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호

하나만 파고드는 거라면, 과욕이라도 용서가 되잖아?

  • 김갑수│시인, 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입력2009-02-03 17: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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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경량 복합기능의 MP3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라 더욱 턴테이블 타령이 관심을 끄는지도 모른다. 있는 척, 아는 척, 가진 척하는 것도 같지만, 눈먼 돈으로 이룬 것이 아니요, 오로지 하나만 욕심내고 나머지엔 무욕한 덕분이기에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톤팔이’의 오디오 편력을 들어보자.
    하나만 파고드는 거라면,              과욕이라도 용서가 되잖아?
    다시 또 오디오에 빠져 있다. 이쪽 ‘쟁이’들은 알 테지만, 한번 병통의 시절이 도래하면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의 시간이 흘러간다. 똥오줌 못 가린다는 얘기다. 오디오 쪽에 걸쳐 있는 모든 관계가 동원되고 수집 가능한 모든 자료가 학위논문 수준으로 쌓인다. 그럼에도 먹고사는 일은 계속해야 한다. 잠을 줄이고 동선을 최소한으로 축약해 움직인다. ‘오디오질’ 하는 동안은 일상이 잠수 타는 것과 비슷해진다. 존재하나 흡사 사라진 사람처럼.

    출발은 대개 턴테이블 쪽에서다. 1970년대 말, 일본 오디오 메이커 켄우드사 사장이 EMT 927 턴테이블을 쓰고 있었다. 그가 탄식을 하며 외쳤다. “와 우리 회사는 왜 요런 환장할 턴테이블을 못 만든다냐!” 이 한마디에 난리가 난 켄우드 전(全) 기술진이 몰입훈련 끝에 만들어낸 것이 L-07D 모델이다. 나도 진작부터 EMT 927을 사용하고 있는 터라 구동원리가 전혀 다른 L-07D 모델이 대체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지 궁금할 수밖에. 그러던 차에 마침내 그걸 구했다. 전(前) 주인이 모터는 미국에 보내 정비하고 톤암(Tone arm) 베이스 같은 부속품들은 영국에 주문해 맞춰놓은 극상품이었다. 결과는 물론 기대 그 이상으로 ‘베리 베리 굿!’ 물개처럼 유연하게 미끄러져 돌아가는 플래터 위의 LP 소리골이 무척이나 정숙하고 차분하게 들렸다.

    이런 일은 서막에 불과하다. 좋으면 더 좋아야 한다는 게 ‘오도팔(誤道八·오디오파일)’의 습성이라 뭔 짓이든 더 하고 싶어진다. 잘난 켄우드에 톤암을 하나 추가하기로 결심했다. 일이 이상하리만큼 잘 풀렸다. 켄우드를 넘긴 전 주인이 내 커피 생활을 부러워한다. 놀러오면 이쪽저쪽 두 대의 커피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스프레소를 한두 잔도 아니고 연거푸 주문해 마신다. 그 모습에 커피 쪽 호사를 조금 접기로 마음먹었다. 아끼던 이소막 헥사곤 에스프레소 머신을 내놓고 협상을 한 것이다. 그가 갖고 있는 톤암과 맞바꾸자고.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것이 다이나벡터 DV505라는 톤암이었다. 그런데 이후 과정이 좀 복잡하게 진행됐다. 켄우드에 추가로 톤암을 부착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턴테이블 장인

    쇠를 깎아 직접 턴테이블을 만드는 구로동 진선공작소에 40kg이나 되는 턴테이블을 끙끙대며 들고 찾아간 시각이 밤 11시경이었다. 그때부터 이튿날 아침까지 작업을 했다. 진선공작소 유진곤 사장은 일본의 유명 장인들이 부럽지 않은 재주꾼이다. 나사가 부적합하면 아예 나사를 새로 깎아 사용하는 수준이라, 옛날 유명 톤암을 복각해 일본으로 다량 수출하기도 한다. 명장과의 밤샘인들 불면의 괴로움이 없으랴. 그런데도 이러구러 밤샘의 나날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9층 위에 10층 있고 10층 위에 옥상 있다. 잘 알려지고 유명한 턴테이블이라면 누구나 찾는 고정 품목이 있건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장인 혼자서 전 과정을 다하는, 그래서 아주 소량 생산되지만 성능이 대단한 걸작이 턴테이블에도 있다. 프랑스, 아니 유럽 오디오계에서 J. C. 베르디에 할아버지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한다.

