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호

이영희 노동부 장관

“민주노총 제정신 못 차리면 대한민국 미래 없다”

  • 송홍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9-09-11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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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칼라가 중산층 중심 이루는 사회 만드는 게 국가 목표”
    • “여당이 다수당 노릇 못하는 참 희한한 국회”
    • “한쪽 편만 보는 건 정의롭지 않다”
    • “법 안 지키는 게 가장 큰 문제”
    • “기업 이익 먼저 고려한 적 없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
    Episode 1 : 노동부 장관 이영희는….“노동운동 할 때는 근로자 편에 섰고 근로자를

    위해서 일했죠. 프로 레이버(Pro-labor)였습니다.”


    올 여름,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복날 삼계탕집 주인처럼 바빴다.

    ▼ 휴가는 다녀왔나요?

    “못 갔습니다. 쌍용차 파업도 있고…. 지금은 휴가가 소멸했죠.”



    그는 서울대 행정학과 61학번으로 석사를 마친 뒤 한국노총에 취직했다.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이 노동운동에 뛰어든 계기다. 그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노동법 전문가. 1980년부터 인하대 법대에서 노동법을 가르쳤다. 한나라당과는 1995년 여의도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을 지낸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후보의 외곽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상임의장을 맡았다.

    ▼ 선진국민연대엔 왜 참여했습니까?

    “내가 보수적 가치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국가가 발전하려면 정권을 바꿔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여의도연구소를 그만두고선 정치권에 발 담글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배들이 ‘가만있는 건 옳지 않다, 역할을 좀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시민단체 공동대표를 맡는 느낌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큰 조직인 줄 몰랐고요.”

    ▼ 합리적 중도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던데요.

    “그게 편하니까요. 중용(中庸)이 좋다는 유교적 가치관이 있습니다. 좌, 우 구분은 이젠 의미가 없어요. 한쪽에 치우치거나 모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선 중도라고 봐야겠으나 북한을 들여다보는 시각은 확고합니다. 김정일 정권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어요.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과 타협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에요.”

    비정규직법 개정이 시빗거리로 떠오른 6월 말, 노동계는 그를 ‘기업부 장관’이라고 몰아세웠다.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의 언사도 거칠었다.

    ▼ 노동부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노동자를 보호하는 게 노동부가 할 일이죠. 노동자의 근로 생활을 안정화하고 부당한 근로조건에 놓이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의 생활안정, 고용촉진을 돕고요. 협력적 노사관계를 만드는 것도 노동부가 할 일입니다. 근로자에게 능력개발 기회, 훈련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한 과제고요.”

    ▼ ‘기업부 장관’이란 말 들어봤나요?

    말투가 단정한 그가 속사포처럼 말했다.

    “노동계가 당장의 기득권이랄까 이익에 연연해서 미래를 못 보면 곤란해요. 근로자에게 도움 되는 일 하겠다고 먼저 생각하지, 기업의 이익을 먼저 고려한 적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할 이유도 없고,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고,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얻을 것도 없어요.”

    ▼ “노동부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추미애 의원의 폭언을 들었을 때는….

    “폭언은 아니었죠. 노동부가 근로자를 억압한다는 투로 말했는데 그 발언은 그냥 넘기기 어렵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고용위기, 경제위기 상황에서 노동자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노동을 대립 관계로 보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친기업이면 반노동, 친노동이면 반기업인 게 아닙니다. 친노동이 친기업, 친기업이 친노동이 되게끔 만들어야죠. 노동자의 이익을 지킨다면서 투쟁만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제정신 차려야 해요. 그런 노동운동이 계속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

    쌍용자동차 노조가 점거했던 경기 평택시 쌍용차 공장.

    “한쪽 편만 보는 건 정의롭지 않다”

    ▼ 친정 격인 한국노총도 장관을 맹비난했습니다.

    “한국노총에서 비판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고, 이해도 합니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보다 현실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한국노총도 기득권 구조를 벗어 던지고 규칙을 지켜야 해요.”

