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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허영만

“복어알 毒 찍어먹고, 소 몇 마리 토막 내가며 ‘식객(食客)’그렸죠”

만화가 허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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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좆’이 만만한 까닭

허 화백은 ‘식객’ 51화 중에서 ‘고구마’와 ‘육개장’ 편을 좋아하는 독자가 많다고 소개했다. 스스로는 ‘고추장 굴비’에 애착을 보인다. 필자는 ‘죽음과 맞바꾸는 맛’(황복)과 홍어 이야기에 끌렸다.

허 화백은 전남 여수 출신이다. 흑산도와 먼 거리가 아닌데도 여수 앞바다에서는 홍어가 나지 않고 가오리만 잡힌다. 홍어와 가오리는 사촌이지만 맛과 가격이 천양지차(天壤之差)다.

“홍어는 흔히 삭혀서(발효시켜서) 먹는 것으로 알지만 생으로 먹는 홍어가 훨씬 맛있습니다. 흑산도 사람들은 홍어를 날걸로 먹어요. 옛날에는 얼음이 없으니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를 목선에 싣고 오는 동안 발효가 돼서 목포에서는 반쯤 숙성한 것을 먹고, 영산강을 따라 올라가 나주에서는 완전 숙성한 것을 먹었죠.”

우리 속담에 ‘만만한 게 홍어좆’이라는 말이 있다. 홍어는 암컷이 수컷보다 맛있고 값도 비싸다. 상인들이 수컷을 암컷처럼 보이게 하려고 홍어 꼬리 양쪽으로 난 수컷 성기를 떼어버린다. 그래서 ‘만만한 게 홍어좆’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처럼 ‘식객’에는 음식과 관련한 상식과 정보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김영삼 정부를 상징하는 생선이 멸치라면 김대중 정부는 홍어다. 정가 근처에서 얼씬거린 사람치고 명절 때 김영삼 대통령이 보낸 멸치를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는 김홍일 의원이 얼음상자에 담아 공수(空輸)해온 흑산도 생홍어를 맛본 사람이라면 권력과의 거리가 가까운 편이었다고 할 만하다.

홍어는 서해산, 중국산도 있고, 칠레산도 많아 전문가가 아니면 제 값에 제대로 된 홍어를 먹기 어렵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3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객원교수로 가 있을 때 정치인들이 홍어를 싸들고 영국을 방문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목포 동명동 어시장에서 홍어를 사던 정치인이 셈을 치르고 포장을 하는 주인에게 ‘영국에 계신 김대중 선생님께 들고 갈 선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이 ‘아 진작에 선생님 디릴 꺼라고 말해불제’라며 안에 들어가 다른 것을 들고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 뒤로 목포에서는 주인이 신통치 않은 홍어를 내놓으면 손님이 ‘아, 선생님 디릴 껀디’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식객’의 ‘쇠고기 전쟁’ 편은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철저한 현장 취재로 그려낸 ‘비육우’ 편은 축산물 등급 판정소에서 홍보자료로 활용한다. 김영사에서 출판된 식객 3권(쇠고기 전쟁)은 요리학교 교재로도 쓰이고 있다.

허 화백은 상계동 참누렁소 집에서 도움을 받았다. 이 식당 지하에는 도축장에서 가져온 대분할 쇠고기에서 뼈와 살을 분리해내는 공장이 있다. 주인은 이호준씨와 허 화백이 만화 그리다 막히면 밤에도 오고 새벽에도 찾아왔다고 말한다.

“분해하면서 소 부위를 하나하나 보여줬죠. 이건 사태, 이건 등심 하고 보여주는데 사진을 찍어 와서 현상해보면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럼 현상한 사진을 들고 가 일일이 고기 부위를 다시 확인하는 거지요. 석 달을 못살게 굴었어요. 그런데도 주인은 귀찮다는 얘기 안 하고 ‘소 한 마리 더 잡을까’ 하면서 일일이 설명해줬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조선시대에는 소 잡는 사람들이 대물림하는 천민이었죠. 백정(白丁)이라고….

“동네에서도 못 살고 떨어져 살았잖아요. 그런 풍습이 광복 후까지 남아 푸줏간 주인은 딸 혼사가 힘들었죠. ‘식객’에 그 이야기가 조금 나옵니다. 마장동에만 도축장이 있는 게 아니고 가락동에도 하나 있어요. 거기서 일하는 분들은 가족에게도 직업을 숨기죠.

거기는 대통령이 가도 안 보여줘요. 대통령 오면 카메라가 따라다닐 거 아니에요. 가락동 도축장에 있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도축장에 들어가봤죠. 카메라는 못 들고 들어가요. 카메라 플래시가 탁 터졌다 하면 공정이 올 스톱되고 그 카메라를 찾을 때까지 가동을 안 한다는 거예요.

기계는 운반하는 데 쓰일 뿐 잡아서 내장 꺼내고 목 자르고 반 토막 내는 일은 전부 수작업으로 하죠. 소는 총으로 쏴 잡아요. 파이프같이 생긴 총인데 머리에다 대고 빵 쏘면 소가 딱 넘어져요. 돼지는 전기 쇼크로 잡지요. 그때 도축장 갔다온 뒤로 당분간 고기를 못 먹을 거라고 걱정했는데 한 닷새 지나니 고기가 목에 넘어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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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사진 정경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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