    어느 방송국 PD가 직접 파리의 제작실을 찾아가 만난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접했다. 그 PD가 어렵사리 모셔온 베르디에의 작품이 ‘라 플라틴’라는 무게 65kg의 거대한 턴테이블이다. 35kg짜리 플래터(platter)가 공중에 떠서 돌아가는 구조다. 군침을 심하게 흘리면 단감이 입속으로 뚝 떨어지는 수도 있는 모양이다. 베르디에 옹의 작품을 나도 하나 구했다. ‘라 플라틴’ 후속작인데 경랑으로 만들어진 ‘누보 플라틴’ 턴테이블이 떡하니 작업실 한복판에 놓였다. 게다가 함께 따라온 두 대의 톤암이 다름 아닌 오리지널 RF297과 오랫동안 써보고 싶었던 명기 FR64K다. 바야흐로 턴테이블 명작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나는 ‘톤팔이’다. 명작의 향연 와중에 ‘사진쟁이’이자 오디오 평론가인 친구 윤광준이 붙여준 별명이다. 보통은 한 개의 턴테이블을 사용하고, 거기에 하나 혹은 두 개의 톤암을 부착한다. 그런데 이 뭔 지랄인지 네 대의 턴테이블에 여덟 개의 톤암 사용자가 돼버린 것이다. 아홉 켤레의 구두가 아니라 톤암 여덟 개의 사나이, 톤팔이란다. 윤광준이 고생 좀 했다. 톤암이 여덟 개라는 건 바늘(카트리지)이 여덟 개가 붙는다는 얘기다. 난 30년간 오디오에 관심을 가졌지만, 톤암에 바늘 붙이는 일조차 할 줄 모른다. 사실 못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그 내력은 이렇다.

    하나만 파고드는 거라면,              과욕이라도 용서가 되잖아?

    턴테이블의 ‘명기’ EMT927F.

    남이 쓰던 턴테이블을 구해왔을 때 기가 막히지 않은 적이 없다. 거의 대부분 조정이 틀어져 있는 것이다. 턴테이블은 미세조정의 산물이라 과거에 어떻게 다루어졌느냐에 따라 소리가 천양지차다. 오버행(overhang), 톤암 높이, 레터럴 각, 트래킹 포스, 안티 스케이팅 등. 정밀한 조정을 하면 LP에서 잡음이 나기란 힘든 법인데, 대개 얼렁뚱땅 대충 나사를 조여 소리를 낸다. 그러면서 위안으로 하는 말이 “LP란 잡음 듣는 맛이여…”, 순 엉터리 얘기가 떠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턴테이블 조정이 여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는 오디오 숍 영업부장이 대충 달아놓은 대로 갖다 쓰는데 그들이 작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턴테이블 한 대에 톤암과 바늘을 붙이려면, 아무리 빨라도 한나절을 잡아먹는데, 영업부장들은 몇 분 안에 뚝딱 해치우고 만다. 어떤 치과의사가 사용하다 내게 온 ‘누보 플라틴’ 역시 말이 아니었다. 통상 밀리미터 단위까지 따져서 톤암의 오버행 각을 조정하는데, 무려 1cm가량이나 각이 틀어져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필경 그 치과의사는 턴테이블 성능이 나빠서 소리가 일그러진다고 불평하며 내다 팔았을 것이다. 그 덕분에 내 품에 들어오게 됐지만.

    여덟 개 바늘을 동시에

    문제는 대머리 윤광준이 옛날의 윤광준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프리랜서로 십 수 년을 지내는 동안 ‘잘 찍은 사진 한 장’ 같은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내고, 강연이다 모임이다 분망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저명인사’를 모셔와 톤암 여덟 대를 조정해달라 했으니, 며칠 동안 고기에 회는 기본이고 값비싼 사이폰 커피기구 한 세트를 구입해 상납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온갖 비굴모드로 윤광준을 찾는다. 단언컨대 턴테이블 조정 솜씨에서만큼은, 윤광준을 따라갈 자가 없다.