    ▼ 장관은 노동운동을 할 때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장으로 일할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포지션에 서 있는데, 세상이 바뀐 건가요?

    그는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65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돼 2년을 쉬었다. 입시학원의 독서실 총무로 일하면서 사상 서적을 탐독했는데, 후배들이 신입생 이론교육을 시켜달라면서 찾아오곤 했다. 그중 한 명이 서울대 66학번인 박세일 교수다.

    “겉으로 보면 생각, 의견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어요. 예전에 노동운동 할 때는 근로자 편에 섰고 근로자를 위해서 일했습니다. 완전히 프로 레이버(Pro-labor)였죠. 한국은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억압받는 사회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이후 폭발적으로 노동운동이 분출하는 걸 보고 노사관계가 정상화한다고 생각했죠. 그 뒤부터는 어느 한쪽 편만 보는 건 정의로운 자세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노사관계가 발전하려면 균형이 잡혀야 해요. 자본과 노동이 밸런스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가 강해지면 ‘노’ 쪽에 힘을 싣고, ‘노’가 강해지면 ‘사’ 쪽에 힘을 실어줘야 해요. ‘노’건 ‘사’건 어느 한쪽 편을 드는 건 둘 다 권력의 편에 서는 겁니다.”

    ▼ 노동부 장관으로서 꿈꾸는 바람직한 노동시장은 어떤 모습인가요?

    “노동자가 안정되게 생활하는 국가입니다. 블루칼라(작업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중산층의 중심이 되게끔 만드는 게 국가의 목표라고 생각해요. 취업자가 2300만명입니다. 그중 1600만명이 임금근로자입니다. 노동부가 할 일이 많지요. 그런데 사회 전체로 보면 근로자의 소득은 낮은 편에 속합니다. 중산층이 두꺼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업이 경쟁력을 갖춰야 해요.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노사가 협력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협력 관계예요. 삼권분립처럼 권력집단이 균형을 잡는 게 핵심입니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착취하지 못하는 게 민주주의 아닌가요. 한 발 나아가 진정한 민주주의는 참여입니다. 노사가 협력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향유해야죠. 사회는 그런 식으로 가야 합니다. 노조가 경영에 참여한다든지 그러면서 통합을 도모해야죠. 그런데 지금은 경영 참여 이런 얘기를 못해요. 지금과 같은 노동운동 상황에서 경영참여 얘기를 꺼내면 기업에서 잡아먹으려고 할 겁니다. 무엇보다도 노조가 제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좌, 우, 진보, 보수를 넘어서 미래를 새로 만들어야 해요. 선진화라는 말 참 잘 지었던데, 선진화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일은 옛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새 패러다임을 만드는 겁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진보주의자입니다. 노동부에서 가장 개혁 성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런데 현실적으로 민주노총이 바뀔 수 있을까요?

    “비관적입니다. 하지만 민주노총 내부에서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을 탈퇴하려는 노조도 나타나기 시작했고요.”

    Episode 2 : 쌍용자동차, 극한파업 그리고 노동운동….“무모한 투쟁은 통하지 않는다고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감성적 노동운동에 경종을 울렸다고 생각해요.”


    올 여름, 그를 괴롭힌 건 쌍용자동차 파업과 비정규직법 개정 실패다. 쌍용차 사태는 8월6일 3160억원의 상처를 남기고 ‘77일 전쟁’을 마무리했다. 노동부의 장(長)인 그는 쌍용차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쌍용차 파업 사태가 평화롭게…. 그러니까 불상사 없이 종결된 게 다행입니다. 쌍용차 사태는 그렇게까지 가지 않았어야 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에요. 경영위기 상황에서 회사가 채권단으로 넘어갔고, 청산하느냐, 회생하느냐 갈림길에서 회생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에 나선 겁니다. 경영이 악화하면 기업은 노동법에 따라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습니다. 해고 인원과 기준을 회사와 노조가 협의하도록 규정해 놓았고요.”

