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연구해온 국제정치학자들이 바빠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헤매기 시작했다. 그 어떤 학자도 연구한 적이 없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9월11일 오전 8시45분 뉴욕 세계무역센터 북측 타워를, 피랍 여객기가 자살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된 네 개의 사건은 분명 테러 행위였다. 이날 미국의 영토와 영공과 영해는 그 어떤 적(敵)으로부터도 뚫리지 않았다. 범인들은 미국 땅에서 이륙한 미국 국내선 여객기를 납치해 범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테러치고는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9월16일 현재 행방불명된 사람을 포함한 잠정적인 사망자는 5500명을 넘어섰다.
1941년 12월7일 일본 연합함대가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 전사하거나 행방불명된 미국인(군인+민간인)은 2502명이었다. 나구모 중장이 이끌고 온 일본의 기동함대는 6척의 항공모함과 2척의 전함이 주축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함대에서 발진한 350대의 함재기가 하루종일 폭격했을 때 2502명이 희생되었다. 그런데 2001년 9월11일 오전 8시45분부터 10시까지 단 1시간15분 동안 미국 뉴욕과 워싱턴 그리고 피츠버그에서는 진주만 공습의 두 배가 넘는 사람이 희생되었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큰 인명 피해를 일으킨 테러가 있었던가?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부시 미국 대통령은 9월15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테러냐 전쟁이냐
여기서 전쟁을 연구해온 국제정치학자들은 본격적으로 헤매기 시작한다. 그래서 “전쟁은 아닌데 전쟁보다 더한 테러가 발생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전쟁보다 더한 테러가 있을 수 있는가? 전쟁보다 더한 테러는 전쟁이다. 대답을 찾지 못한 언론은 테러를 연구해온 학자들에게로 마이크를 넘긴다. 그러나 테러를 연구해온 학자들도 말문이 막히기는 마찬가지다. 테러는 전쟁에 비해 훨씬 더 늦게 연구된 분야라 아직 연구 영역이 넓지 못하다. 이들이 연구하는 분야는 마약 밀조와 밀매, 위조 지폐의 제작과 유통, 무기 밀수출, 해적, 조직 폭력단 등이었다. 9·11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러한 부문은 꽤 중요하다고 인식되었다. 그러나 9·11사건 이후로는 자잘한 분야가 돼버렸다. 테러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9·11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열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객기를 납치해 대형 건물과 충돌하는 것은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던 영역이다. 톰 클랜시의 소설이나,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영화에서나 다루던 공상의 세계였다. 가상이 현실이 됐으니 발언의 자유를 얻은 것은 상상을 소설화·영화화하는 창작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상상은 점쟁이의 예언만큼이나 무책임하며 검증할 수가 없다. 참고(參考)는 할 수 있어도 믿고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니 학자와 정치지도자를 필두로 한 모든 사람들이 헤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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