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한 연예계 속성, 최근에 알았어요”
- 가족 같은 친구 유재석, 인간미 넘치는 김용만
- “마당발로 알지만 인간관계 협소해요”
- 커피중독자에 ‘담대한’ A형
- “남편에게 자존심 세우지 않아요”
- 종편, 노는 연예인들에게 기회의 장이 되길
그녀를 처음 만난 건 1999년 봄쯤으로 기억된다. 당시에도 그녀는 시쳇말로 ‘꽤 잘 나가는’ 배우이자 인기 진행자였다. 인형처럼 깜찍하고 세련된 외모와 달리 소탈한 성격에 내숭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후에도 여러 번 인터뷰하면서 가까워진 그녀는 2005년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신랑은 그녀가 스무 살 때부터 15년간 사귄, 일본 유학파 출신 사진작가 손혁찬(41)씨였다.
결혼식 이후 한동안 보지 못했던 그녀를 8월29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한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가리키며 그녀가 말했다.
“언니도 좀 들어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아.”
6년이란 세월이 무색할 만큼 그녀는 여전히 예뻤다. 꾸밈없고 솔직한 성격도 그대로였다. “살이 많이 쪘다”고 앓는 소리를 했지만 오히려 더 탄탄하고 볼륨 있는 몸매로 바뀌어서 건강미가 넘쳤다.
현재 그녀는 MBC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와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 외에도 케이블 TV E채널의 ‘다이어트 리벤저’를 단독 진행하며 예능계 최고의 안방마님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녀의 존재감은 MBC 21기 공채 탤런트로 선발된 지 2년 만인 1994년, 드라마 ‘서울의 달’에 출연하면서 발현되기 시작했다. 통통 튀는 캐릭터에 어눌한 충청도 사투리를 감칠맛 나게 연기한 덕에 예능국 PD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 단숨에 스타로 등극한 그녀는 이후 ‘장희빈’ ‘은실이’ ‘꿈의 궁전’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와 MC 활동을 병행했다. 방송 관계자들은 편안하고 친근한 진행으로 건강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을 그녀의 강점으로 꼽는다. 진행자로 받은 상도 여러 개다. 5월 말에는 백상예술대상 TV 부문에서 여자 예능상을 거머쥐었다.
▼ MC와 배우 중에 어느 쪽이 더 애착이 가나요.
“딱 반반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연기를 띄엄띄엄 했어도 예능에 ‘올인’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예능에 대한 애착이 커졌어요.”
“예전엔 재밌는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었어요”
▼ 2008년 OCN에서 방영된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끝으로 연기활동이 뜸한데 일부러 안 하는 건가요.
“할 시간이 없어요. 일주일에 사흘만 찍는 드라마가 어디 있겠어요. 드라마를 하려면 시간을 풀로 비워둬야 하거든요. 대신 영화는 어느 정도 시간 조절이 가능해요. 하고 싶은데 현재로선 여유가 없어요. 시간도 맞고 좋은 기회가 오면 해야죠.”
▼ 욕심나는 배역이 있나요.
“절 편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요. 모험이나 변신, 이런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섣불리 했다가 밑바닥이 드러날 수 있겠더라고요. 예전에는 새롭게 변신하거나 눈물을 잘 흘리면 연기 잘한다는 이상한 선입관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 분야를 정말 전문가처럼 해내는 것도 높이 사잖아요. 전에는 사람들이 절 재미있는 사람으로 보는 게 싫었어요. 재미있게 봐주면 그걸 더 개발했어야 하는데 확 싫은 거예요. 개그맨도 아닌데 날 웃기게만 보니까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묘했어요. 좀 이상한 구석이 있었죠.”
▼ 재미있는 캐릭터로 비치는 게 불편했나 보네요.
“개그맨처럼 되게 웃겨야 한다는 주문, 그런 게 있었어요. 내가 개그맨이라면 이해하겠는데 나한테 ‘웃겨주세요’ 하니 은근슬쩍 반감이 생겼어요. ‘왜 웃기라는 거지?’ 하면서 더 안 웃기고 그랬어요. 그때는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였어요. 지금은 남을 즐겁게 한다는 것이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교감한다는 뜻이라는 걸 알아요. 진작 깨달았어야 하는데 그때는 못난 생각에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
▼ 이제 웃겨달라는 주문이 거슬리지 않나요.
