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호

미래에셋 ‘암호화폐 은행’, 선발주자 약점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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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2-03-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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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호화폐 은행 역할 ‘디파이’ 존재

    • 예금·대출·배당 물론 공매도도 가능

    • 기업 이용 불가·해킹 취향 약점



    미래에셋금융그룹이 암호화폐 수탁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1월 1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그룹은 암호화폐 관련 사업 모델을 다방면으로 구상하고 있다. 암호화폐 관련 독립법인 설립도 생각하고 있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미래에셋증권이 암호화폐 수탁사업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래에셋 관계자도 “단순 암호화폐 투자상품 외에 수탁사업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자기자본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이 뛰어들 만큼 암호화폐 수탁사업은 장래성이 있을까.

    디파이. [Gettyimage]

    디파이. [Gettyimage]

    승승장구 가상화폐 은행 디파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이미 은행이 암호화폐 수탁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KB국민은행, 신한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이 블록체인 기업과 손잡고 암호화폐 수탁사업에 나섰다. 이장우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 겸임교수는 “지금의 (암호화폐) 수탁사업은 암호화폐 금고에 가깝다”며 “암호화폐 지갑 해킹 등 위험한 상황에서 이를 지키기 위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증권이 준비하는 암호화폐 수탁사업은 한발 더 나아갔다. 쉽게 설명하면 ‘암호화폐 은행’이다. 은행의 예금처럼 고객의 암호화폐를 분실하지 않게 보관해 주는 것은 물론, 암호화폐 예금대출교환 등을 통해 자산을 불려주는 일도 한다.



    금융업체가 암호화폐 은행을 연다는 것이 일견 혁신적 서비스인 것 같지만, 이미 비슷한 서비스가 있다. 이름은 탈중앙화금융시스템(Decentralized finance이하 디파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각 사용자와 시스템만으로 금융 서비스를 하는 방식이다. 사용자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 금융 서비스를 추가하는 방식이라 수탁사업에 비해 상품이 다양하다.

    최근에는 디파이를 이용해 암호화폐 예금대출은 물론 공매도도 가능하다. ‘스테이킹’이란 장치도 있는데. 보유한 암호화폐를 일정 기간 팔지 않고 묶어놓는 대가로 이자를 받는다. 주식의 배당과 비슷한 개념이다. 예금, 혹은 예치만 해놓아도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디파이를 이용하고 있다. 디파이 정보 사이트 디파이펄스에 따르면 2월 10일 기준 글로벌 디파이에 예치된 금액은 약 880억 달러(105조2500억 원)에 달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12월 디파이 관련 보고서도 발간했다. 그만큼 디파이에 대해 잘 알 것”이라며 “디파이와 차별화할 부분이 있어 수탁사업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증권이 법인 암호화폐 거래 대행관리를 노리고 수탁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법인은 암호화폐를 사고팔기 어렵다. 암호화폐 거래소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7조에 따르면 국내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를 사고팔려면 실명 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좌가 있어야 한다.

    1월 11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대장 격인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 [뉴스1]

    1월 11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 전광판에 암호화폐 대장 격인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돼 있다. [뉴스1]

    법인 암호화폐 직접 투자 안 돼

    은행권 관계자는 “법인이 실명계좌 인증을 받으려면 법인 정보 외에 대표자 신원, 법인 실소유자(법인을 최종적으로 통제하는 사람) 정보까지 확인해야 한다”며 “이 같은 정보를 다 제출해도 실명계좌 인증이 확실히 되는 것도 아닌 데다 시간도 꽤나 소요된다”고 밝혔다. 해외 거래소를 이용해도 법인이 암호화폐를 사들이기는 어렵다. 해외 거래소도 국내와 같이 실명계좌만 이용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거래소들이 아예 법인과의 거래를 끊고 있다. 국내 거래소와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체결한 은행들은 지난해 9월 법인, 외국인들의 거래를 제한하라는 공문을 각 거래소에 보냈다. 국내 회원 수 1위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도 지난해 11월 고객확인제도 시행에 앞서 법인 회원들에게 원화 및 암호화폐 보유 자산을 모두 출금하라고 권장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은 암호화폐 대신에 관련 블록체인 업계나 암호화폐 거래소에 우회 투자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투자 자회사 삼성넥스트는 2월 8일 미국 블록체인 플랫폼 개발 회사 알레오(Aleo)의 투자 펀드에 일부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그룹도 2월 7일 스타트업 엑셀레이터 ‘케이스타트업’과 손잡고 블록체인 스타트업 육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직접 암호화폐 투자에 참여할 창구가 생긴다면 암호화폐 기업에 투자되던 금액의 상당수가 이 창구로 모일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책임 소재 확실 측면선 디파이보다 나아

    증권사도 법인이니 암호화폐 수탁사업을 하려면 관련 계좌가 필요하다. 미래에셋증권은 아직 수탁사업 계좌를 만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 중 아직 증권 및 금융업계와 직접 거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암호화폐 관련 신사업은 아직 구상 단계”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관련 업계 및 학계 전문가들은 금융증권업계의 수탁사업 진출이 블록체인 업계 전반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장우 교수는 “금융업체의 암호화폐 수탁사업 등 기관을 거쳐 거래하는 방식을 ‘시파이(중앙화금융Centralized Finance)’라고 한다. 디파이에 비해 확장성은 떨어지지만, 금융기관을 거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빠르다”며 “이외에도 금융기관이 디파이 관련 펀드 상품을 만들어 개인투자자의 암호화폐 투자 참여도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일부 개인 투자자들은 디파이보다 증권사의 수탁사업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연달아 대형 디파이가 해킹 피해를 보았기 때문.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6월 발행한 ‘디파이 시장의 성장과 시사점’ 보고서는 “2020년에만 17개 디파이 해킹 사고가 일어났고, 1억5400만 달러(1850억 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올해 2월 6일에는 국내 디파이 ‘클레이스왑’도 해커들의 공격을 받아 22억 원 정도의 암호화폐를 잃었다.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디파이든 증권사 수탁사업이든 해킹의 위험은 비슷하다. 다만 해킹 등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가 확실하다는 측면에서 증권사 수탁사업을 기대하는 (암호화폐) 투자자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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