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팍스아메리카나의 실상을 관통하는 대서사

  • 안병찬│전 한국일보 부국장·언론인권센터 명예이사장 ann-bc@daum.net

    입력2011-07-20 1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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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하마드 알리의 인생 대서사는 미국을 관통하면서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일찍이 20대 챔피언일 때 그는 미합중국을 상대로 ‘1인의 전쟁’을 벌였다. 혈혈단신으로 총 없는 ‘반전(反戰)의 전쟁’을 전개했다. 기독교 백인이 기득권을 독점한 아메리카합중국의 모순에 대한 저항이고 캠페인이었다. 그 투쟁 과정에서 그는 기독교 노예 이름을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해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갖는다.

    그가 챔피언으로서 미합중국에 온몸을 던져 저항하던 모습은 팍스로마나(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노예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를 연상시킨다. 또는 이슬람 원리주의 전사로 팍스아메리카나의 철천지원수였던 오사마 빈 라덴의 일면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리의 개인사(個人史)를 통해 미국의 내면과 모순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원고는 당초 무하마드 알리가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하고 50주년이 되던 해인 2010년에 맞추어 기획한 것이다. 필자는 르포르타주 저널리즘의 형식에 따라 대반전의 연속인 알리의 서사적 삶을 재구성한다. 르포르타주는 역사성과 문학성을 지향하는 비허구적 저널리즘 기록 형식으로 깨끗한 서정, 냉철한 숫자, 체험에서 우러나는 명증(明證)을 근간으로 삼는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정글에서 ‘로프 타기’로 철권 조지 포먼을 눕히다

    1974년 10월30일 아프리카 자이르 킨샤사에서 열린 WBA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챔피언 조지 포먼이 알리의 강펀치를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들어가며

    흑인이자 이슬람교도인 무하마드 알리는 세계를 뒤흔든 ‘전설적인 복서’라는 명성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는 20년째 중증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고 평화주의자의 삶과 인도주의의 삶을 지향하면서 인격적인 크기를 더하고 있다. 1942년 1월17일생이니 올해 나이 69세다.



    6월18일은 미국의 ‘아버지의 날’이었다. 그날 무하마드 알리의 셋째딸인 해나 야스민 알리(34)는 CNN닷컴에 ‘나의 아빠, 무하마드 알리’라는 글을 올렸다.

    해나는 아버지 알리를 네 가지로 평가했다.

    첫째, 링 위에서나 밖에서나 맞닥뜨리는 어떤 갈등도 맞서 싸우기를 두려워한 적이 없다.

    둘째, 평화와 인도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이라크와 레바논 등지에서 미국 인질들을 석방하려고 평화의 사절로 활동해왔다.

    셋째, 중증 파킨슨병을 앓으며 동작이 무척 느려졌지만 남을 돕는 일에는 머리와 가슴이 명석하다.

    넷째, 자기의 명성을 선행에 활용하고 정당하게 구현한다.

    해나는 아버지의 자서전 ‘나비의 영혼’을 2004년에 집필했다. 그 내용은 부녀의 관계와 아버지의 영향 등에 관한 일화를 담은 것으로 이슬람 수피사상(수피즘)의 신비주의가 깔려 있다. 일찍이 기독교도에서 독실한 이슬람 신도로 개종한 알리는 코란에 계시된 정신적 내용을 깊이 명상하고, 수행을 통해 진리를 체득한다는 수피사상을 신봉하고 있다.

    나비의 영혼

    인도주의자의 아이콘으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알리는 천생 권투 챔피언으로서의 인연을 이어간다. 지난 5월2일 영국 기사 작위를 받은 백인 복서 헨리 쿠퍼가 77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사망했다. 쿠퍼는 1963년 런던 웸블리 경기장에서 열린 세기의 흑백대결에서 알리의 턱에 왼손 훅을 명중시켜 알리의 권투인생에서 첫 다운을 빼앗은 명장면으로 이름을 올렸다.

