면 ‘힘의 건재’ 증명 필요

    • 종이호랑이 전략 3가지 시나리오

    • ‘탄소섬유 호랑이’로 재탄생하려면…

    • 韓, 순망치한 외교전략 구상해야

    2011년 7월 14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미군이 군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AP]

    2011년 7월 14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는 미군이 군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AP]

    호랑이 해가 되니 미국과 관련해 종이호랑이(紙老虎) 논쟁이 생각난다. 1956년 7월 14일 마오쩌둥(毛澤東)은 베이징을 방문한 중남미 인사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미국은 매우 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려워할 게 없는 종이호랑이다. 종이호랑이는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다. 난 미국이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에 투하된 미국 핵무기로 종식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46년, 마오쩌둥은 미국의 저명한 여성 언론인 애나 루이 스트롱(Anna Louise Strong)을 접견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자탄은 미국이 인민들을 위협하기 위해 사용하는 종이호랑이다. 그것은 무섭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원자탄은 대량살상무기지만 전쟁의 결말은 인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한두 개의 새로운 무기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다.”

    이렇듯 마오쩌둥은 초강대국 미국을 ‘종이호랑이’에 비유하면서 “비바람에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여러 요소를 ‘비바람’이란 단어를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 국제정치학자, 역사학자들은 ‘비바람’을 키워드로 이론을 전개하기도 했다. 폴 케네디(Paul M. Kennedy·1945)가 저서 ‘강대국의 흥망성쇠(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에서 “군사력, 경제력의 균형·불균형이 강대국 흥망을 좌우한다”는 주장도 마오쩌둥이 주장한 비바람을 이론으로 다룬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은 종이호랑이”라는 마오쩌둥의 말은 최근 70여 년간의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미국은 6·25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쟁, 아프간전쟁 등을 통해 세계 정치·군사 질서를 주도했다. 1990년대 초반 옛 소련을 무력화하고 동구 공산권 질서를 해체했다. 미국과 미국의 핵무기를 종이호랑이라고 조롱한 마오쩌둥은 소련이 두려워 상하이 공동성명(1972)을 통해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에 나섬으로써 소련을 견제했다. 마오쩌둥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미국 주도의 중국 고립 전략을 두려워했으며, 서방의 도움을 받아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그러나 올해 미국의 국제적 지위는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도전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위협하고 있다. 중동의 이란과 북한이 핵 개발 의지를 확교히 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단극적 세계질서를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에 대한 도전을 바이든 정부가 극복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할 것이다. 역으로 이러한 상황을 잘 극복한다면 종이호랑이가 아니라 ‘탄소섬유 호랑이’로 재탄생해 다음 70년을 다시금 질주할 수 있다.



    미·중 G2 시대 경쟁 서막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미·중은 상하이공동성명을 선언했다. [뉴리퍼블릭 웹사이트 캡처]

    1972년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미·중은 상하이공동성명을 선언했다. [뉴리퍼블릭 웹사이트 캡처]

    2009년 11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G2(Group of Two)’ 개념을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과 중국을 지칭하는 G2 개념은 2006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미·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행사에서 처음 사용했다. 미국과 중국 양자 문제뿐 아니라 세계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책임지며 함께 방향을 설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공동책임을 강조하는 이면엔 미·중 간 사활적 패권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녹아 있다.

    2005년 중국의 GDP(국내총생산)는 일본의 절반에 불과했으나 2007년 3위 독일을 넘었고, 2010년 2분기엔 일본마저 추월했다. 이러한 성장 추세를 유지한다면 미·중 간 전쟁 수준의 심대한 마찰이 빚어지리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2012년 8월 랜드(RAND)연구소의 안보전문가 제임스 도빈스(James Dobbins)는 ‘중국과의 전쟁(War with China)’이란 논문에서 “중국과 미국은 30년 뒤에 전쟁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그 도화선은 한반도, 대만해협, 사이버 우주, 남중국해, 일본·중국 분쟁 지역, 인도·중국 갈등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도빈스의 예언은 일부 실현됐다. 경제 분야에선 미·중 간 ‘전쟁 수준의 마찰’이 진행돼 왔다. 대만해협, 남중국해 등에선 미국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종이호랑이 된다?

