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분 뒤인 8시. 이번에는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소속 보잉 767기 93편이 175편의 뒤를 바로 이어 역시 보스턴의 로간 공항을 이륙한다. 화요일의 뉴욕 대참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20여분 뒤인 8시21분. 워싱턴 근교 덜레스 공항에서는 또 한 대의 보잉 757기가 로스앤젤레스를 향해 이륙했다. 이 비행기가 1시간 15분 뒤, 세계 최강의 군사국인 미국의 국방부 펜타곤을 공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전세계에서 불과 몇 명뿐이었다. 미국 대통령도 모르고 있었다. 뉴욕도 워싱턴도 맑게 개인 가을 하늘이었다.
1861년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수많은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미국 영토 내에서, 미국의 항공기가 미국을 겨냥하는 무기가 되어, 이방인에 손에 미국 시민이 희생당하는 전쟁은 치러본 적이 없다.
2001년 9월11일, 미국은 테러를 당했다. 미국의 상징이자 세계의 부와 번영,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상징인 뉴욕과 워싱턴이 테러리스트들의 민간 여객기 자살 공격에 맥을 놓고 말았다.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주저앉고, 거의 같은 시간에 워싱턴의 펜타곤이 화염에 휩싸인 다음 날, ‘워싱턴포스트’의 사설 제목은 ‘20 01년 9월11일’이었다. 같은 날 ‘뉴욕타임즈’의 굵은 활자 1면 제목은 ‘미국, 당하다(U.S. Attacked)’였다.
그날 미국은 말을 잃었다. 어지간한 테러에 정신을 못 차릴 미국이 아니다. 테러라면 이골이 날 만도 하고, 테러를 막겠다며 정보비로 해마다 300억 달러를 쏟아 붓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 미국이 이번에는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 대통령은 ‘전쟁 행위(act of war)’라고 했다. 그러나 군 최고 통수권자이자 최고 정책결정자의 완곡한 표현이었을 뿐, 이미 미국은 ‘전쟁 행위’가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펜타곤 서쪽이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던 9시40분, 미 연방항공국(FAA)은 미국 상공에 떠 있던 모든 비행기를 활주로로 끌어내렸고 공항에 있던 항공기의 이륙을 금지시켰다. 미 대륙 상공에 떠 있는 모든 종류의 비행기를 파란 점으로 표시하던 연방항공국의 항공 운항 도표가 하얗게 변했다. 연방항공국 탄생 이후 처음으로 항공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쪽 1빌딩에 보잉 767기가 자살 공격을 한 시간은 8시48분. 무역센터 남쪽 2빌딩에 또 한 대의 보잉 767기가 날아와 폭발한 것은 15분 뒤인 9시3분이었다. 두 번째 테러 공격을 당한 남쪽 2빌딩이 56분 후 먼저 무너져 내렸고, 이어 30분 후에는 첫 번째 공격을 당한 북쪽 1빌딩마저 화염과 잿빛 기둥을 뿜어내며 주저앉았다.
무역센터 빌딩이 불길에 휩싸여 있던 9시35분까지만 해도 모든 시선은 뉴욕에 가 있었다. 110층짜리 고층 빌딩의 87층부터 103층 사이, 불길을 피해 창가에 매달린 채 구조를 요청하던 사람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내리는 거짓말 같은 참상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고,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되고 있었다. 워싱턴은 눈 밖이었다. 관심 돌릴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