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대만 집권여당 지방선거 참패의 함의

‘불통(不通)’ 차이잉원 총통 레임덕 ‘만사청통(萬事靑通)’ 文정부도 닮을라

  • 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입력2019-02-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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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말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은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경기 침체와 차이잉원 총통의 ‘불통’ 정치, 중국과의 계속된 갈등으로 인한 국민의 피로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통·입법원 동시선거에서 연달아 참패한 국민당은 정치계 ‘중고 신인’ 한궈위 등을 앞세워 새바람을 일으켰다. 대만 선거 결과가 한국 정치계에 주는 시사점을 알아봤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1월 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AP]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1월 1일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AP]

    “국제사회가 위협받는 민주국가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다음 차례는 어떤 나라가 될지 모른다. 국제사회가 대만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게 도와달라.”

    1월 7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외신 기자회견에서 국제사회에 ‘읍소’했다. 일국의 최고지도자가 절박함을 호소한 배경에는 대만해협을 두고 마주한 중국의 ‘위협’이 자리한다.

    1월 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 독립 세력을 겨냥해 “우리는 무력 사용을 포기한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다”며 엄중 경고했다. 그는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를 기해 발표된 ‘대만동포에게 고하는 글(告臺灣同胞書)’ 40주년 기념식 연설 중 “대만 문제는 중국 내정(內政)으로 어떤 외부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통한 평화통일이 최선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하루 전인 1월 1일 차이잉원은 신년사를 통해 “중국은 ‘중화민국(대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중국의 대(對)대만 통일 원칙인 일국양제, 1992컨센서스(九二共識·1992년 중국과 대만 대표가 합의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되, 그 표현은 양안 각자의 편의대로 한다’는 원칙)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시진핑의 무력 사용 언급은 차이잉원이 날린 ‘잽’에 대한 ‘어퍼컷’이었던 셈이다.


    3년차 레임덕에 빠진 차이잉원

    대만 지방선거가 치러진 2018년 11월 24일 가오슝 지역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AP]

    대만 지방선거가 치러진 2018년 11월 24일 가오슝 지역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AP]

    새해 벽두부터 시진핑과 난타전을 벌인 차이잉원은 이미 만신창이 신세다. 2016년 당선해 집권 3년차에 접어들지만 국내외 문제 어느 하나 풀리는 게 없다. 기본적으로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 집권 후 양안(兩岸)관계는 악화 일로다. 침체된 대만 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없고, ‘대만판 워라밸 구현’을 목표로 실시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의 부정적 여파로 서민의 시선도 차갑다. 차이잉원은 레임덕에 빠졌고, 총통 재선에도 적색등이 켜졌다. 이변이 없다면 차이잉원은 1996년 총통 직선제 도입 후 재선에 실패하는 첫 총통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24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집권 민진당도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수도 타이베이(臺北)를 비롯한 22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제1야당 국민당이 15석을 얻은 반면, 민진당은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수도 타이베이 시장은 무소속 커원저(柯文哲)가 재선에 성공했다. 4년 전인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은 13석, 국민당이 6석을 얻은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는 결과다.

    2016년 1월 치러진 총통·입법원 동시선거에서 차이잉원이 689만4767표(56.12%)를 득표하며 22개 광역지방단체 중 18곳에서 승리한 것과 비교해도 참담한 수준이다. 선거 결과 발표 직후 차이잉원은 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민진당 주석직을 사임했다.

    이번 지방선거 최대 이변은 가오슝(高雄)에서 벌어졌다. 국민당 한궈위(韓國瑜) 후보가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53.87%를 득표하며 민진당 후보 천치마이(陳其邁)에게 9.07%포인트 차이로 승리한 것. 대만 남부 최대 도시이자 제1 항구도시 가오슝은 ‘민진당의 철옹성’으로 불릴 정도로 민진당 지지세가 강했던 곳이다. 1979년 12월 대만 현대사의 대표적 시국사건 ‘메이리다오(美麗島·미려도) 사건’ 발생지로, ‘대만 민주주의의 거울’ ‘대만 민주주의의 성지(聖地)’로 불린다. 한궈위의 승리는 한국 정치에 빗대 말하면 자유한국당 후보가 광주시장에 당선된 것만큼 이례적인 일이다.

    이변의 주인공 한궈위는 대만 정계의 중고 신인이다. 1957년생으로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대만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육군 장교로 복무하다 상위(上尉·대위)로 예편했다. 전역 후 대학 강사, 신문사 논설위원 등으로 활동하다 1990년 타이베이현(현 신베이시) 현의원(도의원 해당)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 1월 제2회 입법원(대만 국회) 선거 당선 후 3선에 성공했으나 이후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 당선권에 들지 못해 2001년 정계를 떠났다. 이때부터 20년 가까운 ‘정치 휴지기’를 지냈으니 국민당 내 입지도 없다시피 했다. 2017년 5월 열린 국민당 주석 경선에서 한궈위는 5.84%를 득표, 4위에 그쳤다.

    2018년 4월, 한궈위가 가오슝 시장 선거 출마를 공식 발표했을 때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면 민진당 후보 천치마이는 1995년 가오슝 지역구 입법위원 당선 후 3선에 성공하고, 행정원 대변인, 정무위원(정무장관), 가오슝 부시장·시장 직무대행 등을 거쳐 2011년 비례대표 입법위원에 당선된 거물이었다.


