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이 그랬다. 작업실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의 약속을 위해 나갔으나 그만 어떤 이의 사정으로 한 주 미뤄지게 됐다. 조금만 일찍 연락이 닿았더라면 굳이 작업실을 벗어날 까닭은 없었는데, 이미 나는 인사동에 나와버렸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저녁 약속은 8시 시청 앞. 그 사이의 7시간이 갑자기 주어졌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야만 하는 약속이 아닌 바에야 그저 혼자 배회하는 습관을 유지할 뿐 한 줌의 시간이 생겼다 해서 누군가를 불러 허튼 소리나 주고받는 일을 극도로 경계해왔으므로 나는 곧 휴대전화를 진동 모드로 바꿔놓고는 광화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는 식민지였던가. 우선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인사동 사거리에서 광화문 쪽으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언덕길, 오른편으로 높고 길고 둔중한 담장이 꽤 지속되었다.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였는데, 어느 기업이 우여곡절 끝에 매입했고 바로 이 자리에 호텔을 짓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전통의 명문 학교들이 터를 잡고 있어서 관광객 유치가 목적인 호텔이 이 자리에 들어설 수 있겠는가 하는 비판 여론 또한 들어서 알고 있다.
길고 높고 둔중한 담장이 가리고 있던 터를 상상하니, 외국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제3세계 어딘가에서 긴급 사태가 발생하는데, 그래도 그곳의 현지 미국대사관이나 관련 시설은 안전지대가 되는, 그런 영화를 생각하니, 이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 부지야말로 꼭 그런 지점에 꼭 그런 형상의 담장으로 둘러쳐진 외지의 영토 같았다.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지만 길고 높고 아득한 담장 때문에 한참이나 걷는 느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윽고 광화문이 보이고, 동십자각 근처에 다다랐는데, 내 발걸음은 갑자기 우회전해 한참을 더 올라갔다. 수십 년 동안 한국 미술계와 문화계의 숙원이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했으니, 갑자기 텅 빈 이 시간이야말로 그곳을 둘러보기에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쌀쌀하고 흐린 평일 오후임에도 꽤 많은 관람객이 모여들어 있었다. 주말이면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다. 도심에 새로 뭔가가 생기면 사람들이 몰려온다. 누군가는 그런 풍경을 못마땅해하는데, 무엇인가가 새로 생겨서 사람들이 아이들 손잡고 몰려가는 일이야말로 간절하고 애틋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야박하게 살아오는 동안 무엇인가를 구경하고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귀갓길에 밥이라도 함께 먹는, 그런 풍경에조차 우리는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전시회는, 일단 ‘서울관’이 아니라 ‘서울대관’ 같았다. 개관 기념 전시인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의 참여 작가 38명 중 27명이 서울대 미대 출신이었다. 하아, 역시 이 나라는 예술에서도 얼어 죽을 서울대의 나라구나, 이런 푸념이 절로 드는 구성이었다. 그런데 더 문제는 ‘서울대 동문전’ 같은 인적 구성이 아니라 ‘시대정신’이라는 주제 아래 전시된 작품들로부터 팽팽한 ‘시대정신’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까짓 서울대면 어떠랴, 기획 의도에 맞게 작품이라도 시대의 정신을 제대로 반영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듣자 하니 조금 세게 ‘시대정신’을 추구한 몇몇 작품은 제외됐다는 얘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