    알리는 “나의 친구 헨리 쿠퍼 경의 죽음에 할 말을 잃었다. 2년 전 우리는 영국 윈저에서 열린 마술경기를 함께 보았다. 그는 나에게 언제나 따뜻하고 감싸 안는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는 위대한 파이터였고 신사였다”는 요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51년 전에 그는 로마올림픽에 참가해 권투경기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열여덟 살이던 그는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본래의 흑인노예 이름으로 미국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출전했다. 올림픽 금메달 획득은 알리 권투역정의 화려한 출발을 알리지만, 동시에 흑인의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더 크고 넓은 삶의 무대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1년은 그가 3년 반의 유배생활을 거친 끝에 ‘정글의 혈전(더 럼블 인 더 정글)’이라는 이름을 얻은 경기를 치르고 35주년이 되는 해다. ‘정글의 혈전’은 그가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슬람식 새 이름을 가진 후 아프리카의 자이레공화국 수도 킨샤사에서 벌인 세계헤비급통합선수권 결정전의 이름이다.

    흑인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저항하고 분투하던 그는 20대 철권인 무패의 챔피언 조지 포먼을 상대로 정글의 혈전을 펴는 권투 무대를 십분 활용했다. 그리하여 킨샤사를 자기 의지대로 아프리카인의 자존을 한껏 선양하는 거대한 캠페인 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2011년은 알리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하고 27년이 지나간 해다.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안 것은 한창 활동할 나이인 42세였다. 뇌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안정(眼睛) 떨림, 경직, 자세불안이 나타나는 신경계의 퇴행성 질환이 파킨슨병이다. 세상은 알리가 치명적인 불행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어 그의 시대는 종막을 고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일반의 상식을 뒤집었다. 불치의 질병을 의연하게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 후기의 인생을 열어 나가기 시작한다. 알리는 한층 원대한 목표를 세워서 어린이를 아끼고 가난한 사람을 구조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봉사적인 일을 꾸준하게 실천하고 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이래 반세기를 이어온 알리의 인생 대서사는 용기 있는 칠전팔기의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삶의 대서사

    무하마드 알리는 젊은 시절 권투에 전념하면서 “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I am The Greatest)”라고 공언했다. 이 말은 허장성세가 아니었다. 그는 권투기술을 갈고 닦으며 챔피언의 길을 가면서 홍보 전략상 허풍 개그를 고안하고 심리 전략상 랩을 개발해서 스타덤에 오르는 데 활용했다. 권투전문가들은 그가 ‘정글의 혈전’에서 스스로 고안한 ‘로프 타기 기술’을 보여주자 놀라서 말했다. 미친 짓 아냐?

    그는 이처럼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며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세 번이나 오르는 대기록을 세우고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이 된다. 알리는 미국 땅에서 흑인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불평등한지 깨닫자 자기가 믿는바 흑인성(네그튜드)을 되찾기 위해 온몸을 던져 투쟁했다. ‘정글의 혈전’은 알리에게 일생일대의 권투행사이자 흑인인권행사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는 흑인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자각과 자부, 흑인성을 되찾기 위한 선구자적인 투쟁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중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오늘도 그는 중증으로 이행하는 파킨슨병과 하루하루 싸우고 있다. 병이 깊어서 이미 얼굴은 표정을 잃었고 몸은 행동력을 상실했지만 그는 어린이를 사랑하고 평화와 통합을 전파하는 박애주의자의 얼굴을 보여준다.

    2009년 여름에 알리는 조부의 뿌리를 찾아서 백인국인 아일랜드를 처음 방문했다. 그때 전담 사진작가로 일주일 동안 알리를 동반한 한국인 김명중씨는 한 인터뷰에서 알리가 어린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실례를 들었다.

