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장과 헤어진 그는 택시영업에 나설 짬도 없이 서둘러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10시 50분경 신청사 10층 회의실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40분 뒤에 열리는 ‘서울시 거리모니터요원 표창’ 수여식에서 상을 받는다고 했다. 이씨를 포함해 12명의 ‘우수 거리모니터요원’과 ‘우수 공무원’이 작년 한 해 동안 서울 시내 곳곳에서 보행에 지장을 주는 불편사항을 신고해 신속히 보수한 공로로 시장 표창을 받는다는 것. 주무 부서인 서울시 보도환경개선과 표창 담당 공무원은 “이 기사님은 작년 한 해 동안 신호등 고장, 파손된 보도블록 등에 대해 총 100여 건의 신고를 해왔다. 택시 운행을 하면서 무보수로 1년간 서울시의 ‘알리미’ 노릇을 한 것”이라고 했다. 표창장을 받은 이날도 그는 서울 영등포역에서 여의도 방면으로 향하는 교차로에서 파손된 보도블록을 발견하자 차를 세운 뒤 사진을 찍어 서울시 콜센터에 신고했다. 시상식장에 참석한 이씨의 큰딸 선은(32) 씨는 아버지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기뻐했다.
“어릴 땐 가족을 돌보기보다 봉사에 빠진 아빠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학 진학, 결혼, 사업 등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는 걸 보면서 그동안 아빠가 사람들을 도와준 은덕이 자식인 내게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시상식 모습을 보니 아빠의 봉사가 헛되지 않은 것 같아 자랑스럽다.”
기자는 이씨를 이틀간 밀착 취재하면서 여러 지인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영업용 택시를 몰면서 봉사에 빠져 있으니 돈은 언제 버나?” 하고 걱정했다. 서울 동작구 주민인 그는 현재 동작구 모범운전자회 회원으로 교통정리 봉사를 하는 것 외에 동작구청 시민명예감사관 및 상도3동 자율방범대 홍보부장, 한국방송공사(KBS) TBN 교통통신원, 서울지방경찰청 치안행정모니터요원, 서울소방재난본부 명예소방관, 사단법인 한국청소년행동과학문화원(이사장 이탁규) 산하 청소년방송국 기획실장 등 수많은 직책을 갖고 있다.
2012년 여름에는 방재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태풍이나 홍수피해를 입은 지역에서 보다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펼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해 7월 중순 새벽 3시 30분쯤 성동구 응봉동의 한 도로를 지나다 도로 침수로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상황을 목격하고 택시 영업을 포기한 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우선 침수 차량을 물에 잠기지 않은 도로로 밀어내고, 배수로 출구를 찾기 위해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위험 상황에서도 물속으로 뛰어들어 취수로를 확보했다. 그 결과 차량과 보행자가 무사히 통행할 수 있게 됐다.
“나 하나 수고해서 많은 사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봉사는 피로회복제다.”
교통정리 봉사로 ‘호루라기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은 이씨는 ‘강도 잡는 택시기사’로도 유명하다. 2013년 5월 27일, 봄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오후 4시 50분경 그는 차를 몰고 가다 서울 용산구 원효로3가 용문시장 앞에서 술을 마신 40대 남성 한 명을 손님으로 태웠다. “근처 노래방으로 가달라”는 말에 가까운 원효로2가 교차로 부근 횡단보도에 차를 세우자 손님이 강도로 돌변했다.
그가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투에서는 식칼이 나왔다. 강도는 식칼로 위협하며 운전석 앞 계기판에 놓아둔 현금다발을 내놓으라고 조용히 말했다. 차안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씨는 도로 한복판에 차를 급정차하고 재빨리 내렸다. 뒤따라 내린 범인이 칼을 휘두르며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이씨는 다행히 몸을 피했다. 범인은 돈을 꺼내기 위해 차 앞 엔진덮개 위로 올라가 칼로 수차례 앞 유리창을 찍었지만 유리창은 금만 가고 깨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29일 ‘서울시 거리모니터요원 표창 수여식’에서 표창장을 받는 이필준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