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10일 과천종합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대한한의사협회 소속 한의사들.
“미국에 있는 한의과대학은 종합대학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학원 수준인 단과대학입니다. 그것도 한국 사람이 가서 만들거나 중국 사람이 만든 게 대부분이죠. 미국 전역에 50개쯤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입학하는 학생이 대부분 외국 유학생이고 그중 많은 수가 한국 학생이에요. 종합대학이 아닌 이런 칼리지들은 각 주에서 주세(州稅) 수입을 올리기 위해 강의실만 있으면 대부분 인가를 내줍니다. 한국 학생들은 그곳을 나오면 한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입학하지만 결국 자격을 얻지 못하죠. 특히 캘리포니아주의 한국계 대학이 욕을 많이 먹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미국의사협회(AAA)의 항의가 있자 2004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그들로부터 침술사 단독 개원권조차 박탈해버렸어요. ‘너희들은 물리치료사이니 의사의 오더를 받아서 물리치료만 하라’는 것이지요.”
▼ 결국 미국에서 의사자격을 안 주니까 한국을 파고든다는 얘기네요.
“그렇지요. 국내에서 한의대 들어갈 실력은 안 되니까 미국 한의대로 갔는데, 졸업해도 의사자격을 주지 않으니 오갈 데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미국 정부에다 불만을 쏟아냈겠죠. 이는 시장을 미국에 개방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 유학 갔던 한국인들이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편법으로 한의사가 되는 길을 열어달라는 요구나 다를 바 없어요. 그렇게 되면 우리 보건의료 시스템은 왜곡되고 시장이 과열되면서 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국민건강보험과 공공의료의 틀도 완전히 깨질 겁니다.
세계 각국은 수요에 따라 보건인력의 공급 규모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보건인력의 공급과잉은 과잉진료로 이어집니다. 환자들은 의사수가 늘어나면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을 것 같지만, 한의사가 아닌 침술사로부터 진료를 받게 되는 것이니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건 아니죠. 오히려 환자의 건강권이 침해되지요. 의료 서비스는 사고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한의사는 1만6400명 정도이고, 매년 850명의 한의사가 배출되고 있다. 다른 전문 의료인에 비해 이직률도 낮은 편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은 현재 국내 한의사 시장이 4000명 정도 공급과잉이라고 추산한다. 엄 회장은 “정부가 의료인력 수급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한의대 인가를 남발한 폐해”라고 지적한다.
“미국 한의대는 ‘학원’ 수준”
▼ 미국 한의대도 배우는 과목은 우리 한의대와 비슷할 것 아닙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국내 한의과대학은 6년제이고 총 교육시간은 6000시간에서 7000시간에 이릅니다. 이에 비해 미국의 한의과대학은 4년제이고 총 수업시간이 2000시간에 불과하죠. 현장실습 형태로 침 시범을 보이고 따라 하게 하는 정도인데, 심지어 통신강의를 하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교육제도와 방법 자체가 달라요. 교수들이나 배우는 학생들의 질적 수준이 현격하게 떨어집니다.”
▼ 사정이 그렇다면 미국 한의대 출신이 국내에 들어와도 우리 한의사들과 경쟁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미국의 4년제 한의대에 들어가도 한의사 자격을 딸 수 있다면 누가 국내 한의과 대학에 들어가려 하겠습니까. 미국쪽이 더 빠르고 쉬운데 말입니다. 이건 편법이지요. 국내 한의과대학의 몰락을 가져올 뿐 아니라 한의학의 질적 하락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우리 한의학이 어떻게 보존하고 살려낸 학문입니까. 식민지 시대와 제국주의 시대를 꿋꿋이 견뎌내고 살아남아 이제 서양의학, 중의학과 쌍벽을 이룰 만큼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한국 한의학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전통의학은 있었지만 제대로 살려낸 곳이 얼마나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