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한국 최초 등산복 선보인 브랜드
산악인과 함께하며 산을 읽다
영하 50℃ 버텨내다… 남극도 아웃도어 영역
가장 강하고 질긴 신발끈, 헤라클레이스
“북미 시장은 기술력 입증 무대 될 것”
2019년 코오롱스포츠 광고에 나온 김혜자 배우의 대사다. 1973년 창업한 코오롱스포츠가 50돌을 맞았다. 한국 패션 브랜드 전체를 통틀어 최장수 기록이다. 50년은 도전의 역사였다. 코오롱스포츠는 1973년 국내 최초로 등산복을 개발하며 탄생했다. 지금이야 주말만 되면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이 전국 각지의 산을 메우지만, 당시만 해도 등산복이 따로 없던 시절이다. 운동복이나 교련복을 입고 산을 오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코오롱스포츠가 등산복을 내놓으며 시장을 개척한 셈이다.
이후 다양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명멸했으나 코오롱스포츠는 굳건하게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장수의 비결은 기술이다. 1988년부터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피복을 납품할 정도로 방한 분야 기술력이 뛰어났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등산, 캠핑 등 아웃도어 레포츠는 물론 양궁, 마라톤 등 일반 스포츠를 적극 지원하며 제품 개발에 나섰다.
극한 환경에서 얻은 기술력
1980년 코오롱스포츠가 지원한 네팔 마나슬루 등정 당시 모습. [코오롱스포츠]
등산복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등산 문화 보급에도 힘썼다. 1980년 동국대 산악회와 함께 국내 최초의 해외 고산 원정에 나섰다.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의 일이다. 목표는 세계 8위봉인 네팔의 마나슬루(해발고도 8163m). 1970년대 국내 산악인들이 세 차례 도전했으나 실패로 끝난 역사가 있었다.
코오롱스포츠의 체계적 지원 덕에 원정은 성공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마나슬루 등정에 성공한 다섯 번째 국가가 됐다. 이를 시작으로 1983년 악우회의 바인타브락 2봉 원정, 1986년 동계 에베레스트 원정을 지원했고, 1988년에는 대한산악연맹의 에베레스-로체 원정대를 후원하며 정상 등정에 함께했다.
1985년에는 레스코등산학교(현 코오롱등산학교)를 열었다. 등산 이론과 기술은 물론 운동법 등을 정립해 산악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도왔다. 1990년 전문적 암벽 등반 교육을 위해 클라이밍반 1기를 배출했다.
2004년부터는 지원의 폭을 더욱 확장했다. 클라이밍 선수와 고산 등반가를 비롯한 아웃도어 전문가를 모아 챌린지팀을 결성했다. 챌린지팀은 히말라야 최고봉 등정을 포함해 50여 회의 해외 원정에 성공했다.
이처럼 코오롱스포츠는 산악인의 도전에 함께하며 산을 읽어왔다. 코오롱스포츠는 등정 지원을 기술력 향상의 계기로 삼았다. 고산 원정을 지원하며 신제품의 필드 테스트를 해온 것. 해외 고산 원정의 여정을 담은 사진에서는 코오롱스포츠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텐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수십 년간 고산 등반을 이어오며 극한의 환경에서 버틴 끝에 얻은 기술력은 점차 축적되며 진화했다.
마라톤과 양궁, 올림픽 무대 빛내다
코오롱스포츠의 스포츠 지원은 등산에 그치지 않았다. 코오롱스포츠 관계자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종목이라면 언제나 지원을 고려해 왔다”고 말했다. 코오롱스포츠는 한국 마라톤 발전에도 기여했다. 1981년 한국 마라톤 최고기록 경신자 연구장려비 지급을 시작으로 같은 해 고교 단축 마라톤 대회도 개최했다. 이때부터 코오롱스포츠는 마라토너를 위한 의류와 신발 개발에 나섰다.1987년에는 코오롱 마라톤팀을 정식 창단했다. 이봉주, 황영조 선수 등 전설적인 마라토너를 영입했다. 마라톤팀 창단 5년 만에 성과가 났다. 1992년 열린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종목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로도 코오롱 마라톤팀은 각종 국내외 대회 30회 우승, 한국 최고기록 6회 경신 등의 기록을 냈다. 좋은 성적 뒤에는 코오롱스포츠의 마라톤 용품이 있었다. 코오롱스포츠 관계자는 “당시 팀을 운영하며 쌓은 경험과 연구를 통해 품질 좋은 스포츠용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1980년대부터 코오롱스포츠는 세계 대회의 국가대표 유니폼을 지원하면서 국민 브랜드 반열에 오른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유니폼을 시작으로 1983년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와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8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1988년 서울올림픽,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이르기까지 국가대표 유니폼을 지원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이 코오롱스포츠 성장의 마중물이 됐다. 올림픽 의류 부문 공식 후원사로 나서며 세계시장에서 품질을 인정받게 된 것. 코오롱기술연구소에서 개발한 특수 원단 하이포라를 이용한 의류는 선수단의 호평을 받았다. 땀 배출이 쉽고, 통기성이 좋지만 방수성도 높아서다. 이 원단은 선수들이 더욱 좋은 기록을 내는 데 기여했다. 올림픽과 맺은 인연은 2024년 동계청소년올림픽 의류 부문 후원사 지정으로 이어졌다.
