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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출판계와 ‘승자의 저주’

2007년 출판계와 ‘승자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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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이 자꾸 비싸지는 이유

원죄는 출판사들에 있다. 누구의 작품이 한국시장에서 먹힌다거나 무슨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우르르 몰려가서 그 작가의 초기작까지 싹쓸이해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느 ‘자금력 있는’ 출판사 사장은 사고자 하는 해외 저작권이 나오면 무조건 “최고 입찰가에 10% 더”를 외친다.

자, 이렇게 비싼 선인세를 치렀으니 흥행은 맡아놓았다? 천만의 말씀이다. 여기서도 ‘승자의 저주’가 통한다. 출판계의 오랜 불황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가 굳어진 지 오래다. 대한출판협회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신간도서는 4만5521종, 1억1313만9668부 발행. 2005년에 비해 종수는 4.4% 늘어나고 부수는 5.5% 줄었다. 종당 평균 발행부수도 2485부로 전년(2746부)에 비해 9.5%나 줄었다.

이런 현실에서 수천만원 또는 억대의 선인세를 지급한 책을 출판한 뒤 가만히 앉아서 팔리기를 기다리는 출판사는 없을 것이다. 이제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이 뒤따른다. 선인세가 1억원이라면 그만큼의 마케팅 비용을 들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에 광고가 실리고,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의 눈길 머무는 곳마다 광고가 붙어 있다. 할인쿠폰에 ‘배보다 배꼽이 큰’ 발간기념 선물까지 끼워준다. 천문학적인 선인세를 지급한 책은 정가가 비싸질 수밖에 없다.

비싼 선인세에 마케팅 비용까지 아낌없이 쓰는 책들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게 있다. 도대체 몇 부나 팔아야 손익분기를 넘을까 하는 점이다. 흔히 하는 말처럼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음 싶다. 1981년 디사우어라는 연구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는 사례연구를 통해 “경매를 통해 출판권을 얻은 책들 대부분이 출판권을 사들이는 데 지급한 선수금 이상을 벌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 이 책들은 참담한 패배로 이어진다”고 보고했다.



설령 이 책들이 초기에 베스트셀러 순위 진입에 성공해 손익분기를 넘기고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 해도 해당 출판사에는 경사일지 모르나 국내 출판계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보듯이 베스트셀러에 대한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국내 출판계에서 이렇게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어 만든 베스트셀러가 몇 종 등장하면 웬만한 책들은 명함도 못 내밀고 종당 평균 발행부수 2485부에서 사라져야 한다. 또 높은 선인세에 길든 해외 출판사들이 알아서 몸값을 낮출 리 없으니, 자금력 없는 출판사들은 해외 유명 작품에 입질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극단적인 예측인가?

협조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자. 세일러 교수는 현실 경제에서 이기적인 탐욕 대신 ‘협조’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 7명이 한 그룹을 이룬다. 이들에게 각각 5달러씩 준다. 이들은 5달러를 공공재 생산에 기여하거나 아니면 자기가 갖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7명 중 전액을 공공재 생산에 기여한 사람의 수가 일정 기준(예를 들어 5명 이상)을 넘으면 그 집단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기여 여부에 관계없이 10달러를 받는다. 그러니까 그룹내 기여자의 수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기여한 사람들은 애초 받은 돈의 2배인 10달러를 상으로 받고, 기여하지 않은 사람은 애초의 5달러에 상으로 받은 10달러까지 15달러를 받는다. 그러나 만약 기여자가 기준치를 밑돌면 아무런 보상이 없다. 즉 기여자는 5달러를 날리고, 기여하지 않은 사람은 원래의 5달러를 그대로 갖게 된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무임승차자(기여하지 않은 사람)는 기여자가 5명 이상이면 15달러, 기여자가 5명 미만이어도 5달러는 챙길 수 있는데 기여자는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으니 불공평하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이 경우 무임승차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많은 사람이 금전적 보상에 상관없이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 때문에 기여를 선택했다. 보통 기여율은 40~60%에 달한다.

이제 출판계는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 ‘협조의 규범’에 눈을 돌려야 한다. 점점 더 높은 입찰가를 써내야 하는 저작권 경매 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값비싼 경품과 할인쿠폰, 1+1식의 무한 마케팅 대신 도서정가제라는 ‘협조의 규범’을 받아들인다면, 그 혜택은 모든 출판사에 골고루 돌아갈 것이다.

신동아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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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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