    그는 회사가 함부로 해고한 게 절대로 아니라고 강조했다. 법적 절차를 거쳤음에도 노조가 막무가내로 파업을 벌였다는 거다.

    “노조는 해고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공적자금을 선(先)투입해 회사를 먼저 정상화하라는 건데, 그것은 앞뒤가 바뀐 겁니다. 노동법은 근로자를 해고할 때 노조와 ‘협의하라’고 했지 ‘합의하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생계가 곤란해진 근로자가 해고 위기에 처했을 때 파업하는 건 이해합니다만 이번 파업이 정당성을 갖췄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공장 가동을 불가능하게 해서 70일 넘게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건 잘못이죠. 강성 노동조합의 구태입니다. 옥쇄파업은 뿌리를 뽑아야 해요.”

    경기지방경찰청의 말을 빌리면 쌍용차 노조는 ‘뒷골목에서 맞장 뜨는 식’으로 공권력에 대응했다. 그는 “국가의 공권력을 거부하는 노동운동은 정상적 민주사회에선 용인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공장에 들어간 건 법원의 집행 명령을 노조가 거부했기 때문이에요. 국가의 공권력을 무시하는 건 바람직한 노동운동이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극단적인 경우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노사관계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는 이번 파업이 반기업, 반자본 투쟁이라고 주장했다.

    “근로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파업을 주도한 세력은 개개인과는 다릅니다. 불가능한 걸 요구하고 끝까지 강경투쟁으로 사태를 몰고 갔어요. 쌍용차 파업은 해고를 막기 위한 노동운동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외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적당한 단계에서 마무리됐겠죠. 노동계 지도부가 해고가 눈앞에 닥친 근로자의 절박함을 이용해 반자본주의적, 반기업 투쟁을 벌인 겁니다. 실업의 문제와 노조 지도부는 분리해야 해요. 거듭 말하지만 노동계는 각성해야 합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
    경영계 일각에선 쌍용차를 파산시켜 노동계에 본보기를 보였어야 했다는 극단적 주장도 나온다. 그는 이 같은 의견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쌍용차 파업이 ‘기회’ 혹은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산 운운하는 건 너무 많이 나간 주장입니다. 쌍용차가 회생에 성공한다고 단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임직원이 힘을 모아 회사를 살릴 기회를 줘야 해요. 쌍용차가 무너지면 협력업체도 도산합니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죠. 파산까지 가야 한다는 주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건 너무 극단적이에요. 쌍용차 사태에서 노조가 참패했다고 말하긴 뭣하지만 현실을 벗어난 무모한 투쟁이 이젠 통하지 않는다고 노조가 뼈저리게 느꼈으리라고 봅니다. 비현실적이고 감성적인 노동운동에 경종을 울렸다고 생각합니다. 쌍용차 사태가 어떤 전환점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되리라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 노동계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일자리 나누기’ 같은 방법으로 쌍용차의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나요?

    “일자리 나누기는 지금 당장의 사정은 어렵지만 기업 자체가 견딜 만할 때 하는 겁니다. 3~4개월가량 어려움을 함께 나누자는 거죠. 쌍용차처럼 도산하느냐, 살아남느냐는 상황에선 그런 방식으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을 살린 뒤 필요한 인력을 순차적으로 재고용하는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뒷짐질 필요가 있다”

    ▼ 쌍용차 사태 때 노동부는 뭘 했느냐, 장관은 뭘 했느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노동부가 뒷짐만 졌다는 겁니다.

    “쌍용차 사태가 국가적 이슈가 됐습니다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민간기업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노동부가 실질적으로 뭘 했느냐고 말하는데 밖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모르겠죠.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노사 간 대화가 계속 이뤄지도록 노력했습니다. 그 부분은 노사가 모두 인정할 겁니다. 문제 해결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기업에서 분규가 일어나더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쟁점이 뭔지는 노사가 가장 잘 압니다. 당사자에게 해결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합의가 이뤄집니다. 그런데 쌍용차처럼 특수한 경우엔 노조가 이슈를 사회문제로 확대해요. 정부가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력을 넣는 거죠. 정부가 끼어들어서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 뭔 줄 알아요? 기업한테 압력 넣는 겁니다.”

