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지식은 반대의 기능도 한다. 외국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한국인임을 알면 가까운 느낌을 받다가 그가 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경계선이 생길 수도 있다. 어떤 대상이든 상세히 파헤칠수록 틈새와 경계선은 점점 더 벌어진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소한 그 틈새들이 때로는 통합을 거부하는 강력한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물론 연속성을 원하면 전체를 보고 단절을 원하면 세부 경계선을 보는 식으로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관점을 바꿀 수도 있지만,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도 생기게 마련이다.
‘지(知)적 존재’를 먹는 부담
사람에게 친숙한 일정 정도의 지능을 가진 동물종(種)을 먹이로 삼을 것인지의 문제도 그렇다. 개는 가축이 된 이래로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 사람의 친구도 되고, 파수꾼도 되고, 구조자도 되고, 화풀이 대상도 되고, 식량도 된다. 하지만 개를 방에 들이고 친구나 자식으로 삼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개의 역할 중 하나를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개는 알면 알수록 지능, 행동, 감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간과 비슷한 면이 많으니 ‘식량’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개에 대한 지식은 개와 인간이 어떤 면에서는 동질적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증거로 활용되며, 그 논리에 동조하는 사람도 꽤 많아졌다.
그렇다면 물고기는 어떨까. 진화 단계로 볼 때 어류와 인간은 그리 가깝지 않은 편이다. 둘 사이에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가 놓여 있으니까. 진화적으로 좀 먼 친척이니 먹이로 삼아도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거기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어류도 나름대로 영리하며, 그 지능에 걸맞은 대접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1990년대 초 생물학자 리 듀거킨은 관상어로 애용되는 거피를 야생에서 잡아다가 키우면서 재미있는 실험들을 했다. 그는 칸막이를 넣어 어항을 세 부분으로 나눈 뒤, 양쪽 끝 방에 크기와 무늬가 비슷한 수컷을 한 마리씩 넣었다. 가운뎃 방에는 암컷을 놓았다. 적응 기간을 거친 뒤 그는 한쪽 칸막이를 열었다. 암컷은 그 방에 있는 수컷과 구애 행동을 했고, 그 광경을 다른 암컷이 지켜보게끔 했다.
그런 다음 원래 암컷을 빼내고 지켜본 암컷을 풀어서 마음대로 짝을 선택하도록 했다. 놀랍게도 그 암컷은 모델이 됐던 암컷이 선택한 수컷을 선택했다. 20번 실험을 했는데 같은 결과가 17번 나왔다. 거피는 짝을 선택할 때 다른 암컷의 행동을 보고 모방한 것이다. 그것은 거피가 수컷 개체의 특성을 구분할 수 있고, 모델 암컷이 선택한 수컷을 기억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거피의 뇌는 콩알만하지만 ‘고등동물’ 못지않은 인지능력을 갖고 있었다.
듀거킨은 후속 실험을 통해서 이 모방 요인과 유전적 요인의 상대적인 세기를 비교했다. 그가 잡아온 강의 거피들은 유전적으로는 밝은 오렌지색 수컷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관찰자 암컷에게 모델 암컷이 더 칙칙한 수컷을 선택하는 광경을 지켜보도록 한 뒤 선택을 하도록 했다. 그러자 수컷이 다른 수컷에 비해 훨씬 더 칙칙할 때에는 모방 요인보다 유전적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했지만, 칙칙한 정도가 덜할 때에는 모방 요인이 상당하게 작용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모방은 문화 현상이자 사회적 현상이다. 물고기 거피의 세계에서도 소위 ‘문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물고기도 기억력 있다
그렇다면 어류의 기억력은 어떨까. 사람들은 어류의 기억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해왔다. “금붕어는 3초면 잊는다”고 했다. 하지만 동굴의 물속에 사는 눈먼 동굴 물고기들을 연구한 학자들은 다른 결론을 내린다. 토마스 테이케는 눈먼 동굴 물고기가 익숙한 환경에 있을 때와 낯선 환경에 있을 때 헤엄치는 행동이 달라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