코오롱은 양궁도 지원해 왔다. 2011년 양궁 저변 확대를 위해 코오롱엑스텐보이즈 양궁팀을 창단했다. 2012년부터 매년 코오롱 꿈나무 양궁 교실을 열어 각 지역 어린이들에게 양궁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에 더해 2015년부터는 양궁 국가대표의 의류와 유니폼을 지원하며 선수들 경기력 향상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남극도 적응할 자연 중 하나일 뿐
코오롱스포츠가 지원한 피복을 입고 남극 탐사에 나선 탐사 대원들. [코오롱스포츠]
2021년에는 남극 내륙 진출 루트(이하 K-루트) 개척에 동행했다. 남극대륙은 해안에서 내륙까지 육로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다. 빙하와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 생긴 좁고 깊은 틈) 등이 많아 위험하기 때문이다. 남극 내륙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 장비와 보급품을 운반할 수 있는 안전한 육상 루트 개척이 꼭 필요하다.
K-루트는 해양수산부와 극지연구소가 2017년부터 진행한 남극 내륙 탐사 프로젝트다. 코오롱스포츠 지원 이후 프로젝트는 괄목할 성과를 냈다. 2021년 장보고과학기지에서 콘코르디아 기지에 이르는 탐사 루트를 개척해낸 것. 콘코르디아 기지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공동 운영하는 극지 연구소로 장보고과학기지에서 131㎞ 떨어져 있다. 이번 성공으로 기존에 빙저호 탐사를 위해 개척한 430㎞의 탐사 루트를 더해 1740㎞에 달하는 남극 내륙 진출 루트를 확보했다. 이는 세계 일곱 번째 기록이다.
코오롱스포츠 측은 “남극도 아웃도어의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도록 돕는 것이 코오롱스포츠의 제품 개발 원칙. 이 원칙대로 극한의 지역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피복 개발에 나섰다. 남극 탐사 지원을 통해 코오롱스포츠는 영하 50℃에서도 버텨내는 피복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도시형 방한 다운 재킷 안타티카를 개발했다.
안타티카의 겉감 ‘고어 윈드스토퍼 액티브 셸’은 남극의 ‘블리자드’(영하 12도 이하 기온에서 초속 20m 이상 풍속으로 부는 맹렬한 바람)도 견디는 방풍 기능을 갖고 있다. 안감에는 트라이자(Trizar) 코팅을 적용해 패딩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보온성을 더했다. 트라이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항공기에 적용하기 위해 개발한 소재다. 영하 150℃ 기온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온도조절이 뛰어난 우주항공 물질이다. 세라믹 나노를 섬유 소재에 적용해 열에너지는 흡수하고 원적외선은 반사한다.
어디서든 살아남는다
세계에서 가장 질긴 신발끈 헤라클레이스 한 가닥이 오토바이 무게를 견디고 있다. [코오롱스포츠]
세계 최초로 전도성 고분자를 이용한 발열체인 히텍스(Heatex) 원단을 사용한 혁신적 재킷이다. 산악인들의 히말라야 원정을 지원하며 거친 필드 테스트가 개발의 단초가 됐다. 이후 발열 기능을 포함해 전기 충전이 가능한 제품도 내놨다. 자연풍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특허 기술을 적용해 랜턴과 GPS, 발열 원단에 필요한 전지를 충전할 수 있다.
2023년 출시한 신제품 라이프텍 Ver.10은 프리미엄 낚시 웨어 브랜드 웨더몬스터와 협업해 제작했다. 해양에서 조난 시 요구되는 기능을 갖춘 게 특징이다. 코오롱스포츠는 이에 그치지 않고 라이프텍 재킷의 고기능성을 유지하며 도시형 기능성 의류 브랜드 엘텍스(LTEKS)를 론칭했다.
코오롱스포츠는 신발끈 하나에도 기능성을 생각한다. 코오롱스포츠가 개발한 신발끈 헤라클레이스 이야기다. 고강도 원사인 헤라크론 소재로 만들어 끈 하나로 500㎏f 이상의 인장력을 확보했다. 인장력은 섬유나 실에 일정한 힘을 가했을 때 끊어지는 시점의 무게를 말한다. 통상 신발끈의 인장력은 116㎏f. 해외 아웃도어 및 캠핑 브랜드가 출시하는 고강도 신발끈의 인장력은 232㎏f 정도다.