    1월 19일 벨라루스 영토에 진입한 러시아 장갑차와 군인들. 러시아는 벨라루스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주변에 병력 12만7000명을 집결했다. [러시아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1월 19일 벨라루스 영토에 진입한 러시아 장갑차와 군인들. 러시아는 벨라루스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주변에 병력 12만7000명을 집결했다. [러시아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미국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하는 상황은 국제사회가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다. 미국이 강대국으로서의 국가 위엄을 상실한 상황을 말한다. 올해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미국 영향력의 질적 변화는 크게 다음 몇 가지 변수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다.

    첫째 변수는 중국이다. 남중국해, 대만을 둘러싼 군사적 갈등과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한 가치관 갈등 모두 진행 중이지만 핵심은 경제전쟁에 있다. 중국이 경제력 규모에서 G2에 진입한 시점에 경쟁이 본격화한 과거가 이를 증명한다. 오바마 정부 후반기와 트럼프 정부 시기에 미국은 관세, 특정 기업에 대한 제재 등 다양한 수단으로 중국 경제를 압박했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공급망 재편 청사진을 내놓았다. 미 의회에서는 인공지능(AI) 산업의 공격적 육성을 위해 대(對)중국 견제법이 통과됐다. 이러한 미국의 조치에 대해 중국은 내정간섭이자 발전을 막는 행위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미·중 경제전쟁에서 미국의 제재와 대응 조치가 실패했다는 국제적 평가를 받는다면 미국의 헤게모니는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둘째 변수는 러시아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감행되고 이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권위는 급락할 것이다. 미국에 대해 동유럽은 물론이고 나토(NATO)의 신뢰가 크게 약화될 터다.

    셋째 변수는 북한과 중동에서의 핵확산 방지 성과 여부다. 북한의 핵확산을 방지하는 역대 미국 정부의 노력은 사실상 실패했지만 이란에 대해선 절반의 성공을 거둔 상황이다.

    이러한 변수를 중심으로 미국이 종이호랑이로 전락하는 속도에 대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시나리오1: 가장 빨리 전락하는 시나리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으나 미국과 나토가 전혀 대응하지 못해 옛 소련의 일부였던 CIS(독립국가연합)가 일거에 러시아 영향권에 들어가는 상황이다. 일부 국가들은 나토를 탈퇴하고 러시아에 합병된다.

    #시나리오2: 서서히 전락하는 시나리오
    중국과 경제전쟁에서 패배해 첨단산업 분야 등 미래 산업에서 중국에 1위 자리를 뺏기는 상황이다. 첨단산업 분야에선 경제력 규모나 1인당 국민소득보다 지식재산권 확보가 더 중요하다.

    #시나리오3: 가장 완만하게 진행되는 시나리오
    북한뿐 아니라 중동 국가로 핵무기가 확산되는 상황이다. 미국의 군사적 주도권에 상처를 주면서 점차 국가 위엄이 침식될 것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상황에 속수무책으로 대응하고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가 오히려 미국 경제에 대한 내상을 확대시키며 북한과 이란 등 중동 국가의 핵확산이 동시에 진행되면 최악의 상황이다. 이는 워싱턴 조야의 분열정치를 극대화하는 악순환을 만들어 미국을 급격히 종이호랑이로 변하게 할 것이다.

    ‘탄소섬유 호랑이’로 재탄생하는 상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앞엔 중국과의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핵확산 억제 등 수많은 과제가 놓여 있다. [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앞엔 중국과의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핵확산 억제 등 수많은 과제가 놓여 있다. [AP 뉴시스]

    탄소섬유는 금속보다 가볍지만 강도는 뛰어나다. ‘종이호랑이’에 대칭되는 말로서 ‘탄소섬유 호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본다. 미국의 패권이 유지되거나 강화되는 길을 갈음하는 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쇠락할 가능성을 정확히 알고 있다. 또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이 되게 할 원인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31일 바이든은 아프간 종전과 관련해 밝힌 입장문(Remarks by President Biden on the End of the War in Afghanistan)에서 “미국이 이해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바이든의 생각 속에 미국이 종이호랑이로 변할 수 있다는 극단적 인식이 포함돼 있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아프간에서 굴욕적으로 철군하고 나토 회원국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기에 미국 대통령으로서 답답한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 사료된다.