    쉘터 9000, 수펙스 SD900, SPU 실버마이스터 같은 카트리지들을 새로 구하는 과정은 생략하기로 하자. 새로운 톤암마다 새로 제작해 부착한 반덴헐 포노케이블 입수 내막도 넘어가자. 독일 클리어오디오사의 초현대식 카본형 톤암을 내보내고 RS 212라는 고전 톤암으로 교체하는 과정도 건너뛰자. 어려움은 좋은 포노이퀄라이저를 선택하는 데 있었다. 턴테이블의 바늘이 소리를 내기 위해 연결되는 부분이 프리앰프인데 CD나 튜너 등은 그냥 연결되지만, 카트리지의 미세한 전류는 포노이퀄라이저라고 부르는 별도의 증폭회로를 거쳐야만 한다.

    옛날 영미 쪽의 프리앰프들은 대개 포노부가 내장되어 있다. 내 프리앰프들도 물론 그렇다. 마란츠 7, 오디오리서치 SP15에는 애초부터 충실한 포노부가 달려 있고, 포노가 없는 독일계 마이학 101은 국내 장인이 ‘RIAA커브’를 조정해 제작했다. 그런데 나는 ‘톤팔이’다. 여덟 개의 바늘을 동시에 소화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포노앰프를 추가해야 한다. 포노앰프의 회로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내 프리앰프들은 전부 CR타입이라는 일반적인 구성이다. 별스럽고 더 우월한 것을 찾고 싶었다. 어떤 게 있을까?

    ‘LCR 타입’이라고 부르는 포노앰프의 원리가 있다. 무려 트랜스 12개를 접속하는 아주 복잡하고 거창한 방식인데, 이걸 만들어내는 회사가 없었다. 상품이 되자니 도저히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탓이다. 영국의 파트리지와 더불어 트랜스 제작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일본의 타무라 트랜스 회사가 세계 최초로 완전 LCR 방식의 포노앰프를 만들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으나,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수준의, 어쩌면 타무라를 능가할지 모르는 LCR 포노앰프 제품이 국내에도 있었다! 올닉 오디오에서 값비싼 니켈코어를 감아 만든 H3000이라는 모델이 바로 풀 LCR 타입의 포노스테이지로서, LP 사용자에게는 궁극의 목표물이 될 만한 물건이었다. 문제는 가격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그래도 과하게 비싸다. 그런데 지금 올닉의 바로 그 H3000이 ‘누보 플라틴’ 위에서 위풍당당 위용을 뽐내는 중이다. 무슨 재주를 피웠느냐고? 재주가 있기는 했다. 그 얘긴 나중으로 미루고.

    ‘톤팔이’에게 딱 맞는 조합

    올닉으로 호사한 것으로도 모자라 또 한 대의 포노앰프를 추가했다. 내 프리앰프들과 같은 CR방식이기는 해도 유럽 ‘오도팔’들이 워낙 애지중지하는 물건이라기에 탐욕과 궁금증을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 동지들의 안목과 제작자의 명성에 기대기로 했다. 우리나라에 장충 이광수 같은 앰프제작 명인이 있다면, 일본에는 켄 신도와 우에스기가 가장 유명하다. 두 사람 다 연구소 간판을 내걸고 자기 이름의 앰프를 만든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고매한 장충 선생이 신도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 선생의 인품으로 보아 민족적 감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하다.

    하나만 파고드는 거라면,              과욕이라도 용서가 되잖아?

    한때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았던 예술가들. 소설가 존 스타인벡(위)과 가수 바버라 스트라이샌드.

    한편 우에스기의 앰프는 우리나라에서 도무지 인기가 없다. 한국인의 소리 취향에 안 맞아서 그렇다는데, 나로서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외 웹사이트를 뒤져보면 신도와 우에스기에 대한 열광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나도 그들의 앰프 몇 종을 써본 경험이 있다. 대체로 단정하고 품위 있는 사운드에 중점을 둔 듯했다. 역동적인 맛이 덜하다는 의미다.

