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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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투어, 세상을 배우려는 꿈의 결정판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daum.ne

    입력2017-05-11 18: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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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보내지 않고 곧 그들을 외국에 여행시키는 것이 점점 하나의 습관으로 되어가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여행을 통해 일반적으로 대단히 발전되어 귀국한다고 한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중에서



    유학과 해외여행의 시발점

    ‘그 사람 외국물 좀 먹었다’는 표현 속에는 ‘외국생활을 향한 막연한 동경’과 ‘외국에 갔다 온 티를 내는 것’에 대한 반감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물’이라 하면 주로 서양문화를 향한 동경이 짙게 깔린 게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외국물’에 대한 동경이 서양 내부에서도 일어났다는 점이다. 현대사회의 유학이나 해외여행의 시발점으로 알려진 ‘그랜드 투어’가 바로 영국의 유럽 대륙을 향한 막연한 동경에서 비롯된 열망이다. 오늘날의 ‘세계화’를 향한 열망이 그 당시에는 로마나 파리를 향한 동경에 집중됐다는 점만 달랐을 뿐이다.

    역사학자 설혜심의 ‘그랜드 투어’는 현대사회의 조기유학이나 어학연수의 기원을 영국 엘리트층의 그랜드 투어 열풍에서 찾는다. 그랜드 투어는 역사상 최초로 교육을 전면에 내세운 여행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사치스러운 여행은 소수 엘리트만이 누릴 수 있었지만, 그 문화적 파급효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당시 그랜드 투어의 스케줄은 오늘날 유럽 패키지여행의 일정표와 거의 비슷한 장소를 공유한다. 오늘날 사람들이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버킷 리스트에서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세계일주’를 향한 꿈이 18세기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당시의 여행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이 될 수도 있었지만, 도박이나 성매매 등의 유혹에 빠질지 모르는 위험한 도전이 될 수도 있었으며, 낯선 땅에서 혼자 병에 걸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 또한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랜드 투어를 다녀온 후 한층 성숙해져 그야말로 ‘세계시민’이 될 소양을 닦아 온 젊은이도 있었지만, 도박과 음주에 빠져 타락해버린 젊은이도 있었다. 당시 유럽 대륙에서는 도버 해협을 건너 밤낮없이 그랜드 투어를 시도하는 젊은이들을 일컬어 ‘영국인의 대륙 침공’이라 표현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해외여행 열풍은 유럽 전역으로 확장돼 마침내 그랜드 투어는 엘리트 교육의 최종 단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멀리 나가야 더 많이 본다

    바깥세상을 경험해야 넓은 시야를 갖는다는 생각은 섬나라 영국에서 더욱 커다란 힘을 발휘했다. 당시에는 강대국이 아니었던 영국은 오랫동안 유럽 대륙의 발전된 문명을 동경했다. 17세기의 베스트셀러이던 ‘해외여행 지침’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해외여행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 다른 나라와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슨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길이 없다. (…) 그래서 더욱 발달한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문명이 발생하고 세련되어지는 과정, 그것을 가능하게 한 학문과 지혜를 알아야 한다.”

    영국인이 가진 문화적 열등감의 타깃은 찬란한 그리스-로마 문명뿐 아니라 프랑스의 화려한 궁정문화이기도 했다. 그들은 더 멀리 떠날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는 것, 나아가 낯선 세상에 가서 깨지고 부딪혀 보아야 ‘진정한 젠틀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랜드 투어를 통해 증명하고 싶어 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고, 이전에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과 말하고, 아침이 밝기도 전에 떠나 늦은 밤까지 여행하고, 어떤 말(馬)이나 어떤 기후도 견뎌내고, 어떤 음식과 마실 것도 다 경험해봐야 하는 것이다.” 음식이 바뀌어도, 기후가 바뀌어도, 침구와 가구가 모두 바뀌어도, 어디서나 잘 자고 잘 지내야 2~3년씩이나 지속되는 그랜드 투어의 대장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살아 있는 인생 학교를 꿈꾸다

