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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상락의 인도네시아 파푸아 요절복통 여행기

“돼지 두 마리 주면 처녀 하나 줄게”

소설가 이상락의 인도네시아 파푸아 요절복통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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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상락의 인도네시아 파푸아 요절복통 여행기

머라우케에 세워진, 네덜란드와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모에르다니 장군상.

승은호 회장의 성공담은 한 편의 입지전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내가 주목한 것은 ‘해외에서 성공한 기업가 승은호’가 아니라 코린도의 한국인 직원들이 정치, 경제, 생활문화 등이 판이한 인도네시아의 오지에서 맨몸으로 맞부딪치며 겪어낸 ‘현지화’ 과정의 체험담이었다. 현지 고용인 한 명을 해고했다가 톱으로 뒷목을 ‘썰리는’ 테러를 당한 인사담당 직원의 아찔한 경험담에서부터, 원목 운송 중에 호랑이를 잡아 가죽은 벗겨 말리고 그 뼈를 고아 호골환(虎骨丸)을 만들었다는 무용담에 이르기까지, 코린도 개척기에 한국인 임직원들이 겪은 현지화 체험담은 그 자체로 한 편의 탐험소설이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런 얘기들을 현지에 가보기는커녕 코린도의 서울사무소에서 승 회장과의 인터뷰만으로 독자에게 소개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내가 말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현지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 특히 이리안자야에.”

그때 승은호 회장이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에 없다. 아마 “기회를 한번 만들어봅시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꼭 7년이 지난 2007년 여름, 뜻밖에도 승 회장으로부터 “이리안자야 탐사 팀을 구성 중인데 참여하겠느냐”는 제의가 왔다. ‘탐사’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두말없이 “좋다”고 했다.

더군다나 내가 ‘신동아’에 ‘이 사람의 삶-승은호’편을 쓴 지 한 달 뒤인 2001년 1월, 파푸아에서 한국인 임원이 포함된 코린도 직원 열몇 명이 분리독립운동(자유파푸아운동) 단체 소속 게릴라들에 의해 정글 속으로 납치된 사건이 벌어졌다. 게릴라들이 요구한 몸값이 무려 20억달러. 언론사마다 자카르타로 기자들을 특파해 취재경쟁을 벌이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 피랍사건의 결과는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고, 이번 여행길에 당시 게릴라들에게 피랍됐던 한국인 임직원을 직접 만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취재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출발 전에 이미 받아둔 터였다. 우리가 여행길에 오르던 때는 마침 한국인 선교단이 탈레반 무장세력에 집단으로 납치, 억류돼 있던 시점이라 7년 전 납치사건의 전말을 더듬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졌다.



‘신동아’ 독자 여러분이 이 여행기를 2000년 12월호 ‘이 사람의 삶’에 대한 ‘애프터서비스’ 쯤으로 생각해주시면 좋겠다. 달리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태극기와 ‘I Love Indonesia’

2007년 8월1일 밤 9시. 자카르타 공항에 6명의 사내가 모였다. 거창하게 말해서 ‘파푸아 탐사대’다. 이 탐사대의 대장은 물론 코린도그룹의 승은호 회장이다. 회장이라고 사업장을 무시로 드나드는 것은 아니다. 처음 파푸아에 합판공장을 세울 때에야 직접 현지에 가서 부지선정을 하는 등 부단히 드나들었으나 경영이 궤도에 오르고 나서는 (워낙 교통의 오지여서) 쉽게 걸음하게 되지 않더라 했다. 그에게는 3년 만의 파푸아행인데, 단순한 사업장 방문이 아닌 여행 그 자체를 목적으로 파푸아를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했다.

나와 함께 서울에서 내려간 오세윤(64) 코린교역 사장은, 코린도그룹의 서울지사장 격인데, 업무상 자카르타에는 몇 번 다녀왔으나 파푸아에 다녀온 적은 없다 했다. 그는 어쩌다 나와 전화 통화를 할 때면 “아, 그 꼬데까(성기 가리개) 차고 다니는 원시종족 얘기 들어보셨지요? 그런 풍습 사라지기 전에 이리안자야에 꼭 한 번 다녀와야 하는데…”를 입에 달고 지냈다. 소원성취를 한 셈이다. 이번 여행의 사진을 책임지겠다며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 세트를 구입하기도 했다.

이원우(58) 전무. 코린도에서 파이프 코팅 사업을 새로 시작하면서 외부에서 영입한 임원이다. 자신이 맡은 분야뿐 아니라 코린도그룹의 모태가 된 원목사업의 현지상황도 알아둘 필요가 있어서 이번 탐사대에 자원했다고 한다. 김문태(54) 상무는 그룹의 총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번 탐사팀의 살림살이를 도맡게 됐다.

또 한 명이 있다. 우리의 파푸아 여행을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증(?)해줄 사람이다. 주(駐)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의 정용칠(54) 공사다. 그곳도 우리 교민이 거주하는 곳인데 생판 몰라서야 되겠느냐며 실태 파악을 겸해서 따라나섰다. 이렇게 여섯. 코린도 식구가 아닌 사람은 정 공사와 나뿐이고, 그중에서도 인도네시아어 구사에 깡통인 사람은 나 하나다. 하지만 무슨 걱정이랴. 그곳에 가면 인도네시아어뿐만 아니라 소수 종족의 언어에도 도가 튼 코린도의 임직원이 즐비하다 했으니.

밤 10시. 자카르타 공항에서 보잉 737기(126인승) 국내선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야간비행으로 스케줄을 잡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카르타에서 파푸아 남단의 머라우케까지 직항하는 항공편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중간에 두 군데 혹은 세 군데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이야 어떻든 난 본시 낮밤을 거꾸로 살아온 올빼미 체질이라 비행기가 밤중에 하품을 하든 지쳐 드러눕든 상관할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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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writers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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