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창녀까지 언급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중간집단의 배제를 논의하거나, ‘개인=국가’라는 순수한 등식의 구조를 이야기한 적이 없다. 도리어 촌락공동체는 고향이라는 심상의 근거로 언제나 미화되거나, 영호남이라고 하는 부정적 지역감정의 근거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적어도 법적, 정치적으로 민주공화국은 그런 중간집단의 배제를 전제로 한다. 특히 이는 봉건적인 것만이 아니라, 모든 집회 결사에도 해당되는 것임에 유의해야 한다. 즉 경제적 차원의 결합인 봉건적 길드만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의 지방자치도 배격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사회적 차원의 결사도 배척한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기인 1791년에 제정된 노동조합 금지법인 르 샤프리에 법은 1864년까지 유지되었다. 동시에 문화적 차원의 모든 지역주의적 다양성도 국가주의적 통일성에 의해 배척되었다. 그래서 각 지역의 방언이나 문화는 철저히 획일화된다. 그런 국가주의를 프랑스만큼 완벽하게 추구한 근대국가도 없다. 우리나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런 국가주의가 대단히 강한 나라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노동조합이 금지되었고, 지금도 그 결성이나 활동에 제한이 많으며, 지방자치도 대단히 제한적이고, 사회적·문화적 획일성도 강하다.
여하튼 프랑스에서 중간집단으로부터 해방된 개인은 중간집단을 대신해 법적 권리 주체, 즉 ‘인권의 주체=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해 국가의 주권에 복종하는 국민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따라서 망명자나 무국적자처럼 국민에 속하지 않거나, 병역 거부자처럼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인권의 주체인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물론 식민지 민중은 당연히 제외되었다.
이처럼 적어도 프랑스 대혁명에서 민주주의란, 법적으로 국가는 유일한 주권자이고 개인(사실 구체적으로는 부르주아 남자였다)은 국가가 인정하는 인권의 주체인 정치체제를 말한다. 여기서 인권은 국가에서 나오고, 인권의 주체인 개인은 주권에 복종하는 국민이면서 인권의 향유 주체가 된다. 그것이 프랑스 혁명, 인권선언, 헌법의 기본 발상이다. 따라서 이를 천부의 불가양적 자연권 사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이를 흔히 근대사상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개인주의’로 이해해서도 안 된다. 정확히 말해 이는 ‘국민주의’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미국·독일·이탈리아 등 서양 대다수 근대 국가에서 성립된 정치체제는 바로 그런 국민주의의 국민국가였다. 그 틀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를 계승한 우리나라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개인의 자유 억압하는 ‘사회계약’
이러한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이론적으로 사회계약으로 설명된다. 그 대표자인 루소는 중간집단이나 혈연, 지연 등에서 완전히 독립된 개인이 그 의지에 근거한 자발적이고 공화적인 사회계약으로 국가를 세운다고 말한다. 그 계약을 형성하는 전형이 국민투표다.
그러나 개인이 국가를 세우는 현장에서 그런 계약을 실제로 한다는 식의 설명이 역사적으로 맞지 않는 것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역사는 그와 반대로 개인이란 그런 계약 없이 이미 설정된 국가 제도에 포함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민으로 불리게 됨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 이래 사회계약론은 르낭의 ‘국민이란 무엇인가’를 비롯한 19세기 국민주의론을 거쳐 최근 뤽 페리나 핀켈크로트의 보수적 사상에 이르기까지 뿌리깊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좀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 문제는 국가의 구성 단위가 자유로운 개인이라면 당연히 그 자유와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할 터인데, 국가가 개인에게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한다면 그 자유와 다양성은 억압당하고 소멸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개인은 자신의 권리는 물론 존재 자체를 국가에 양도함으로써 국가 내부의 평등을 확보하며 특권자는 소멸한다는 것이다. 그 유일한 지배자인 국가의 의지를 루소는 일반의지라고 부른다. 루소는 모든 개인의 평등하고 완전한 권리 양도에 따라 국가와 개인은 투명한 의사소통을 통해 동일성을 보증받으므로, 일반의지는 또 하나의 ‘자기’, 즉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자기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일반의지에 복종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복종하는 것이므로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합치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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