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걸리를 즐겼던 故 천상병 시인
한국문단을 이야기하자면 술이 빠질 수 없다. 그렇다고 문인 모두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한국문단이 지닌 속내를 더듬을 때 술이 빠지면 ‘팥소 없는 찐빵’처럼 꽤 서운한 까닭은 따로 있다. 문인들과 술에 얽힌, 그야말로 기절초풍을 몇 번이나 해도 모자랄 만큼 별의별 희한한 이야기가 정말 많기 때문이다.
옛말에 술은 ‘술술술 잘 넘어간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 했다. 문학은 다르다. 문학작품 한 편을 쓸 때도 술처럼 그렇게 술술술 잘 써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문인들은 한 작품을 준비할 때 술처럼 술술술 나오기 바라면서 술을 술술술 마신다. 한 작품을 끝냈을 때는 술을 더욱 즐겁게 술술술 마신다.
술과 문학은 앙숙이자 살가운 벗이다. 술이 어떤 때는 문학과 문인을 통째 잡아먹기도 한다. 문학과 문인이 어떤 때는 술을 통해 이 세상을 깡그리 잡아먹기도 한다. 문학과 술, 문인과 술은 수없이 맞붙어도 언제나 무승부다.
술과 문학은 앙숙이자 살가운 벗
21세기 들어 젊은 문인들은 술을 ‘너무 가까이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멀리 해서도 안 된다’(不可近不可遠)며 술좌석에 은근슬쩍 끼었다가 약삭빠르게 잘도 빠진다. 지난 1980~90년대에 그런 약삭빠른 짓거리를 하다간 문단에서 살아남기(?) 꽤 어려웠다.
시대가 어두운 탓도 있었다. 먹고살기도 너무 빠듯했다. 문인들은 그때 술을 살가운 동무로 삼아 슬픈 절망을 이겨냈고, 술과 안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경남 하동 출신인 정규화(1949~ 2007) 시인이 오죽했으면 “서울에 가서 유명한 문인들을 만났더니 아침부터 술만 자꾸 사주더라. 나는 배가 고파 죽겠는데 말이야”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었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정 시인은 문학인들과 어울려 밤새 술을 마시다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가 기사가 요금을 달라고 하자 마치 시인이 큰 벼슬이나 보증수표라도 되는 것처럼 “나, 시인이여!”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그냥 가려 했다. 정 시인은 그 자리에서 파출소까지 끌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술과 문학, 문인과 술. 이 둘 사이에는 배꼽을 잡고도 웃지 못 할 무슨 우스꽝스러운 일이 그리 많이 있었던 것일까. 술이 문학과 웃통을 벗고 죽자 사자 싸우고, 문학이 술에 온몸을 던져 싸운 까닭은 무엇일까. 원고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때, 그 가난한 문인들이 왜 남보다 술을 더 좋아했을까. 다음 술 이야기에 나오는 문인들이 ‘이 새X 이거 정말 미친놈 아냐?’라며 글쓴이 뺨따귀를 거세게 때릴지. 괜한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故 이선관 시인
피에 젖어서
똥에 젖어서
사는 거보다
나은 일이다
한 말의
술을 마시고
한 말의 오줌을 싸면
나는 텅 빈다 -최명학 ‘술’ 모두
1970년대 끝자락. 내가 시인이 되는 꿈을 꾸며 열심히 시를 쓸 때 고향인 경남 창원에 있었다. 그때 자주 만난 문인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환경시인 ‘독수대’를 쓴 이선관(1942~2005) 시인과 최명학(1952~2002) 시인이 있다. 이 시인은 한 살 때 백일해 약을 잘못 먹어 한번 죽었다가 다시 깨어났으나, 뇌성마비 2급 장애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강원도 홍천 출신인 최 시인은 군에서 제대한 뒤 곧바로 어머니를 따라 마산으로 이사를 한 시인이자 소설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