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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모는 기차 타고 北 고향땅 달리고 싶어요”

1987년 ‘일가 탈북’ 김만철 막내딸 김광숙 부부

“남편이 모는 기차 타고 北 고향땅 달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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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탈북 인사가 말했다. “김만철 씨 막내딸 기억해요? 그 꼬맹이 광숙이가 남편 잘 만나 고생 다 끝났어요.” 광숙, 용수 씨는 따뜻하고 행복하게 꿈을 키우며 산다.
“남편이 모는 기차 타고 北 고향땅 달리고 싶어요”

한용수·김광숙 부부 .

1월 8일 김광숙(42) 씨가 말했다.

“남편이 20년 동안 직장을 성실히 다녔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한다는데, 보태주지는 못해도 방해는 말아야죠. 열심히 도와드려야죠. 남편 뒷바라지 잘하려고요.”

남편 한용수(40) 씨는 웃었다.

“나, 결혼 잘했죠? 아내에게 더 잘해야 할 것 같아요.”

광숙 씨는 1987년 1월 가족 10명과 함께 탈북한 김만철 씨의 막내딸이다. 2000년 용수 씨와 결혼했다. 남편은 서울지하철 1, 2, 3, 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서 일한다. 3월부터 한양대 대학원에서 철도 시스템을 공부한다.



광숙, 용수 씨가 사는 경기 수원시 아파트는 아늑했다. 스물네 평. 2009년 구입했다. 광숙 씨가 말했다.

“내 집 장만해 처음 이사왔을 때는 잠도 잘 못 잤어요.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아니라 하늘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정말로 내 집 맞나 싶었죠. 빚을 안고 샀지만, 전셋집처럼 2년 살다 이사할 일도 없고요.”

처가 식구들의 트라우마

용수 씨는 “딸이 방이 생겼다며 신 나게 쓸고 닦던 게 생각난다”고 했다. 딸은 올해 중학교 2학년. 광숙 씨에게 남편 자랑을 해달라고 했다.

“자랑요? 하하하. 직장 생활할 때 성실성 같은 거 말하면 되는 거죠?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성실하게 사는 게 기본이잖아요. 그런데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 어떤지 잘 알잖아요. 한두 명이 아주 성실하면 100명이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부부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한 탈북 인사가 “탈북자 대부분이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귀감이 되는 부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김만철 씨 막내딸 기억해요? 그 꼬맹이 광숙이가 남편 잘 만나 고생 다 끝났어요. 수원 집에 다녀왔는데 정말로 행복하게 살더군요. 용수가 정말 성실하거든요. 이런 말하기 뭣하지만, 나고 자란 체제 탓인지 성실한 사람이 드문 게 사실이에요.”

광숙 씨는 15년 넘게 근황이 알려지지 않았다. 용수 씨의 설명이다.

“아내는 물론이고 처형, 처남들이 어릴 적 트라우마가 굉장히 컸나봐요. 언론이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도했잖아요. 언론을 굉장히 싫어해요. 얼마 전에도 KBS가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걸 거절했습니다.”

김만철 씨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 표류하다 일본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1987년 1월 19일, 경찰은 닷새 전 일어난 박종철 군 고문치사를 인정했다. 11명 일가족 집단 탈북은 분단 후 처음 일어난 일로 일대 사건인 데다 군사정권 처지에선 박종철 군 사망에 쏠린 시민의 관심과 시선을 분산시킬 기회였다.

“회사 선배들이 아내의 어린 시절을 저보다 더 잘 알더군요. 선배들이 아내가 한국에 와서 다리 수술을 받았다기에 ‘너 다리 수술 받았니?’ 물어봤죠. 그랬더니 ‘받았어요’라는 겁니다.”

광숙 씨는 1987년 2월 8일 가족과 함께 한국에 도착했다. 이듬해 서울 방이초등학교 6학년에 입학했다. 1989년 1월 27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사진 속 광숙 씨 얼굴이 앳되다. 용수 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예쁘고 귀여운 데가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안 귀여워요, 하하.”

“즐겁게 사는 장인어른”

1987년 1월 15일 새벽 1시, 함경북도 청진 바닷가에서 11명이 배에 올랐다.

“장인어른 말씀이, 정한 목적지가 따로 없었다고 해요. 무인도 같은 곳에서 식구끼리만 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사지을 씨앗도 다 준비했고요. 군사지도 구하고, 해도(海圖) 보는 법 배우고, 배가 고장 나면 어떻게 고치는지 익히고 그러셨답니다. 지금도 자랑 삼아 말씀하세요. 좋은 말로 하면 모험심이 많은 분이고, 안 좋은 말로 하면 무모한 데가 있어요. 일본에서 대만으로 추방됐을 때만 해도 한국으로 올 생각이 크지 않았답니다. 1983년 전투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씨가 대만으로 날아와 설득했다고 해요. 장인 말씀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한국에 오면 병원도 지어주고(김만철 씨는 북한 의사 출신)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준다고 약속했다더군요.”

“남편이 모는 기차 타고 北 고향땅 달리고 싶어요”

부부의 가족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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