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들이 농장에 있는 원두막, 풍한정(風閑亭). 이곳은 바람이 많은 곳이라 바람을 막아주는 정자란 뜻.(위) 우수회원에게 으뜸상으로 책을 주고 있는 철환씨. 자루에 든 것은 호미다.(아래)
농장을 찾은 날은 추수감사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추수감사제란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벌이는 잔치다. 농장까지 가는 길에 도시와 농촌이 번갈아 있어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물어물어 찾아간 농장은 겨울이라 그런지 을씨년스러웠다. 거두고 남은 배춧잎이 널려있고, 군데군데 대파만 싱싱하게 서 있다. 농장 입구에 몇 사람이 두부를 만들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사람들이 모여든다. 어느 정도 모이자 간단히 식을 거행한다.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지은 사람에게 상을 주는 시상식이다. 상품이 인상적이다. 으뜸상은 텃밭 가꾸기에 대한 책 한 권과 퇴비 한 포대. 그밖의 상으로 김을 매는 호미를 줬다.
식이 끝나고는 음식을 해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잔치 음식은 두부다. 이 곳에서 손수 농사지은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먹는다. 어쩌면 음식을 마련하는 과정 자체가 의식이고 잔치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회원 한 사람이 농사지은 콩이래야 얼마나 되겠나. 기껏 한두 됫박. 그런데 십시일반이라고 한 사람이 콩 한 그릇씩만 내어놓아도 얼마나 푸짐하겠나. 이 날 보니 회원마다 집에서 콩을 갈아왔다. 이를 모아 베보자기에 넣고 짜 찌꺼기를 거른 다음 가마솥에다가 끓인다. 장작불을 지펴가며. 한쪽에서는 콩물을 짜고 남은 비지로 비지찌개를 끓였다. 뜨끈한 찌개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었다.
끓인 콩물에 간수를 넣으면 순두부가 된다. 순서에 따라 순두부가 되자, 또 순두부를 한 공기 먹었다. 그러고는 두부를 만들기 위해 틀에다 순두부를 붓고 베보자기를 씌운 다음 돌을 얹는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두부가 나온다. 정말 볼품이 없다. 얇고 모양도 들쭉날쭉. 그래도 자신들이 농사지은 콩으로 손수 만든 거라 잘 먹는다. 어떤 분은 두유를 만들었다며 또 한 그릇을 가져왔다.
이제 다 먹었나? 아니다. 이번에는 두부를 얇게 썰어 프라이팬에 부쳐왔다. 들기름을 썼는데 기름을 짠 들깨 역시 이 곳 농장에서 농사지은 거란다. 두부부침, 정말 고소하고 맛있다. 이러다가 과식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콩으로 할 수 있는 요리를 한꺼번에 골고루 해서 먹는 도시농부들. 추운 날씨인데도 번거롭게 두부 만들기를 하는 이유는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서란다. 톱으로 나무 자르기도 재미요, 장작 패기도 재미다. 군불 지피기도 재미로 한다. 큰 가마솥에 두부가 끓는데 얼추 세 시간이나 걸린다. 그 과정에서 콩물이 눋지 않게 저어주는 고생(?) 역시 두부를 손수 만들어 먹는 보람에 견주면 그리 큰 게 아닌 모양이다. 바람 불고 추워 서글픈 마음이 들 법도 하건만 회원들은 아주 즐겁게 돌아가며 저어준다. 굳이 할 일을 나누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것 같다.
생태도시 아바나
아침 11시부터 두부를 만들기 시작해, 만들어 먹고 나니 오후 4시쯤이다. 음식 만들고 먹는 재미에 추위를 잊은 것 같다. 그러고는 풍물도 치고, 떡과 막걸리도 나누어 마시면서 잔치를 즐긴다. 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까지 풍물을 치며 흥을 돋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다시 철환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가 장애인이라 아무래도 장소를 정하는 게 쉽지가 않다. 먼저 서울 남부터미널 근처에서 보기로 약속했다. 시간이 되어 그가 운전하는 차가 오자, 일단 차에 탔다.
“어디로 갈까요?”
“나는 아무데고 좋으니 철환씨 좋은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