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는 10년 전인 2003년 ‘신동아’ 6월호에 실은 ‘인천 광혜원 기적의 암 치료법-공개검증 결과 거짓 드러나면 내 치료법에 침을 뱉어라!’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인천 광혜원한방병원(이하 광혜원)이 많은 말기암 환자를 생존시킨 암 치료법을 국가적 차원에서 공개 검증하기 바란다는 이례적인 사연을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최 교수가 당시 원장으로 있던 광혜원은 2002년 11월 암환자 권익보호를 위한 암환자 및 보호자 모임 ‘암환자 가족을 사랑하는 시민연대’(암시민연대)로부터 유수 양·한방병원을 제치고 ‘암 치료기관 대상’을 수상했으며, 그 근거로 광혜원은 1997년 12월부터 1999년 6월까지 진료한 암환자 175명 중 4기 이상 암으로 1년 이상 생존한 환자가 103명이라는 놀라운 소견자료와 환자 명단을 제출했다는 게 그것이다. 더불어 한 명의 의료인이 단일한 치료법으로 다수 암환자를 치료해 생존시켜, 이른바 ‘의학적 재현성’을 지녔다고 볼 여지가 있는 만큼 국가가 이들의 공개 검증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도 담았다.
이후 최 교수는 스스로 평가받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갔다. 세계적 의료통계전문회사의 한국지사 임상수탁기관(CRO)에 환자 동의를 받은 후 개개인의 진료기록과 치료 이전 타 대학병원 의무기록을 제출토록 해 생존 조사를 의뢰했다. 그는 2006년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통합암센터장, 경희대 한의대 임상종양학 주임교수,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암센터장을 거치는 동안 130여 편의 논문을 제출해 전문교수 수백 명으로부터 평가를 받았다. 보통 논문 한 편당 적게는 3명, 많게는 5~7명의 전문교수가 논문 심사를 한다.
그는 지난해 10월 단국대 특임부총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올해 7월 운영 개시를 목표로 경기 용인시 단국대 죽전캠퍼스에 넥시아를 활용해 암환자를 진료할 ‘넥시아글로벌센터’ 건립을 추진했으나, 대한의사협회가 단국대에 센터 건립 중단 요청 공문을 발송하는 등 양방 측의 조직적 반발에 부딪혀 공사가 중단되는 난항을 겪었다. 더욱이 최 교수는 지난 17년간 자신의 암 치료법을 둘러싼 양방 측과의 공방 속에 검찰, 경찰, 식품의약품안전청(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소환 조사를 수없이 받았다.
그간의 과정만 훑으면, 최 교수가 양방 측 공세에 밀려 부득불 해외로 나가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진료 영역이 손쓸 방도가 없다는 진행암이고, 바로 그 이유로 좋든 싫든 뿌리 깊고 첨예한 양·한방 갈등의 전면에 설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그가 외국행을 택한 속사정은 암환자들에게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앞으로 해외에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을까, ‘10년 만의 재회’는 10월 30일 서울 강남 모 호텔에서 이뤄졌다. 그는 인터뷰 다음 날인 10월 31일부터 11월 11일까지 싱가포르, 독일, 미국을 다녀오는 여정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이번 ‘신동아’ 인터뷰가 내년 초 공식 출국을 앞두고 하는 마지막 인터뷰라고 했다.
“기존 환자는 끝까지 책임”
▼ 외국행을 결심한 이유는.
“항간에선 내가 양방 측 견제로 인해 한국을 떠나는 것으로 추측하는데, 오해다. 해외로 쫓겨가는 게 아니라 진출하는 것이다. 넥시아를 필두로 한 한방 암 치료를 세계적으로 보편화하기 위해서다. 국내에서 양방 측에 배척당한 내 치료법을 선진국 과학자들이 그들의 언어로 풀어내리라 확신한다. 양약은 성분 위주지만, 한방약은 ‘정기신혈론(精氣神血論)’에 입각해 있다.
돌아보면, 내가 너무 앞서 나갔다.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하다보니 그들에겐 마치 내가 뭔가를 독식(獨食)하려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을 터다. 하지만 난 아무도 하지 않는 새로운 암 치료법 개발을 나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해왔다. 다행히 이젠 관련 분야의 많은 이가 관심을 갖게 돼 국내에선 할 만큼 했다고 본다. 물론 내가 한국에서 더 할 일이 있다면 언제든 돌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