    주야장창 올닉 포노앰프에 빠져들어 있던 차에 우에스기가 만든 Y-6 포노에 갑자기 ‘필’이 꽂혔다. ‘필’가는 데 앞뒤 가릴 것 없지만, 굳이 이유를 찾자면 올닉의 H3000이 두텁고 무거운 소리를 내는 반면, 우에스기는 양명하게 하늘거린다. 남녀의 조합인 셈이다. 내 하츠필드 스피커가 극단적으로 남성적인 소리를 내는 반면에 오이로다인 스피커는 신경질적인 여성의 목소리에 가까운데, 그런 대조가 포노부에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결국 우에스기도 들여놓아야 했다. 프리앰프가 세 대이니 톤암 셋을 걸 수 있고, 올닉이 두 대, 우에스기가 세 대, 그래서 도합 여덟 개의 톤암을 사용하게 됐다. ‘톤팔이’에게 딱 맞는 조합이 됐다!

    그 사이 1930년대 텔레풍켄의 필드형 풀레인지 스피커 시스템을 완성하고, 마이학 프리앰프와 웨스턴일렉트릭 16575 파워앰프의 결선을 바꿔 인풋 아웃풋 트랜스 결합을 하고, 쉬고 있던 암펙스 앰프를 부평의 기주오디오연구소에서 오버홀 하고, 각종 케이블과 단자를 파비안에서 교체하고, 오디오랙을 추가로 구입하고… 뭔가 더 많은 일이 있었는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러나 참 잘했다.

    ‘음악놀음’말고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천하의 친일파여서 어디 숨어 있던 땅이라도 환수했느냐고? 물려받은 땅은커녕 평생 부모를 부양해온 처지다. 아니면, 로또에 당첨됐느냐고? 여태 복권 한 장 사본 적 없다. 그럼 대체 어디서 눈먼 돈이 나서 이런 호사를 부리느냐고?

    사방에서 ‘펀드’ 소리가 메아리친 적이 있다. ‘펀드 펀드 펀드 펀드….’ 내게는 그 소리가 마치 ‘뻐꾹 뻐꾹’하는 숲 속의 새소리처럼 들렸다. ‘주식 주식 주식…’ 하는 소리도 귀에 어른거렸는데, ‘이 자식 저 자식, X자식 X자식’ 욕으로 들렸다. 부동산 ‘땅 땅 땅’ 하는 소리는 머리를 ‘땅!’ 아니, ‘띵’하게 만들곤 했다. 어쨌든 새소리 욕소리 띵소리려니 하며 흘려듣고 말았다. 나는 그저 오디오만 팠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새소리 욕소리 가치가 반 토막이 됐느니, 휴지조각이 됐느니 하는 소리가 마구 들린다. 아하, 톤팔이 인생이 훨씬 낫구나! 누구 약 올리려는 건 아니지만, 한우물만 팠더니 ‘반 토막’ 때문에 신경질 낼 일은 없지 않은가. 그뿐 아니다. 나는 자동차가 있기는커녕 운전면허를 따본 적도 없다. 골프장 근처에도 가본 일 없고, 비싼 음식점 호화로운 술집 출입을 해본 일도 없다. 도대체 음악놀음말고는 해본 일이 없다. 톤팔이가 될 수 있었던 내력은 이뿐이다.

    무욕이라기보다, 과욕이 한군데로 쏠린 때문이라고 하는 게 맞다. 털어놓자면 나이를 먹을수록 겁이 더럭 나기는 한다. 인생에는 나중이라는 것도 있는데 더 늙어서 마누라 등쳐먹고 살 수도 없고, 그걸 봐줄 마나님도 아니니, 늙고 힘 빠졌을 때 가진 돈 없으면 비참해진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한 1년여 저축이랍시고 통장에 잔고를 만드는 노력도 해봤는데, 톤팔이 본성이 어디 가지 않아 이내 거덜을 내버렸다. 그래도 나는 약과다. 내게 켄우드와 다이나벡터를 넘겨준 동년배의 철학박사는 실직 상태인데 억대 빚이 있다고 한다. 그 어마어마한 빚이 몽땅 오디오 마련하느라 쌓은 것이라나. 그런데도 화수분처럼 자꾸만 새 앰프와 스피커를 사들인다. ‘어쩔 거냐?’고 물으면 ‘어쩌겠느냐’는 게 그의 답이다.

