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이 없어 중학교도 못 간 소년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지금 한국의 내로라하는 ‘큰손’과 ‘돈줄’을 쥐락펴락하는 금융맨으로 성장했다.
교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친구들 앞에 서기가 창피해, 땀에 전 몸을 지게 밑에 숨긴 시골 소년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년은 지금 ‘팬레터’까지 받는 증권가 명강사가 되어 대중 앞에 선다.
검정고시를 거쳐 어렵사리 지방대학에 들어간 경제학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서강대 경제학 박사와 영국 옥스퍼드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치고 대학원 학생들을 가르친다.
서른한 살에 입사한 늦깎이 증권맨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아직 차장, 부장인 입사동기들을 제치고 임원자리에 올랐다. 그는 여전히 ‘최고령 현업 애널리스트’로 각종 상을 휩쓸고 있다.
삶이 꼬일 때 점집 찾듯
이 모두가 한 사람의 이야기다. 김영익(金永翊·48)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 증권가에서 그는 정확한 예측력으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명인사다. 그런 그가 ‘증시 전망가 김영익’이 아니라 ‘인간 김영익’으로서 자신을 내보였다. 최근 ‘프로로 산다는 것’이라는 자전적인 책을 펴낸 것. 독자들은 ‘인간 김영익’의 역경 극복담에 박수를 보냈다. 인터넷 서점에는 이런 평들이 올랐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이나, 풍족하고 부유한 환경 속에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흘러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 희망과 꿈을 부여해주는 책’(Kimkesung)
‘나는 돈이 없어서 이것밖에 안 된다, 가난한 집 자식은 성공하기 힘들다…이런 말들이 그에겐 핑계일 뿐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을 시작하는 그를 보면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Touch_i)
‘주저앉은 내 자신을 격려해주고 싶을 때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책’(nirvana)
낯설었다. 5년여 동안 증권담당기자로 그를 만났지만, 그가 책 속에서 말한 ‘인간 김영익’을 만난 적은 없다. 그가 언제 돈이 없어 중학교 문턱에도 가지 못했다고 말했던가. 자신이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없다. 그의 배경에 대해 들은 것이라곤 ‘전라도 깡시골 출신’이라는 것 정도. 인터뷰 자리에서든, 사적인 식사 자리에서든, 그는 자신에 대해 말할 땐 어눌했고 시장과 경제에 대해 말할 땐 유창했다. 여태껏 증시에서 그의 이미지는 역경을 이겨낸 ‘한 인간’보다는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최고의 프로’ 에 가까웠다.
증권가에서 그의 입지는 탄탄하다. 지난 6월 중순 ‘머니투데이’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증권기자 등 증시 전문가 2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는 ‘한국 증시를 움직이는 파워 10인’ 중 7위로 꼽혔다. 1위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2위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였다.
증권가 인사로만 따지면 김 상무의 순위는 적립식 펀드 열풍의 주역인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다음이다. 200조원 가까운 자금을 움직이는 오성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9위), ‘증권사의 종가’ 대우증권 손복조 사장(10위)보다 순위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