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의 월든 호수 전경.
고개를 드니 멀리 서쪽 건너편까지 호수의 전경이 7월의 눈부신 햇살 아래 아스라이 드러난다. 원경 속의 호수 물빛은 짙푸른 청록색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맑고 고요한 호수는 아닌게아니라 푸른 하늘을 쳐다보는 ‘대지의 눈(眼)’을 연상시킨다(‘호수는 대지의 눈, 사람들이 그 안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내면의 깊이를 헤아려보는 눈이다’).
그 맑은 눈 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수만리 길을 달려온 설레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한편으로는 그윽하면서도 한없이 친근한 호수의 정령이 있어서 그의 영접을 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호수는 그만큼 포근한 느낌을 줬다. 월든은 물론 하나의 상징이요 이념의 표상이다. 그러나 호수는 메마른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안식처 혹은 말로만 전해 듣다가 처음 찾아가본 어머니의 고향 같은 느낌으로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미국 제일의 聖地
소로의 생일인 7월12일을 전후해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위치한 이곳 월든 호숫가에서 매년 미국 소로학회가 열린다. 나는 ‘월든’ 출간 150주년을 기념하는 2004년도 소로학회에 참석차 이곳을 찾았었다. 소로는 월든 호수를 ‘콩코드의 보석’이라고 썼다. 그러나 월든 호수는 이제 콩코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전세계 소로 애독자들이 찾는 순례 명소가 되었다.
학회 참석자의 면면에서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멀리 호주와 아프리카에서 자발적으로 참석한 사람이 꽤 많았다. 소로를 생태학적 삶의 전범이요 환경 수호성인(聖人)으로 재평가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하버드대 문학생태학자 로렌스 뷰얼(Lawrence Buell)이 월든 호수를 미국 제일의 성지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월든 호수는 매사추세츠 주정부에 의해 주립 보존 공원(State Reservation Park)으로 지정되어 있다. 호수를 포함해 411에이커에 이르는 주변의 숲을 주정부가 관리하고 있고, 이 밖에 소로학회를 비롯한 민간단체들 또한 공원의 훼손을 막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호수를 자연공원으로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 본격화한 것은 1970년대. 이때부터 관리 당국은 방문객 상한선을 정하고, 접근로를 조정하고, 호숫가의 침식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전에 월든 호수는 유흥지였다. 보스턴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서 특히 주말이면 사람들이 몰려와 호숫가에서 놀이를 즐기는 바람에 심하게 훼손됐다. 1990년에 공원 인근에 콘도미니엄을 지으려는 사업 계획이 알려지자 미국 내셔널 트러스트 본부는 월든 호수를 보존이 위협받고 있는 지역으로 설정하고 모금 운동에 나섰다.
그리하여 호수로부터 최소한 반마일(약804m) 내의 숲에는 상업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막자는 ‘월든 숲 기획단(Walden Woods Project)’이 발족되고 이 단체가 주동이 되어 모금한 기금으로 인근의 숲을 차례로 사들여 녹지를 넓혀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소로는 만년에 뉴잉글랜드의 각 도시들이 적어도 500~1000에이커 정도의 숲을 공원으로 지정, 보존할 것을 역설했는데, 오늘날 옛 모습을 되찾고 있는 월든 호수는 바로 그런 그의 유지를 받들려는 노력의 소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