    ▼ 양보하라고 말하는 거군요.

    “그렇죠. 노동자에게 압력을 넣으면 노동자가 듣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정부와 노동자간 갈등만 부각되겠죠. 기업과 한통속이 돼서도 안 되고요. 결국 남은 해법이 정부가 기업한테 양보하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지난 정권에서 일을 그런 식으로 했습니다. 지난 정권의 방식을 답습했으면 쌍용차 문제도 일찍 해결됐을 겁니다. 요컨대 과거 정부가 해온, 패턴이 돼버린 그런 방식은 잘못된 해결 방안입니다.”

    ▼ 뒷짐 지고 있는 게 옳다는 거군요.

    “때로는 뒷짐 지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노사문제는 노사가 해결하게끔 하는 게 대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원칙은 그의 오래된 생각이다. 그는 “노동현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1993년 ‘법과 사회’에 기고한 글을 통해 밝힌 적도 있다.

    “노조는 강력한 수단을 갖고 있습니다. 쌍용차 사태 때 기업이 입은 손해가 엄청납니다. 개별 단위를 들여다보면 사용자가 힘이 달리는 예도 많습니다. 노조가 강한 기업에선 사측이 양보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노사협상에서 노동자와 기업은 대등해야 합니다. 정부는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만 선진적 노사관계가 정착할 수 있습니다. 물론 노사 양측이 합의해서 정부에 조정을 의뢰하면 나서야 하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정부의 중재를 따르겠으니 조정해달라는 게 아니라 문제를 키운 뒤 요구사안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식입니다.”

    Episode 3 : 7월1일 그후….

    “참 희한하게도 우리 국회는 다수당이 다수당 구실을 못합니다.”


    ▼ 마음고생이 심했나요?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법 개정이 무산돼 실직한 근로자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해고를 막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던 터라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를 바랐는데 그게 잘 안 됐습니다.”

    노동부가 추진한 비정규직법 개정이 야당의 반대로 무산돼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2년 제한’ 규정이 발효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노동계는 “이영희 장관의 ‘100만 해고 대란설’은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쓸데없이 논란과 혼란을 부추겼다”고 비난한다.

    그는 타이타닉론으로 맞선다

    “빙산의 일각만 보고 타이타닉을 몰다가는 침몰합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

    이영희 장관은 “노사문제는 노사가 해결하게끔 하는 게 대원칙”이라고 말했다.

    ▼ 100만명 해고 주장은 조금 과한 게 아니었나요?

    “정확한 이해가 필요해요. 100만명 해고 대란설을 노동부가 제기한 것으로 사실화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7월1일자로 고용기간이 2년 넘는 근로자가 86만명입니다. 그중 법 적용 대상자는 71만명으로 추산되고요. 7월1일까지는 고용기간을 넘기지 않았으나 향후 1년간 고용기간 2년을 넘기는 근로자가 37만명입니다. 둘을 더하면 108만명인데, 이 분들이 향후 1년 동안 해고냐, 정규직 전환이냐 기로에 놓였습니다. 1년 동안 순차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7월1일부터 곧바로 해고 사태가 벌어진다는 건 사람들이 오해한 겁니다. 예컨대 4년을 근무하고 6월15일에 1년 고용계약을 갱신한 분은 내년 6월15일까지는 비정규직법 적용을 받지 않습니다. 노동부는 108만명 중 70%가 해고되고, 30%가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 잠복한 문제라는 거군요?

    “그런데 실태 조사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정치문제가 돼버려서 인사담당자가 해고자 수를 줄여서 말할 가능성이 높아요. 전국 52만개 사업장을 일일이 조사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1만개 사업장을 샘플링해서 통계를 만들고 있습니다만, 월 3만명이 해고되더라도 하루에 1000명이 일자리를 잃는 겁니다. 거듭 말하지만 7월로 끝나는 게 아니라 1년 동안 계속됩니다. 7월 실직한 비정규직 통계가 조만간 나옵니다. 4만~6만명이 해고됐을 가능성이 있어요.”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는 노동부 예상(매달 6만~8만명)은 물론이고 노동계 예측(매달 3만여 명)보다도 해고 근로자 수가 적으리라고 내다본다. 누구의 예측이 맞을지는 현재로선 지켜볼 일이다.