    실은 나도 불안하다. 깊은 한밤중에 빙글빙글 고고하게 돌아가는 네 대의 턴테이블을 쳐다보노라면 내 불안도 따라서 빙글빙글 어지럼증을 일으키며 돈다. ‘이렇게 무대책으로 살아도 되는가.’ 자책감이 엄습하며 등골이 으스스해진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본다. 이 불안은 현재 닥친 상황 때문이라기보다 아직 찾아오지 않은 앞날에 대한 예견이 안겨주는 것이다. 일종의 자기 창조적 불안이다. 이게 나만 겪는 건 아니었다. 독일 괴팅겐대에서 ‘불안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반델로브의 ‘불안, 그 두 얼굴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읽다 보니 지구촌에 불안 동지가 수두룩하다.

    ‘앙겔라라는 여성은 아주 건강한데도 하루에도 몇 번씩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 지니라는 여성은 말벌한테 입안을 쏘여 질식사할까봐 두려워서 여름휴가 내내 집밖에도 나가지 않았다. 베른하르트라는 남자는 자신이 비밀경찰한테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며, 외계인이 자기 머릿속을 투시하여 자신의 생각을 인터넷에 퍼뜨릴까봐 두려워한다. 위르겐이라는 남자는 전염병에 감염될까봐 다른 사람을 만지지도 못한다. 엘케씨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약을 먹고 자살하려고 한다. 카를이라는 사람은 치과의사가 너무 무서워서 이를 모두 뽑아버렸다.’

    “그래, 불안을 살자! ”

    내 보기에 앙겔라나 베른하르트가 오디오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무엇이든 이유를 만들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다. 불안은 이유도 사람도 가리지 않는다. 유명인 가운데 불안에 시달리며 살다간 이가 적지 않다. 작가 브레히트, 사뮈엘 베케트, 카프카가 불안장애에 시달린 대표적인 인물들. 음악가 비발디는 공황발작을 일으키곤 했으며, 다윈 프로이트 뭉크는 심한 불안장애 환자였다. 바버라 스트라이샌드는 공연 중에 가사를 까먹은 탓에 사회공포증에 걸려서 20년간 공적인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 존 스타인벡은 이유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2년 동안이나 외딴 산속 오두막에 숨어살았다고 한다. 저자가 공들여 쓴 불안의 증상, 원인, 처방 등은 뒷전이고, 오히려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사례가 아주 큰 위안이 됐다.

    이렇게 대책 없이 오디오를 하지 않았다면 불안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싶다. 불안하기 때문에 오디오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요컨대 지금 올바르게 살고 있지 못해서 나중에 나빠질 거라고 예견하는 것이 내 불안감의 전말이다. 그냥 ‘불안을 살다’, 이렇게 살아가면 안 되는가? 죽도록 오디오에 매달리는 사람은 봤어도 오디오 좋아해서 죽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래, 불안을 살아가자! 뻔뻔스럽게 오디오를 하자!

    좋은 소리를 만들어보겠다고 오디오 구성에 생난리를 친다. 하지만 쟁이들의 탐욕은 소리를 넘어선 영역으로 진화한다. AR스피커를 사랑하면 그 설계자 에드가 빌처를 사랑하는 것이고, JBL을 애호하면 비극적으로 자살한 제임스 B. 랜싱의 선구적 정신을 추종하는 것이다. 마란츠 앰프는 솔 마란츠 선생을, 마크 레빈슨이나 첼로 앰프라면 불우하고 드라마틱하게 살아온 마크 레빈슨 아저씨를 앙모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걸작 기기들에는 그 설계자의 혼령이 배어 있는 것 같다. 가끔 나는 1927년에 형제들과 함께 LADP 공장을 차린 제임스 랜싱의 숨소리를 느끼는 듯한 기분에 젖는다. 어떤 때는 설계자가 곧장 튀어나오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도무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 안타까움과 신비로움만 더해가기도 한다. 내 오이로다인 스피커를 어지간히 사랑하지만 1930~40년대 독일극장의 풍경이 아직도 잘 구현되지 않는다. 뭐랄까, 내 오이로다인은 너무 현대적인 소리를 낸다. 그 시절 독일사회와 문화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취미생활을 위해 공부가 필요한 대목이 이런 경우다.