    “…약이라도 먹지 않으면 몸 떨림을 막을 수 없다는데도 그는 자기 힘으로 서 있으려고 했다. 게다가 제 아이들을 보고나선 그렇게 환하게 웃어줄 수 없었다. 두 살 난 내 막내딸을 무릎에 앉히고 10분을 쳐다보았다.”

    알리의 딸 라셰다 알리도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가 늠름한 자세를 결코 잃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아버지는 한 번도 ‘왜 내게 이런 병이…’ 하고 원망한 적이 없어요. 지금도 뚜렷한 자기 목표를 가지고 있지요.”

    철인(鐵人)과 철인(哲人)의 획을 긋다

    알리는 모든 세대와 소통하는 ‘마법의 인물’이다.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너무도 극적이어서 ‘살아 있는 현상’으로 여겨진다. 알리는 승리와 좌절과 극복을 통해 여러 가지 인간상을 드러냈다.

    그는 챔피언이고 예능인이다. 그는 저항자이고 선구자다. 그는 우상(아이콘)이고 박애주의자다. 이렇게 다면적인 역할로 무하마드 알리는 살아 있는 전설의 인간이 되었다. 그는 권투라는 타격기에서 주먹 하나로 영웅적인 챔피언이 된 철인(鐵人)의 모습을 넘어서, 권투에 문화와 사상을 혼입해 마침내 박애주의자가 되는 철인(哲人)의 모습을 보여준다.

    알리는 패배할 줄 알고 패배를 통해 또다시 승리할 줄 아는 용기로 진정한 ‘삶의 챔피언’이 되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의 역정을 시간대에 따라서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루이빌의 떠버리-건방진 챔피언-흑인 무슬림 개종-징집 거부-증오의 시간-순교-챔피언 재탈환-독점 행진(로드쇼)으로 이어진다고 정리했다.

    필자는 무하마드 알리의 삶을 따라가면서 그가 어떻게 대스타가 되고 서사적 영웅이 되고 흑인성의 선구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불치의 병마와 싸우면서 어떻게 평화를 향하는 박애주의자가 되었는지, 일련의 삽화와 사건을 찾아가며 서술하려고 한다. 연대기 순으로 알리의 권투역정과 인생행로를 풀어나가되, 그중에서 의미가 큰 부분은 획(劃)을 그어 강조하고 해석해나갈 것이다.

    이야기의 도입부는 아프리카 킨샤사에서 벌어진 ‘정글의 혈전’의 극적인 장면으로 카메라가 접근하며 확대하는 ‘줌 인’ 형식을 빌려서 서술할 것이다. 마침 필자는 ‘정글의 혈전’이 벌어지고 1년 반 뒤에 킨샤사에 가본 일이 있기에 현장 묘사에 그 경험을 혼입한다.

    주인공 이름은 성장 연대에 따라서 처음에는 캐시어스 클레이로 써나가다가 1963년 이름을 바꾼 후부터는 무하마드 알리로 표기하기로 한다.

    ‘로프 타기’ 신기술

    다들 이제 경기는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텔레비전으로 보면 포먼이 허덕이는 알리를 때려잡는 듯 보입니다. 알리는 로프로 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거기 등을 기댄 거예요.

    내 기사에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지붕에 뭐가 있는지 보는 자세라고 썼지요. 그런 알리에게 포먼이 맹공을 가했어요. 곧 쓰러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주 빠르고 맹렬한 포먼의 공격이었어요.

    노먼한테 그랬죠.

    “걸렸어.”

    다운되는 건 시간문제였어요. 로프가 바닥까지 반쯤 내려갔어요.

    동굴에 웅크린 자세 같았죠.

    좀 어설프지만 아주 강력한 양 훅, 이게 마치 애들 싸움처럼 되어갔어요.

    그 라운드와 다음 라운드, 그 다음 라운드도 알리는 로프에 기댄 채 포먼에게 계속 뭐라고 했어요.

    별난 광경이었어요. 그 와중에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