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는 지난 1997년 이후 4년 동안 4%대 고성장을 지속했다. 1992년 불황을 벗어나 성장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했지만 1994년 한 해를 제외하면 경제성장률이 2%에 머무른 데 비추어 비약적인 성장세였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1999년 4분기에는 무려 8.3% 도약하며 기세를 올렸다.
그런데 별안간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증시는 급전직하, 지난해에는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나스닥지수는 연간 39.3% 급락했다. 1998년 39.6%에 이어 1999년에는 무려 85.6% 치솟은 뒤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6.2%, 미국 경제를 대표하는 대형주 위주의 S&P 지수는 10.1%까지 미끄러졌다.
주가는 기업 수익의 하락을 따라 곤두박질쳤다. S&P 500 편입종목의 전년 동기 대비 수익은 1분기에 약 6.2%에 이어 2분기에는 17% 줄어들었다. 이번 3분기에도 13% 감소가 예상되고 있으며 4분기 회복도 어렵다는 전망이다.
GDP는 1999년 4분기 8.9%를 정점으로 신장세가 둔화, 지난 1분기 1.3%에 이어 2분기 성장률은 0.2%에 그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실업률은 지난해 9월 3.9%에서 8월에는 4.9%로 4년 중 최악이 됐으며 연말에는 5%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경제와 함께 달러도 흔들리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FRB는 일시적인 공급초과와 이를 덮친 고유가를 들었다. 지난 2월 상원 증언에서 그린스펀은 “첨단기술 산업의 경우 지난해 생산능력이 50% 확충되는 등 공급능력이 수요를 앞질렀다”고 진단했다. 그린스펀은 수요 부족의 충격은 원유 가격 상승으로 기업과 가계의 구매력이 위축되며 더욱 증폭됐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런 국면전환으로 기업 재고가 쌓였지만 현재 재고를 조정중이기 때문에 머지않아 바람직한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요컨대 당시 상황을 “경제가 균형성장 경로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국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시적인 재고조정으로 수습될 상황이 아니었다. ‘뉴 이코노미스트’들의 과장과 달리 컴퓨터, 인터넷, 이동통신 등 첨단기술 부문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한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무너질 경우 경제 전체에 타격을 줄 만한 요충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파국은 첨단 부문의 급성장이 지속 가능한 선을 이미 넘어섰다는 데서 배태됐다. 신산업 부문의 수요는 한편에서는 투자가, 다른 한편에서는 소비가 이끌었다. 소비 수요는 왕성하게 채워진 뒤 포화 또는 둔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투자수요는 투하된 자본에 수익을 돌려줄 수 없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주가는 천정부지로 오른 뒤였다. 주가와 투자수요는 미세한 충격에도 도미노로 쓰러질 준비가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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