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 워싱턴과 뉴욕 등 미국의 심장부에서 일어난 미증유의 자살테러 참상의 동인(動因)을 놓고 여론은 두 가지 허상(虛像)에 연일 맴돌고 있는 듯싶다. 하나는 ‘문명충돌’이란 허상이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근본주의’란 허상이다. 어쩌면 이 두 가지 허상이 실상으로 둔갑하는 한 유사한 참상의 재현을 막을 길이 묘연해질 수도 있다.
문명이란, 인간이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통해 창출한 결과물의 총체를 말한다. 이러한 결과물은 인간이 처한 구체적인 환경에 부응해 창출되기 때문에 비록 양상은 다르지만 각 문명은 합리성을 띨 뿐만 아니라 부단히 변모한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문명은 인류 공동의 창조물이고 향유물이며 소유물이다. 그래서 특정 문명의 절대적 독점이나 우열은 없으며 문명간의 만남은 필연이다.
독점이나 우열이 없는 문명간의 만남은 서로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간의 만남은 처음에는 이질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갈등이 생기지만 전파성과 수용성이란 속성에 의해 이런 갈등을 순리적으로 극복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문명간에 없는 충돌을 인위적으로 있게 하거나, 있다고 보는 데 있다.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인문과학의 여러 영역을 두루 아우르는 심오한 문명을 얄팍한 사회학이론(정치이론 포함)의 틀에 짜맞추어 해석하고 재단(裁斷)하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다.
요컨대 ‘이익집단’의 배타적 행태를 문명 본연의 ‘충돌’인 양 착각하고 오도하는 이른바 ‘문명충돌론’의 결정적 오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문명충돌론의 위험성은 인류의 공생공영을 담보하는 유일무이한 공통분모인 문명을 각축장시(角逐場視)함으로써 지구촌의 분란을 숙명화하는 데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참상이 마치 이러한 허구적인 문명충돌론의 정당성에 대한 증좌처럼 대서특필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근간에 대두된 문명충돌론의 요체는 8대 문명권(일본도 한 문명권으로 간주) 가운데서 이슬람문명권과 유교문명권이 ‘문명충돌’의 주범이 될 것이므로 여타 문명권은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서구의 안보관에서 출발해 현대 문명의 전도를 예단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몇 그루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일종의 편견이고 단견이며, 문명사에 대한 왜곡과 무지의 소치라고 말할 수 있다. 인류역사에서 일어난 그토록 많은 갈등과 충돌, 심지어 세계대전 같은 대재난도 단순한 문명의 충돌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최근 일어나는 이러저러한 민족분쟁이나 종교갈등 그리고 이번 같은 테러 참상은 결코 문명의 소산이 아니라, 아이러니컬하게도 문명의 수혜자인 특정 이익집단이 저지른 행위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어디까지나 문명의 만남이란 큰 흐름의 물굽이에서 생기는 하나의 격렬한 소용돌이에 불과하다. 잠깐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고 해서 도도한 물결이 멈춰 서는 것은 아니고, 몇 그루의 나무가 썩었다고 해서 숲이 망가지는 법은 없다. 문명간의 관계는 ‘오행설(五行說)’에서 말하는 것처럼 상생관계이지 상극관계가 아니다. 바로 이러한 상생관계의 상승작용에 의해 문명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풍부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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