    오디오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자료가 많은 영역이 음악이다. 기기를 통해 제작자를 떠올리는 판국에 음악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음악을 듣다 보면 그 곡의 작곡가와 연주가에 대한 관심은 자동으로 커진다. 그게 감흥을 배가시키는 길이기도 해서 작곡가 평전은 일반 교양물로도 넘쳐난다. 그중에서도 우리와 살아온 시점이 가까운 연주자들에 대한 기록물의 생생함이 깨소금 맛이다. 가령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사랑한다면 다른 어떤 평전보다도 말러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쓴 ‘삶과 죽음의 교향곡’을 읽어야 한다. 거기에는 발터가 감추고, 덮어주려 했던 ‘리얼 말러 스토리’가 알알이 박혀 있다.

    음악계 뒷담화

    비슷한 이유로 두고두고 아끼는 것이 ‘리흐테르’라는 제목의 책이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의 회고담과 수첩기록을 엮은 것이다. 생전에 그의 연주장에 못 가본 것이 정말 한(恨)이다. 그는 1960~70년대의 음악적 아이콘으로 추어올리기에 손색이 없는 초대형 피아니스트다. 수첩의 기록은 1970년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시작된다.

    “J. S. 바흐의 칸타타 BWV 51 중 두 아리아 ‘만국에서 주님을 환호하며 맞이할지라’ ‘경의를 가지고 찬양할지라…알렐루야’에 대하여.

    1. 이 두 아리아는 쌍둥이다. 둘 다 C장조로 되어 있다.

    2. 트럼펫과 소프라노가 명인의 기량을 겨룬다.

    3. 천재에게서 나온 가벼움이 느껴지는 음악이다. 그 느낌이 너무나 분명해서 작곡자가 사전에 전혀 숙고하지 않고 작곡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숙고했다 할지라도 곡을 쓰는 순간에는 아마 그것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이 곡은 우리 귀로 들어왔다가 이내 다시 나간다. 공기나 하늘이나 햇볕 같은 음악이다. 우리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아마도 이것이 완벽함의 극치이리라.

    바흐의 칸타타. 언제 들어도 좋은 곡들이고,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어야 할 곡들이다. 이 곡들은 충만함과 조화와 내면의 규율로 우리를 이끈다. 그런데 양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모두 익히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하나만 파고드는 거라면,              과욕이라도 용서가 되잖아?

    거장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는 음악계의 흥미로운 뒷얘기를 책으로 넘겼다.

    리히터는 얼굴이 꽤나 심술궂게 생겼다. 과연 그의 회고에는 심술과 불평이 더럭더럭 배어 있다. 내가 숭배에 가까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첼리스트 다닐 샤프란에 대해 리히터는 온갖 험구를 한다. 샤프란은 청중에게 예쁜 고음을 들려주는 데만 신경 쓰는 자이고 항상 시시콜콜하게 반주자의 잘못만 따지고 드는 강박증 환자라는 것이다. 함께 오래 활동하며 친하게 지냈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에 대해서는 비교적 호의적이지만, 이런 말도 했다. “그는 언제나 가장 크고 좋은 몫을 차지하려 했고,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건 내가 참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도무지 할 수가 없다.”

    리히터의 회고와 수첩기록에는 가가대소(呵呵大笑)를 참을 수 없는 내용이 많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하이페츠와 더불어 양대 산맥을 이룬 바이올린 연주자의 전설이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존재감은 새삼 재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 피아니스트가 스비야토슬라브 리히터다. 이 세 명의 옛 소련 거물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이를 성사시킨 인물이 지휘자 카라얀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3중 협주곡’의 공연과 레코딩을 카라얀이 성사시켰다. 그런데 이 멋진 조우, 대단한 협연을 리히터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야말로 하나의 악몽일 뿐이었다.’ 이 연주는 카라얀과 로스트로포비치가 한편이 되고, 오이스트라흐와 자신이 다른 편이 되어 벌인 전쟁과도 같았다고 술회한다.

    하나만 파고드는 거라면,              과욕이라도 용서가 되잖아?