    ▼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당초 예상과 비슷하다는 건가요?

    “당초 예상보다는 적을 수 있다고 봅니다. 조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현장 상황이 예측과 다른 부분이 있어요. 우리는 고용자가 정규직, 비정규직 중 양자택일을 할 거라고 보았는데 작은 기업에선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 없이 근로자를 계속 고용한답니다.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형태로 신분 변화 없이 고용하는 거죠. 그런 형태는 정규직화한 게 아닙니다.”

    ▼ 법 개정만 믿고 손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고용 안정을 위해선 법 개정이 꼭 필요했습니다. 법 개정을 믿었다는 부분은 일부 인정합니다.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고자 사회보험료를 감면해서 기업에 지원금을 주는 내용이 추가경정예산에 들어갔습니다. 그 예산이 통과할 때 여야가 부대결의를 했습니다. 비정규직법 개정이 일종의 조건부가 된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안 믿을 수 있습니까? 야당도 동의할 줄 알았습니다. 비정규직 고용활성화로 뒤늦게 선회했다, 변화했다고 언론이 보도하던데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잘못 알려진 겁니다. 비정규직 차별 시정은 기존부터 노동부가 해오던 정책입니다. 7월1일 이전엔 기존 법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보호 노력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 노동부의 의견대로라면 정기국회 때도 법 개정 노력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장관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참 희한하게도 우리 국회는 다수당이 다수당 구실을 못합니다. 한나라당은 여야 합의 없이는 처리 못한다는 의견입니다. 야당은 정기국회에서 논의하지 말고 내년 2월까지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는 주장입니다. 야당이 그런 의견을 가진 한 여당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행정부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

    ▼ 지난해 9월 핸리 폴슨 당시 미국 재무장관은 7000억달러 구제금융안 합의가 무산되자 의원들이 보는 앞에서 낸시 팰로시 하원의장에게 무릎 꿇고 애원했습니다.

    “무릎 꿇고 그러진 않았습니다만 야당 대표, 원내대표, 야당의원을 엄청나게 만났습니다. 대화할 때는 법 통과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만 당론을 정할 때는 완전히 불통입니다. 기간제 근로자 해고 사태와 관련해서 야당이 큰 책임을 느껴야 해요.”

    “사회안전망 꾸준히 개선됐다”

    ▼ 기간제 노동자 사용 기간을 4년으로 늘린다고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단기간에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만, 어떤 복안, 구상을 갖고 있습니까?

    “정부안이 근본적 해결책이 못 된다고 비난받았는데 근본적 처방이라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4년으로 늘리면 정규직 전환 비율이 높아지리라고 봅니다. 생산력을 유지하려는 기업이라면 4년가량 일한 우수한 근로자를 다른 근로자로 교체하지 않을 겁니다. 통계를 보면 5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비율이 65%로 나타납니다. 근로자 처지에서도 4년이면 다른 곳으로 옮길 준비를 할 수 있고요. 근무시간을 예로 들어 서구의 노동법 발전 과정을 보면 하루 16시간부터 14시간, 12시간, 8시간으로 줄었습니다. 고용기간 ‘2년’은 지나치게 래디컬했어요. 비현실적이었죠. 현장의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햇수를 줄여가는 식으로 추진했어야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예요. 노동시장의 경직이 풀려야 고용이 늘어납니다. 지금은 비정규직 고용마저 경직되고 있습니다. 기업이 해고를 마음대로 못 하는 게 궁극적으로 근로자에게 부담이 되는 겁니다. 해고를 마음대로 하는 쪽으로 법을 개정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고용의 유연화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비정규직 발생을 줄이기 어렵습니다. 원론적인 얘기입니다만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게 비정규직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영세기업이 중소기업, 중견기업으로 발전해야 양질의 일자리가 늘겠지요. 이렇듯 매크로한(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비정규직 문제는 현실입니다. 경제 상황은 안 좋은데 해고가 어렵다보니 비정규직을 쓰는 겁니다. 근본적 해법은 경제가 좋아지는 길밖에 없습니다.”

