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에는 반드시 동물성 재료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동의보감을 보면 순식물성 약재만으로 구성한 보약 처방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널리 쓰이는 한약재를 봐도 식물성 재료는 260여 종인 데 비해 동물성은 20여 종에 불과하지요. 식물만으로도 충분히 효과 좋은 약을 지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동물성 약재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만 “야생동물에게서 채취한 재료로 만든 환제의 경우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고가인데, 그 재료가 진짜인지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 제조과정이나 유통과정상의 투명함은 어떻게 보증하는가”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만약 그 약재가 실제 야생동물에서 나온 것이라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채취 과정에서 발생했을 야생동물 남획과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다.
“식물성 재료만으로도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면, 인간과 환경을 위해 당연히 식물성 처방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채식은 내 몸과 지구를 살리는 적극적인 행동”
이씨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한약학과 졸업 무렵 시작한 채식 덕분이다. 사회 진출을 앞두고 어떤 한약사가 돼야 할지 고민하는 그에게 한 선배는 수행을 권했다. “이유는 묻지 말고 채식을 하면서 매일 금강경 원문과 해석을 한 번씩 써라. 그러다보면 스스로 답을 얻게 될 것이다.” 방황하던 그에게 이 조언은 하나의 규범처럼 다가왔다.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규칙을 지켰다. 모든 고기류를 끊었고, 생선류 해물류 어패류와 젓갈류, 무정란을 포함한 달걀 등 일체의 동물 성분도 먹지 않았다. 불교 수행에서 금하는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홍거)까지 멀리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자신을 만났다.
“건강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지면서 자연스레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서구사회에서는 채식이 단지 고기를 먹지 않는 소극적인 행위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과도한 소비문화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됐죠.”
이씨에 따르면 육식 중심의 식단 때문에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의 80%가 동물 사육지로 사용되고 있다. 아마존 열대 우림의 70%는 동물 사육지나 사료용 곡물 재배농지로 변했다. 숲이 사라지면 그 안에서 살아온 생물종(種)이 사라지고, 기후변화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서구의 채식주의자들은 환경운동가이고 생태운동가이기도 하다. 채식 관련 공부를 통해 이씨는 채식주의를 널리 알리는 한약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선배의 조언처럼,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고기를 먹는 건 죄악’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동안 채식주의를 주장해온 분들은 참혹한 동물 사육 환경을 고발하면서 ‘이런 고기를 먹다니 인간도 아니다. 항생제에 절고, 분노 속에서 타살당한 고기를 먹으면 건강이 나빠진다’고 했지요. 이런 주장 때문에 일반인은 오히려 채식에서 멀어진 면이 있고요. 채식주의자는 잘난 척만 하는, 까다롭고 상종 못할 존재라는 인식을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는 “이러면 안 된다” 대신 “이렇게 하면 좋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햄버거 한 개를 안 먹으면 1.5평의 숲을 지킬 수 있습니다. 고기를 덜 먹는 당신은 이미 환경운동가입니다.” 그가 대표로 있는 ‘고기 없는 월요일을 실천하는 사람들(meatfreemonday.co.kr)’ 모임은 이런 목소리를 내는 단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고기를 먹지 말자는 목소리는 다소 어색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다. “저는 일주일에 고기 먹는 날이 며칠 안 되는데요?”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고기를 먹지 않는 행위가 그 자체로 훌륭한 환경운동임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이 운동은 의미 있다고 믿는다.
“건강사회를 위한 한약사회, 인천녹색연합, 유기농실천연구회 등 많은 단체가 ‘고기 없는 월요일’의 뜻에 공감해 함께하기로 결정했어요. 일주일에 하루 자발적인 채식을 실천한 사람들이 채식의 장점을 깨닫고 환경 사랑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채식은 인간이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