    ‘줄라이홀’의 한켠을 당당하게 지키고 있는 클랑필름사의 오이로다인 스피커.

    음악 좀 듣는다고 하는 사람이면 하나쯤 소장하고 있을 이 명반, 네 명의 거장이 피아노 주위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악몽 레코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리히터가 보기에 카라얀은 베토벤의 의도를 명백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템포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지휘자가 자꾸 거스르는데, 그것은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로스트로포비치는 들러리 역이어야 할 첼로를 교묘하게 전면에 부각시키려 했고, 약삭빠르게 카라얀의 입맛에 맞추려고만 들었다. 자포자기한 리히터는 주력 악기인 피아노가 아예 뒤로 물러나 있는 듯이 연주해버렸다. 카라얀은 이런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서둘러 연주를 끝마치려고만 했다. 사진촬영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다시 한 번 제대로 녹음하자는 리히터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촬영된 음반 표지사진에 대해 리히터는 이렇게 말한다. ‘카라얀에게 중요한 것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면 카라얀은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고, 우리는 바보들처럼 미소를 짓고 있다. 얼마나 역겨운 사진인가!’

    근데 이건 누구 편을 들기도 그렇고, 비실비실 웃음만 새어나온다. 진실하기로 소문난 리히터가 없는 말을 지어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판단과 처지가 있지 않았겠는가. 그저 천재든 대가든 전설이든 영웅이든 동네 놀이터 꼬마들의 병정놀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꽤 두꺼운 리히터의 책에는 므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슈바르츠코프, 에셴바흐, 미켈란젤리, 피에르 불레즈 등 대가들에 대한 거침없는 품평이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순수한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지 않다. 음반을 들을 때 연주자가 구체적인 사람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솔직한 뒷담화 ‘증언’의 힘이다.

    누가 뭐라든 혼자서 희희낙락

    ‘레이디 싱즈 더 블루스’라는 제목의 빌리 홀리데이 자서전을 읽었을 때 나는 어렸다. 책에서 빌리 홀리데이는 당시 신인가수였던 사라 본이 건방지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비난했다. 다이나 워싱턴의 철없는 사치행각에 넌더리가 난다고도 했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그의 시각에 동화되어 사라 본의 노래가 좀 이상하게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말하는 이와 그 말의 화살을 맞는 이가 동등하게 다가온다. 한 세상, 화살이나 칼로 치고받으며 사는 게 자연스럽다. 예술의 추구도 다를 바 없다. 오히려 화살과 칼의 진상을 은폐하는, 위장된 침묵의 카르텔이 더 큰 문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모든 동종 분야가 공개된 장에서 저희들끼리 치고 있는 차단막이 왠지 수상해 보인다. 방송의 책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해온 내가 어느 시점부터 ‘비판’을 포기해버린 건, 저자의 항의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바로 시청자의 항의 댓글 때문이다. 솔직한 의견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 분위기다. 대체 왜 그렇게 됐을까?

    하나만 파고드는 거라면,              과욕이라도 용서가 되잖아?
    김갑수

    1959년 서울 출생

    성균관대 국어국문과 졸업

    시인 및 음악칼럼니스트

    저서 : ‘나의 레종데트르’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시집 ‘세월의 거지’ 등


    음악도 좋지만 요즘 같아서는 오디오에 훨씬 더 마음이 간다. 치우고 또 치워도 크고 작은 기기들이 사방에 굴러다닌다. ‘줄라이홀’은 말하자면 다른 한 세상이다. 3극관 앰프 시절을 지나 5극관으로 넘어와, 독일 클랑필름 엔지니어들이 심사숙고해서 만든 KV502파워앰프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찬밥’ 취급을 당하고 있다. 나는 그걸 터무니없이 싸게 구입해 하츠필드 스피커의 혼을 울리는 데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혼자 느끼는 자부심과 도취다. ‘니들이 클랑502의 실력을 알기나 알어?’ 불과 3와트밖에 나오지 않는 2A3 싱글 자작앰프를 한 달 수입 이상을 지급하고 구입해 알텍 A5 스피커를 순백의 여린 사운드로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희희낙락이다. 지난날 나는 혹독한 가난을 겪었다. 이 정도 화려와 풍요, 사치, 용서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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