    정쟁 대신 미래 택한 중고 신인의 승리

    2018년 11월 21일 선거유세 중인 국민당 정치인 한궈위(가운데 점퍼 입은 사람). 한궈위는 대머리로 가오슝을 밝히겠다고 하는 등 톡톡 튀는 유세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AP]

    2018년 11월 21일 선거유세 중인 국민당 정치인 한궈위(가운데 점퍼 입은 사람). 한궈위는 대머리로 가오슝을 밝히겠다고 하는 등 톡톡 튀는 유세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AP]

    말 그대로 험지인 가오슝 시장 선거에 뛰어든 한궈위는 민진당 20년 장기 집권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언론인 출신으로 윈린(雲林)현 의원인 부인 리자펀(李佳芬)과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이며 지역 주민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선거전에 돌입한 지 5개월이 지난 9월 무렵부터 이변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결과에서 한궈위가 민진당 후보를 앞선 것이다. 대만 언론은 ‘한궈위(韓國瑜·한국유)’의 이름 첫 두 글자가 ‘한국(韓國)’과 같다는 점에 착안, 10여 년 전부터 대만을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에 빗대 그의 선전을 ‘대만 정계의 한류열풍’으로 보도했다. 매일 ‘한궈위’ 이름 세 글자가 매체에 대서특필됐다. 한궈위는 선거 승패와 관련 없이 국민당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의 기쁨까지 안았다.

    한궈위의 남다른 선거 전략도 주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경제와 미래 문제에 ‘올인’했다. 경제 회생,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가오슝을 대만 최고 부자 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젊은이가 돌아오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호소했다. 현실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현재 277만 명가량인 가오슝 인구를 10년 안에 2배로 늘리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만 남부 최대 공업도시 가오슝은 조선·철강 등 전통 산업 쇠퇴로 2017년 대만 제2의 도시 지위를 중부 타이중(臺中)에 내준 상태였다.

    한궈위는 상대 후보를 비판하는 대신 미래를 약속하며 현실에 지친 표심을 자극했다. 또 핸디캡이라 할 수 있는 자신의 ‘대머리’를 선거전에 적극 활용했다. 지난해 11월 23일, 투표 전 마지막 유세에서 그는 대머리 500명과 한곳에 모여 가오슝을 ‘밝히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는 유력 가문 자제, 해외 유학파 출신 학자가 즐비한 국민당 출신 후보로는 드물게 참신한 선거유세였고 이것이 유권자의 마음을 열었다. 결과는 대성공. 예상을 깨고 그는 과반 득표율로 승리했다. 동시에 국민당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한궈위의 승리 배경에는 그의 개인 능력과 더불어 집권 3년차를 맞이하는 차이잉원 정부의 국정 난맥상이 자리한다. 관건은 양안관계와 경제 문제다. 2016년 총통·입법원 동시선거에서 압승하며 민진당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경제 회생은 난망해 보인다. 차이잉원 정부 출범과 더불어 ‘중국과 다른 대만’을 주장하는 민진당 정부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이어지고 있다. 대만 방문 관광객 제한, 투자 제한 등으로 대표되는 ‘경제 보복’ 속에서 대만은 장기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의 경제 정책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이 속에서 총통과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경기 침체가 야기한 민심이반

    2018년 11월 지방선거 당시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무소속으로 당선한 커원저가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하고 있다. [AP]

    2018년 11월 지방선거 당시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서 무소속으로 당선한 커원저가 두 손을 번쩍 들고 기뻐하고 있다. [AP]

    총통과 정부의 불통 문제도 빠뜨릴 수 없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국립대만대학, 코넬대학을 거쳐 런던정치경제대학(LSE)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차이잉원은 취임 후 ‘서민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실과 괴리된 발언을 자주 해 ‘불통’ 논란을 빚었다.

    대만 지방선거 결과는 우리 현실에서도 곱씹어볼 점이 많다. 우선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대통령과 정부의 지지율 하락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경제문제가 계속 거론되는 국내 현실과 일맥상통한다. 대만 선거 결과는 ‘민생’이 ‘이념’을 이긴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보이는 행태와 관련해서도 교훈을 준다. 문재인 정부는 ‘소통’을 내세우며 집권했지만 ‘만사청통(萬事靑通)’이라 불릴 정도로 청와대 독주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현장의 반대 목소리에 귀를 닫아 ‘불통’ 논란도 빚고 있다. 그러나 대만 선거 결과는 유권자가 오만한 권력을 심판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시킨다.

    차기 총선 관련해서는 정치권이 지지율만 믿고 검증되지 않은 후보를 공천할 경우 유권자의 심판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차기 총선·대선에 승리하고자 하는 정치세력은 적진에 뛰어들어 승리할 수 있는 도전정신과 실력을 갖춘 후보를 발굴해야 한다.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통·입법원 동시선거에서 연달아 참패하며 시계 제로 상황에 빠졌던 대만 국민당 처지는 오늘날 자유한국당과 겹친다. 국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거 승리와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 발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험지’ 출마를 자청하며 정치권에 다시 등장했다. 그들 중 ‘한국판 한궈위’가 탄생할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최창근
    ● 1983년 경남 고성 출생
    ● 대만 국립정치대 석사(커뮤니케이션학), 한국외국어대 행정학 박사과정 수료
    ● 前 한반도선진화재단 연구원
    ● 現 동아시아학통섭포럼 총무이사
    ● 저서 : ‘대만 : 우리가 잠시 잊은 가까운 이웃’ ‘대만 :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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