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는 아니고 많이 했어요. 아직도 할 게 남았지.”
예순을 넘긴 노(老)학자의 눈이 장난꾸러기처럼 반짝인다. 임성빈(66) 명지대 명예교수다. 그의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물리학과 철학, 정신과학과 잡기(雜技)를 넘나들었다. 무애(無碍)라는 호(號)답게 도무지 경계가 없어 따라잡기에 숨이 찼다.
그를 소개하기 위해 간단하게 직함만 정리해보자. 일단 직업은 지난해 8월까지 명지대 교통공학과 교수였다. 정년퇴임한 지금은 같은 대학 명예교수다. 동시에 그는 한국정신과학학회장, 한국바둑학회장, 서울우슈(武術)협회장, 민중의술(醫術)살리기 서울·경기연합회장, 한국한의학연구소 자문위원, 홍익생명사랑회장 등을 현재 맡고 있거나 역임했다. 이름만 걸어놓은 ‘회장’이 아니라, 실력을 겸비한 진짜 리더다. 그는 태권도를 비공인 4단까지 수련했고, 우슈를 배워 무술경기지도자 2급 자격증을 받았으며, 기공을 익혔고, 침술 실력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경을 헤매던 아내를 구한 정도다. 단소 명인 김중섭에게 단소를, 원광대 임재심 교수에게 가야금을 배웠다. 한때 명상에 심취해 단학선원 법사 자격증을 받았으며, 당구 300에 바둑 아마 5단, 마작, 훌라도 자칭 수준급이다. 등산광(狂)이기도 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엔 늘 산을 찾고, 주중에도 한두 번씩 산에 오른다. 전국의 서로 다른 산 100개를 등반할 때까지는 같은 산에 다시 오르지 말자는 뜻의 ‘100산회’를 만들어 목표를 이루기도 했다.
“하고 싶은 건 다 한다”
그렇다면 잡기에 빠져 본업은 등한시한 교수였는가. 그것도 아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을 지낸 그는 사단법인 한국교통문제연구원장, 국무총리실 정책평가 자문위원과 대통령비서실 사회간접자본투자기획단 자문위원 등을 맡은 저명학자다. 명지대 안에서는 공과대학장, 교통관광대학원장, 문화예술대학원장, 법인기획위원장 등을 지냈다. 요즘은 정신과학에 심취해 우주의 시작부터 인류의 미래까지 통찰하는 연구에 푹 빠져 있다. 프로필만으로도 원고지 서너 장이 훌쩍 넘어가는, 말 그대로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임 교수의 자택으로 찾아갔다. 아, 그는 2003년 12월, 이곳에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지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독특한 집이다.
▼ 설계나 시공을 배운 적이 있나요?
“대학 때 토목공학을 전공해서 기본은 알죠. 책 좀 보고 연구 좀 해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만들었어요. 일단 1층엔 문이 하나도 없습니다. 식구끼리 사는데 문 닫아둘 필요 없잖아요. 콘센트는 110V용, 220V용 따로 만들고, 전기선은 바닥 아래로 다 묻었어요. 앞뜰에는 메밀꽃 심고, 그 옆에 조그맣게 테라스도 만들었습니다. 재산 가치로 보면 높지 않지만, 근사하지 않아요?”
뭐든 하고 싶으면 하는 사람이다. 앞서 언급한 수많은 전문 분야도 그렇게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 관심사가 참 다양해 보입니다.
“다양해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가지예요. 뭘 해야 행복할까. 사춘기 때 다들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행복이 뭐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저는 그 생각을 계속했습니다. 지금도 계속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