헤라클레이스는 2014년에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질긴 신발끈’으로 기네스 공식 인증까지 받았다. 세계 기네스 인증 당시 헤라클레이스 여섯 가닥으로 2.5t의 컨테이너를 들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한 가닥으로는 오토바이 한 대를 들어 올리는 도전에도 성공했다. 헤라클레이스 한 가닥으로 성인 7명(551kg)을 들어 올려 5분 동안 유지하는 일에도 성공했다. 비상시에 로프 대신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코오롱스포츠는 환경보호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연이 파괴되면 아웃도어 브랜드가 설 자리가 없어서다. 코오롱스포츠 같은 고기능성 의류 브랜드가 환경보호에 나서기는 어렵다. 혼합 섬유와 접착제, 다양한 부자재가 쓰이는 만큼 자재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없으면 아웃도어도 없다
코오롱스포츠의 재활용 철학을 담은 공간 ‘솟솟리버스’. [코오롱스포츠]
매장도 재활용에 힘쓰고 있다. 2020년 생분해 친환경 옷걸이를 개발해 전국 매장에 배치하고 있다. 2021년에는 생분해 옷걸이 소재를 활용한 친환경 마네킹을 내놨다. 지난해 1월에는 코오롱스포츠의 재활용 철학을 집대성한 공간을 공개했다. 제주 탑동에 위치한 솟솟리버스다. 이곳은 친환경 업사이클링 공간을 지향한다. 별도의 마감재를 최소화하고 건물 자체의 구조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는 스키마타 건축사무소의 나가사카 조가 설계를 맡아 진행했다. 테이블과 선반, 의자와 같은 집기류는 제주도에서 수거한 해양 폐기물을 활용해 제작했다.
판매 상품도 기존 코오롱스포츠 매장과는 차별화했다. 코오롱스포츠가 새활용(Upcycling:Upgrade+Recycling)한 ‘코오롱스포츠 리버스’ 상품을 배치했다. 이 상품은 코오롱스포츠의 1~2년차 재고를 지금 유행에 맞게 고쳐 내놓은 것이 특징이다. 솟솟리버스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이다. 2층에는 코오롱FnC의 새활용 패션 브랜드 래코드도 만날 수 있다. 래코드는 코오롱FnC의 3년차 재고를 새활용해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브랜드다.
코오롱스포츠는 앞으로도 지속 가능 아웃도어 브랜드 구축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코오롱스포츠 측은 “솟솟리버스 외에도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매장을 늘려나가고 있다”며 “‘고쳐 입기’ 등 고객이 직접 참여하는 재활용 행사도 열고 있다”고 밝혔다.
재활용 외에도 멸종위기 동식물 보호 프로그램 ‘노아 프로젝트’도 2016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멸종위기에 놓인 동식물을 모티프로 캡슐 컬렉션을 출시하고, 판매 수익금 일부를 해당 동식물 보호 활동에 사용한다. 노아 프로젝트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노아의 방주’가 돼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호와 생태 복원에 참여한다는 의미다. 노아 프로젝트로 출시된 모든 상품 역시 친환경 소재와 제작 방식을 적용한다.
기술력과 자연에 대한 진심은 세계시장에도 통했다. 코오롱스포츠는 2017년 중국의 최대 스포츠웨어 기업인 안타그룹과 전략적으로 합작해 코오롱스포츠차이나를 설립했다. 현재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거점 도시의 백화점, 대형 몰 등에서 194개 매장을 운영한다. 올해 5월에는 상하이에 첫 번째 중국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코오롱스포츠차이나의 실적은 올 상반기에만 2000억 원을 달성했다. 올해 목표인 4000억 원도 무리 없이 달성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리테일 기준).
코오롱스포츠는 이 같은 기세를 몰아 골프웨어 브랜드 왁의 중국 진출도 본격화할 방침이다. 연내 중국에 단독 매장을 열어 브랜드를 알릴 계획이다. 또 아시아권과 미주 지역으로 시장 확장도 예정하고 있다.
한경애 코오롱스포츠 총괄 코오롱FnC 부사장은 10월 26일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코오롱스포츠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원(one) 브랜드 전략으로 아웃도어의 본질을 보여주는 코오롱스포츠는 이제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북미 지역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훈 코오롱FnC 코오롱스포츠 디지털마케팅실 상무는 “북미 시장은 코오롱스포츠의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면서 “현지 환경에 맞는 상품과 관련된 R&D의 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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