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문섭 마이 캉 커플(가운데)의 결혼식에 김종삼 허우 커플(왼쪽)과 조찬형 타잉 커플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농협중앙회가 배우자 없이 생활을 꾸리느라 어려움을 겪는 조합원을 대상으로 국제결혼 중개업 등록을 한 것은 지난 2009년이다. 2010년 6월에는 다문화 관련 사업에 열심히 참여해온 경북 문경의 산동농협에서 사업설명회를 개최했고, 같은 해 11월 한국의 베트남여성문화센터와 ‘베트남 국제결혼 업무추진’ 협약을 체결했다. 바로 다음 달인 12월에는 조합원과 조합원 자녀인 남성 네 명이 베트남으로 건너가 현지 여성들과 선을 보고 약혼식을 치렀다. 이번 베트남 방문은 결혼이 성사된 세 쌍이 결혼식을 올리는 한편 베트남 당국과 인터뷰를 해 결혼을 인정받는 절차를 거치기 위한 것이었다.
투명한 신상 공개가 원칙
이번에 농협이 주선한 세 쌍의 결혼이 특별한 이유는 한국 남성이 합법적으로 베트남 여성과 결혼하는 첫 사례라는 점이다. 이미 주변에서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을 여럿 봐온 한국인이라면 조금은 놀랄 만한 사실이다. 현재 베트남 여성과 결혼을 주선하는 업체들은 우리나라의 국제결혼 중개업법에 의거해 각 시도에 등록돼 있다. 그러나 베트남 당국에서는 공인받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베트남에서 국제결혼은 여성연맹이라는 곳에서 총괄한다. 여성연맹은 우리나라의 여성가족부에 해당하는 준(準)국가기관이다. 양성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에서 꽤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연맹의 가족사회과는 15개의 결혼지원센터(MSC)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결혼지원센터가 국제결혼을 희망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소개와 상담, 교육을 담당한다. 대부분의 베트남 국제결혼은 이 센터를 통하지 않고 사설 중개업자가 여성들을 모집해 이뤄진다. 사설 중개업자는 남성 혹은 여성에게까지 수수료를 받아 이익을 벌어들인다. 이 가운데는 단순히 성사율을 높이기 위해 신랑신부 후보에 대한 허위 정보를 공개하는 곳도 없지 않다.
“농협의 신랑 후보들은 여성연맹에 등록된 베트남 여성들의 데이터베이스를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신부 후보들도 동등하게 농협이 보증한 신랑 후보들의 개인 신상을 확인할 수 있고요. 양쪽의 자발적인 의사가 확인돼야 맞선을 볼 수 있으며, 결혼에 이르는 모든 절차가 당사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진행됩니다.”
한국 남성들과 함께 베트남을 방문한 농협 농촌자원개발부 고용지원팀 최호영 차장의 말이다. 농협이 주선한 이번 국제결혼은 하루나 이틀 동안 단체로 선을 본 다음 분위기에 떠밀려 여행 한 번에 결혼까지 초고속으로 하던 관행과는 달리 진행됐다. 네 명의 신랑 후보는 지난해 12월 첫 여행에서 베트남 여성들과 전담 통역사를 사이에 두고 일대일로 맞선을 봤다. 선을 볼 때는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할애돼 사흘 동안 다섯 명의 여성을 만난 이도 있다. 한국 남성이 마음에 들어 해도 베트남 여성이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