    바이든은 미국의 패권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국제사회의 변화를 막기 위해 중국과의 경쟁, 러시아의 도전, 사이버 공격과 핵확산을 주요 사항으로 언급했다. 올해 바이든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대응할 과제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푸틴의 도전을 극복하는 일이다.

    바이든은 1월 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해 최정예 공수부대와 스트라이커(stryker·신속대응 장갑차) 부대로 구성된 미군 3000명을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정부가 긴급하게 병력을 추가 배치한 까닭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임박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둘째, 미국의 군사개입 의지를 러시아에 보여주기 위함이다. 셋째, 미국의 의지를 나토 등 동맹국에 보여줄 필요성 때문이다. 바이든의 파병으로 공은 푸틴에게 넘어갔다. 푸틴은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바이든 정부의 의지를 시험할 수 있다.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그루지야)를 침공한 이후 단행한 국방개혁으로 군사력을 정예화했지만 미국과 나토와의 전면 전쟁에서 이기긴 어렵다. 바이든의 결기가 푸틴의 야욕을 억제하고 군사적 도전을 분쇄한다면 미국의 권위는 다시 튼튼해질 것이다.

    미·중 경제전쟁의 구체적 결과가 나오는 데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경제 상황은 미국에 다소 유리한 편이다. 경제력 규모에서 중국은 미국의 3분의 2 수준이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중국보다 6배나 많다. 국제통화의 유통 비중에서 달러화는 위안화보다 4배나 높으며 지식재산권은 미국이 중국보다 1.16배 정도 많다. 이러한 조건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면전이 진행된다면 미국이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행정부는 직전 트럼프 정부가 관세 등 중국 대상 직접 제재 수단을 사용했던 것을 넘어 미국의 동맹·우방국을 포섭해 중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아울러 2조2500억 달러(약 2697조 원) 규모의 ‘미국 일자리 계획’에 포함된 예산과 각종 제도적 인센티브를 십분 활용해 우월적 달러 본위 질서를 중국과의 경제전쟁에 이용하고 있다.

    다만 북한 비핵화 문제는 아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들어 북한이 여섯 차례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강대국의 길을 가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방안을 찾지 못했다. 북한에 대한 추가적 유엔 제재도 러시아와 중국의 ‘외교 바리케이드’에 막혀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중동 쪽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 관계자들은 이란의 핵개발 저지라는 목표 달성도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체결연도인 2015년보다 어려워졌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예방하거나, 이를 힘으로 분쇄한다면 종이호랑이가 되리라는 전망을 불식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상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 바이든 정부가 자신감을 회복한다면 중국과의 경제전쟁, 핵확산 방지 전략에서도 선순환 효과를 만들어 ‘탄소섬유 호랑이’로 거듭날 수 있다.

    바이든 정부의 딜레마와 한국의 외교전략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지위와 영향력을 고려하면 아직 ‘종이호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향후 영향력이 약화돼 다수의 국가가 미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종이호랑이가 됐다”라는 표현은 신빙성을 가질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불명예스럽게 철수함으로 인해 미국의 국가 위엄엔 상당한 타격이 가해졌다. 약 20년간에 걸쳐 2조 달러, 하루 평균 3억 달러를 소비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을 친미국가로 만들려 한 미국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모한 2조 달러는 바이든 정부가 중국과의 경제전쟁에 투입하려는 2조2500억 달러에 비견되는 막대한 지출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군사작전을 감행한다면 바이든 정부는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러시아의 군사적 도전을 극복하지 못하면 급속하게 국가 위엄이 쇠락할 것이고, 개입해 러시아와 전면전을 수행할 경우에는 중국과의 경제전쟁에서 힘든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20세기 중반 마오쩌둥의 예언은 정치적 허풍이었으나 “전쟁의 승리는 새로운 무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민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검증됐다. 미국의 영향력 변화가 우리 안보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잇몸이 상하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을 생각하며 외교전략을 짜야 한다. 한국의 생존전략에선 미국이 종이호랑이가 되지 않는 편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現 국민대 석좌교수
    ● 前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前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중국 베이징대 방문교수
    ● 前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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