    그랜드 투어 안내서인 ‘유익한 가르침’에서는 해외여행의 위험을 경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지하 감옥에 갇힌 채 세상을 여행하는 외로운 죄수”라고 비판하면서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책만 읽는 백면서생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외국인들을 많이 만나봐야 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유익한 가르침’은 뛰어난 학자야말로 최고의 여행자가 될 수 있다고 선언하며, 공부를 통해 얻은 학식과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이 더해질 때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랜드 투어 이전에도 물론 여행을 향한 동경이 존재했다. 낯선 문화를 향한 동경에 불을 붙인 아름다운 문장 중에는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의 것도 있다. “인간의 우월한 사고 속에는 새로운 곳을 보고 싶어 하고 자꾸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 하는 염원이 내재돼 있다.” 그런데 기존의 여행문화와 그랜드 투어의 결정적 차이 중 하나는 그 목적이 ‘공교육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열망’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까지,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했다. 대학의 인기가 시들해진 가장 큰 이유는 진부한 교과과정이었다. 실생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라틴어 고전 위주의 교육은 학생들의 지적·문화적 욕구를 채워줄 수 없었다.

    대학교수로도 활동했지만 그랜드 투어의 동행 교사 생활도 경험해 본 애덤 스미스는 당시의 대학교육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일반적으로 기부 재산이 많은 가장 부유한 대학들이 개선에 가장 게으르고, 정해진 교육 계획에 대한 중대한 변혁을 가장 싫어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셀리의 어머니이자 제1세대 페미니스트였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사교육을 비판했다. 학생이 집에서 양육될 경우 좀 더 질서 정연하게 학습 계획을 따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인들 위에 군림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되고 신사의 예의범절에 집착하는 어머니들 탓에 허영심만 가득하고 나약해진다고 지적했다. “나는 학교가 지금과 같은 상태로 운영된다면 악과 우둔함의 온상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거기서 경험할 인간의 본성은 단지 교활한 이기심뿐일 것이다.”

    공교육으로도 사교육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열망을 충족시켜줄 만한 제3의 대안으로 나타난 것이 해외여행과 해외 아카데미 수학이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그야말로 인문학 열풍이 불어 브뤼셀, 마드리드, 베네치아, 런던 등 유럽 곳곳에서 역사 철학 시 수사학 등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아카데미가 붐을 이뤘다. 승마, 프랑스어, 춤 등을 가르치는 수업도 있었다. 애덤 스미스조차 대학과 같은 공공시설이 아니라 사립 아카데미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이 이뤄진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여행지로 선택된 곳은 르네상스 휴머니즘이 이상화한 고대 그리스-로마의 유산이 남아 있는 곳이었다. 즉 여행을 교육과 연결한 휴머니스트들이 이상향으로 꼽았던 로마를 최고의 목적지로 삼은 것이다.

    영국 사학자 브루스 레드퍼드는 그랜드 투어를 정의할 네 가지 요소를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 영국의 젊은 남자 귀족 혹은 젠트리가 여행 주체다. 둘째, 전체 여행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동행 교사가 있다. 셋째, 로마를 최종 목적지로 삼는 여행 스케줄이 있다. 넷째, 평균 2~3년에 이르는 장기 여행이다.

    하지만 이렇게만 한정하기에는 그랜드 투어의 범위가 무척 넓었다. 중년 이후 그랜드 투어 열풍에 합류한 사람들도 있었고, 그랜드 투어의 범위 자체가 그리스-로마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장됐다. 그랜드 투어는 한때 엘리트 교육의 상징이자 계급적 차별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도구였지만, 이제 그랜드 투어의 모든 스케줄과 아카데미의 모든 교육은 현대인의 패키지여행 상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이던 그랜드 투어가 이제 수많은 사람의 ‘황금 휴가 프로젝트’로 대중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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