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왕국인 일본은 그러한 만화 열풍을 기반으로 수많은 명작만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연간 발행되는 만화잡지만 300여 종, 국내 만화잡지가 10여 종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천문학적인 규모다. 평균 1만여 편의 만화가 실시간으로 시중에 연재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베스트셀러가 탄생한다. 독자들에게 평가받은 베스트셀러는 TV시리즈 애니메이션 및 게임 원작으로 계약이 진행되고, 최근에는 실사영화로까지 제작되고 있다. 중국영화 ‘적벽대전’이 1·2부 두 편으로 제작됐듯이 이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시리즈 영화가 많다. 원작료 상승이 시리즈 영화의 기획으로 연결된 것이다. ‘데쓰노트’는 1·2부로,‘20세기 소년’은 1·2·3부로 제작되고 있다. 이처럼 풍요로운 만화 원작시장의 활성화는 일본을 만화왕국을 넘어 게임왕국과 애니메이션왕국, 그리고 영화왕국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 또한 일본 만화에 주목한다. 2001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SF영화 ‘AI ’는 데스카 오사무의 ‘철완아톰 : 우주소년 아톰’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2008년 개봉한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레이서’도 196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마하 고고고 : 달려라 번개호’에서 원작을 가져왔다. 할리우드 최고 흥행작인 ‘트랜스포머’ 또한 미·일 합작 제작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며, 2009년 개봉 예정인 ‘드래곤 볼’은 1980년대 말을 풍미했던 일본 최고의 인기 만화가 원작이다.
만화는 콘텐츠시장의 핵심
사실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DC코믹스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수퍼맨’ ‘배트맨’과 마블코믹스가 저작권을 소유한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아이언맨’ 등 수많은 수퍼히어로 만화 원작 영화들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바야흐로 만화 원작이 콘텐츠시장의 핵심으로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이런 상황의 뒤편에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접해온 만화세대(Comic Generation)의 성장이 있다. 만화에 중독됐던 세대의 상상력과 호기심, 그리고 추억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보고로 각광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의 연계선상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만화세대의 콘텐츠 부메랑효과 면에서 일본과 미국은 차이가 난다. 미국은 여전히 지나간 콘텐츠 원작의 부활에 애쓰고 있다. DC코믹스와 마블코믹스 원작들은 1930~40년대에 등장한 수퍼히어로들이다. 차용하는 일본 작품도 대부분 1960년대 것들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은 여전히 최신작을 원작으로 게임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영화가 제작된다.
일본 만화의 수요가 여전하며,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만화세대의 스펙트럼이 두껍고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만화세대는 10대와 20대 초반에 국한된다. 물론 최근 30대와 40대까지 만화 마니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60~70대도 만화를 즐겨 보는 일본처럼 독자층의 광역화가 결국 만화 원작의 충실도를 높이고, 이를 통해 다른 산업 발전까지 이끌어내는 사회적 인프라로 연결되는 것에 주목해야 된다.
중장년층 만화세대의 등장과 실버코믹스의 인기
일본의 만화세대 광역화는 30, 40대 중장년층이 좋아할 소재와 스타일의 만화가 다양하게 출간되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장년층도 만화를 적극 구매하도록 만드는 작품, 이를 두고 ‘실버코믹스(Silver Comics)’라고 한다. 일본의 실버코믹스는 중장년층 샐러리맨들의 출퇴근시간 기호상품이다. 자신의 상황을 대변하는 소재와 이야기, 바쁜 생활에서도 능력계발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들을 도와주는 전문정보, 무미건조한 일상을 달래주는 스토리텔링에 중장년층이 빠져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