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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에 비친 10대 정서

날것 언어로 드러내는 육체적 욕망의 변주곡

노랫말에 비친 10대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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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발표된 디바의 ‘왜 불러’를 들여다보자. ‘왜 불러 날 잡은 건 너의 실수야/나보다 좋은 여잔 얼마든지 있는데’라며 ‘내탓 정서’가 강했다면 2008년 발표된 태양의 ‘죄인’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잘못되면 너 때문인지 알아/날 망치게 한 원인 모두 다 너니까/다른 사람을 만나 불행해주겠니/기도해줄 테니’라는 가사에서는 이별의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는 것을 넘어 타인의 불행을 빌기도 한다.

애인이 변심해 바람을 피우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1998년 인기를 끌었던 젝스키스의 ‘너를 보내며’가 모든 걸 단념하고 상대를 위해 떠나주겠다고 했다면(내가 아닌 사람과 함께 있는 널 봤어/모든 걸 이제 단념해야겠지/이제 사랑했던 널 위해 먼저 떠날게), 다비치의 ‘사랑과 전쟁’(두 번 다시 바람 피지 마/네가 매달려 만난 거잖아/어떻게 날 두고 다른 여잘 만날 수 있니/내게 더 정말 멋진 남자들/가끔은 내게 다가와 흔들릴 때도 있어)에는 상대에 대한 원망과 맞바람을 피울 수 있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

태양의 ‘나만 바라봐’(내가 바람 펴도 너는 절대 피지마 Baby/나는 너를 잊어도 넌 나를 잊지마 Lady/가끔 내가 연락이 없고 술을 마셔도/혹시 내가 다른 어떤 여자와/잠시 눈을 맞춰도 넌 나만 바라봐)는 내가 바람을 피워도 상대는 그래선 안 된다는 이기적인 노랫말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사회 비판 → 자기만족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아이돌 그룹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일부 가요의 노랫말은 개인적인 감정 묘사에서 벗어나 사회비판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H.O.T.의 데뷔곡은 학교폭력을 다룬 ‘전사의 후예’. 젝스키스도 한국 교육현실을 비판한 ‘학원별곡’으로 데뷔했다. 이들은 10대 외에 더 넓은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려고 시도했다. 1998년 발표된 H.O.T.의 ‘빛’은 실패를 딛고 희망과 구원을 이야기하는 곡. 손, 하늘, 어둠, 빛 등의 은유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 노래는 사랑의 실패뿐만 아니라 사업에 실패해 슬퍼만 하지 말고 다같이 함께 가자고 북돋우는 희망가다(앞으로 열릴 당신의 날들을 환하게 비춰줄 수 있는 빛이 되고 싶어/이제 고개를 들어요 눈부신 빛을 바라봐요).

H.O.T.의 ‘열 맞춰’(케케묵은 권위 명예와 돈과 욕심 많은 것들 바꿔야 해/자기 것만 알고 남은 짓밟고 다 내꺼 다 내꺼/1등 아니면 다 안 된다는 생각 2등부터 고개 들지도 마/이제 모든 굴레 벗어나고 싶어)도 1등을 위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정서를 담았다.

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당시는 1990년대 이후 댄스가요를 주로 하는 기획 그룹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을 받아 사회비판적인 신세대의 반항 기조를 유지하려 노력하던 시기”라고 평했다.

반면 2008년 아이돌 그룹의 가사에는 사회성이 결여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빅뱅이 2집 타이틀곡 ‘붉은 노을’을 발표하며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를 당한 태안을 살리자는 메시지를 담았지만, 이는 일회성에 불과했고 효과도 미미했다. 상당수노래의 주제는 자기만족과 남녀 간의 애정문제로 귀결된다. 전형적인 공주병 환자가 주인공인 원더걸스의 ‘소 핫’이 대표적인 예다. (언제나 어디서나 날 따라 다니는 이 스포트라이트/어딜 가나 쫓아오지/식당 길거리 카페 나이트 도대체 얼마나 나일 들어야 이놈의 인기는 사그라들지 원/섹시한 내 눈은 고소영/아름다운 내 다리는 좀 하지원/어쩌면 좋아 모두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애 오노~)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던 예전과 달리 뒤돌아보지 않고 냉소적인 특징은 빅뱅의 ‘하루하루’에도 드러나 있다.(네가 없인 단 하루도 못 살 것만 같았던 나/생각과는 다르게도 그럭저럭 혼자 잘 살아/돌아보지 말고 떠나가라/또 나를 찾지 말고 살아가라)

가사 왜 자극적인가

“이거 열아홉 살짜리들이 무슨 노래를 하는 거야?” KBS2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 코너에 출연하는 왕비호가 2PM의 ‘10점 만점에 10점’과 원더걸스의 ‘소 핫’에 대해 던진 독설이다. 평균 연령 10대 후반의 가수들이 나이에 걸맞지 않은 되바라진 노랫말로 인기를 끌자 이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한마디로 “미제너레이션(Me-Generation)의 반영”이라고 분석했다. 자기 본위적인 정서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긍정적으로 보면 어려운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한 자존감을 지키려는 욕구의 표현이지만 대중음악이 개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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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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