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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온몸으로 밀고 나간 참여시의 거침없는 삿대질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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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시인 김수영은 마흔여덟에 세상을 달리했다. 혹자는 30대 김소월의 죽음보다 김수영의 죽음을 더 안타까운 요절로 느낀다. 갑갑하게 옥죄는 사회검열에 반동하고, 자기검열의 압박에 가슴을 풀어헤치며 온몸으로 자유를 이행(履行)하려 했던 그는 누구보다 젊었기 때문이다.
김수영
1968 년 ‘사상계’ 1월호(잡지 사정상 2월에야 발간)에 ‘지식인의 사회참여’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도전적인 평론이 실렸다. 일간신문의 논설을 상대로 해서 쓴 이 글에서 김수영은 언론이 현실문제에 대해 ‘이 빠진’ 소리를 하거나, ‘방관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꼬집었다. 예컨대 1967년의 6·8 부정선거 규탄이나 서울대생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세칭 ‘민비(民比)’)사건과 관련, 시위자들의 발언이 지하로 매장되거나 피고인들을 두둔하는 발언은 “모조리 휴지통에 쓸어넣는” 등 언론이 사실상 ‘검열관’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해 ‘조선일보’ 사설란에 이어령의 ‘우리 문화의 방향’이 실렸다. 이어령은 이 글의 서두에 “우리 사회는 경제건설 다음에 문화발전을 이룩한다는 서열을 매기지 말고 발전의 표리로서 문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전제를 내세우면서, “(문화)의 방향의 문제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것은 동백림사건”이라며, “상당수 문화인이 그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자체는 간첩행위 이상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행위의 밑에 만의 일이라도 ‘인터내셔널’한 생각이 깔린 소치였다면, 이는 관련자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일반문화인의 성향과 관련시켜 심각히 생각해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수영은 이 사설의 경제와 문화에 대한 전제에 대해 너무나 당연한 것을 내세우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는 가장 전형적인 안이함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그 사설은 ‘본론’인 동백림사건에 대해 ‘인터내셔널’이란 애매한 표현을 써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일반 문화인의 성향’과 ‘관련시켜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수사를 늘어놓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관련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힐난했다.

요컨대 문화와 예술의 자유 원칙을 인정한다면, 학문이나 작품의 독립성은 어떤 권력의 심판에도 굴할 수 없고 굴해서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무식한 위정자들은 문화도 수력발전소의 댐처럼 건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최고의 문화정책은 내버려두는 것이다.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라고 김수영은 주장했다.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하다”



김수영은 이 평론에서 이어령이 1967년 말 ‘조선일보’에 발표한 ‘에비가 지배하는 문화’라는 시론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창작의 자유가 억압되는 원인을 지나치게 문화인 자신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있는 것 같은 감을 주는 것이 불쾌하다. 우리나라 문화인이 허약하고 비겁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을 그렇게 만든 더 큰 원인으로 근대화해가는 자본주의의 고도한 위협의 복잡하고 거대하고 민첩하고 조용한 파괴 작업을 이 글은 아무래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김수영은 이어서 우리 문화를 지배하는 ‘에비’는 이어령이 보는 것처럼 “구체적인 대상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닌, “가상적인 어떤 금제(禁制)의 힘”이 아닌, “가장 명확한 금제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김수영에게 그것은 바로 ‘상상적 강박관념’이었고, 그런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모든 ‘불온한’ 작품이 거리낌 없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 한 위기는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 순간에 있다”고 했다.

다소 길다는 느낌이 들겠지만 논쟁의 진행을 좀 더 따라가 보자. 1968년 2월20일자 ‘조선일보’에 이어령의 ‘오늘의 한국문학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문예시평’이 게재됐다. 이에 김수영은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적 자유’를 발표, 문학의 전위성과 정치적 자유의 문제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밀착해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이해가 뒷받침된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반격했다.

“다시 말하자면 그(이어령)는 모든 진정한 새로운 문학은 그것이 내향적인 것이 될 때는-즉 내적 자유를 추구하는 경우에는-기존의 문학형식에 대한 위협이 되고, 외향적인 것이 될 때에는 기성사회의 질서에 대한 불가피한 위협이 된다는, 문학과 예술의 영원한 철칙을 소홀히 하고 있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적용하려들고 있다.”(김수영 산문선집 ‘퓨리턴의 초상’, 1976,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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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무한│언론인, 현대사연구가 ymh68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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