    ▼ 대기업 노조가 완강한데,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가능할까요? 실직은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쌍용차 사태 때도 “해고되면 죽는다”는 글귀가 새겨진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한국의 사회안전망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근로자들이 기업이 어려워지면 자신도 어려워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회사가 그 지경이 되기 전에 혁신했어야 합니다. 경영이 어려워졌는데도 나갈 수 없다는 건 논리적 모순이에요. 사회안전망이 부실하지 않으냐는 지적이 나오는데, 사회안전망이 완벽하면 기업도 해고에 부담을 안 느끼고 근로자도 해고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100% 완벽한 사회안전망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완벽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한 나라는 유럽의 몇 개 나라밖에 없어요. 유럽의 실업 급여가 어디서 나옵니까? 결국 재정과 국민이 낸 세금입니다. 노동부가 사회안전망 구축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우리는 비용을 부담하는 데 인색합니다. 실업기금은 기업, 개인이 부담하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 유럽보다 개인, 기업이 부담하는 액수가 적습니다. 우리나라가 오래전부터 선진국이 아니었습니다. 개발도상국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면 고용보험을 비롯한 사회안전망이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 비교해 보세요. 실업급여 신규신청률이 66%로 높아졌고, 실업급여를 받는 비율도 43%까지 올랐습니다. 총 실업자 중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이 50%까지 올라가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겁니다.”

    Episode 4 : 노동법 전문가 이영희는….

    “법을 안 지키는 게 문제예요.

    노사가 노동법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올 여름, 좌절을 맛본 그의 앞에 또 다른 ‘뜨거운 감자’가 기다린다. 내년 1월1일로 유예기간이 만료하는 노동조합법의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규정이 그것이다. 노동계는 법 조항을 없애라고 주장하고, 경영계는 법대로 집행하라고 주문한다.

    ▼ 내년 1월1일로 유예가 만료하는 복수노조 허용 조항과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나요?

    “여건이 안 됐다는 이유로 13년째 법 적용이 미뤄졌습니다. 더 이상 미룰 이유도 없고, 유예할 능력도 없습니다. 1사업장 1노조 조항을 둔 곳은 이름난 나라 중엔 한국이 유일합니다. 그 조항 때문에 한국이 아직도 노조를 억압하는 나라로 알려집니다.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때 그 조항이 트러블이 될 수 있어요. 노조전임자가 부분적으로 근로시간을 면제받는 예는 있으나 노조활동하면서 임금 받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잘못된 행태가 계속돼 관행이 된 겁니다. 이런 관행은 노사관계의 룰에 어긋납니다.”

    할 말 많은 장관

    ▼ 노동법 전문가로서 한국의 노동법제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까?

    “노동법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법 자체의 문제보다 법을 준수해야 해요. 법을 지키는 과제가 먼저입니다. 과거엔 노동법이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민주정부라고 불리는 정권이 세 번 지나고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그동안 노동법 개정이 잘 이뤄졌습니다. 노사 양쪽이 공히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잘 운영하면 됩니다. 법을 지키면서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야 해요. 법을 안 지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21세기입니다. 산업 환경이 바뀌었어요. 노동법이 근로자를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법이라는 인식은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직을 풀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법을 가다듬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노동법은 헌법보다도 고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인터뷰어는 인터뷰를 끝내려고 했으나 인터뷰이는 말을 계속했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는 ‘사회적 기업’ ‘다문화 사회’를 주제로도 대화를 나눴다. 그는 인터뷰어가 취재노트를 접자 빠른 목소리로 할 말을 했다. 개각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는다면 올 겨울에도 그는 바쁠 것 같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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