“지금은 웃기려고 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호호호.”
남자 MC계는 강호동과 유재석이 양강 구도를 다져왔지만 여자 MC 중에서는 김원희를 최고로 친다. 김원희가 진행하는 예능프로그램이 대부분 롱런한다는 점에서다. 2004년부터 진행해온 ‘놀러와’ 외에도 ‘헤이 헤이 헤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등 그녀가 진행한 프로그램은 대부분 장수했다. 비결이 뭘까.
“어쩌다 보니 프로그램마다 장수를 하네요. 파트너 복이 많아서일 거예요. 일 욕심을 내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죠. 일이 들어온다고 다 하진 않았거든요. 프로그램을 색깔 없이 이것저것 막 하지 않고 소화할 수 있는 만큼만 안정적으로 유지해왔어요. 일부러 자기관리를 한 건 아니에요. 연기자라는 자존심을 지키려고 다작을 하지 않은 건데 결과적으로 그게 저한테 도움이 됐어요.”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장수하지 못한 것이 지난해 방송한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 2’다. ‘패밀리가 떴다’ 후속인 이 프로그램은 5개월 만에 종영했다. 왜일까.
‘놀러와’의 힘
“힘들었어요. 저랑 좀 안 맞았어요. 막상 해보니까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였고요.”
▼ 유재석씨가 후임으로 추천했나요.
“그건 아니고 담당 PD가 저랑 친해요. 마침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저 역시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어요. 늘 안정적인 안방마님 스타일을 지켜온 게 내심 미안하더라고요. 저 자신은 물론 시청자에게도 색다른 자극이 필요하겠다 싶어 선뜻 응했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의욕만 앞세웠더라고요.”
▼ ‘놀러와’는 팀워크가 좋다고 소문나 있던데….
“정말 가족 같아요. 작가가 바뀌긴 했어도 보통 3~4년씩 가요. ‘놀러와’를 위한 전문적인 팀 같아요. 그게 ‘놀러와’를 끌고 가는 힘인 것 같아요. 방송 끝나고 그대로 돌아간 적이 없어요. 고정 식구들은 꼭 남아서 뒤풀이 비슷하게 해요. 그 재미에 팀워크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아요.”
▼ 유재석씨와는 동갑내기 친구고 워낙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서 오피스커플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 거 있어요. 결혼하고 나서 한번 재석이에게 흑염소를 해줬어요.”
▼ 남편에게도 해줬나요.
“우리 남편은 흑염소 안 먹어요, 냄새난다고 싫어해요.”
▼ 유재석씨 반응은 어땠나요.
“고맙게 받았죠. 우리는 스스럼없이 선물도 자주 하고 그래요. 가족 같은 사이니까.”
▼ 남자 MC 중 호흡이 가장 잘 맞는 사람은 누군가요.
“유재석씨는 친구여서 편하고, 인간미 넘치는 건 김용만씨예요. 난 김용만씨가 참 좋더라고요. 누가 더 좋고 나쁘다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은 양보할 줄도 알고 인간적이에요. ‘자기야’ 할 때는 녹화도 되게 빨리 끝나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도 같이 했었어요. 오래된 사이라 스스럼이 없어요. 워낙 진행을 잘해서 언제든 흔쾌히 받쳐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에요.”
▼ 공동 진행을 할 때는 서로 멘트를 더 많이 하려고 신경전을 벌이잖아요.
“보이지 않게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지죠. 말을 더 많이 하려고 욕심내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자끼리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게 너무 싫어요. 상대가 욕심내면 그냥 너 해라 그러고 말아요. 인정사정없이 치열하게 하는 건 체질에 맞지 않아요. 분위기가 너무 치열하면 조용히 그만두는 스타일이에요. 내심 상처 받거든요. 험난한 연예계에서는 누구를 밟고 일어서는 일이 흔하다는데, 전 눈과 귀가 꽉 닫혀가지고 그런 걸 느끼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이곳이 되게 치열한 곳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때 겁이 확 나더라고요. 내가 진짜 겁 없이 했구나. 개그맨도 아니고 라인도 없는데…. 2~3년 전부터 연예계가 얼마나 치열한 곳인지 보이더라고요.”
▼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계기라기보다는 눈을 좀 떴다고 할까요. 나이도 있고 남의 일에도 참견하다보니 눈이 떠지더라고요.”
▼ 데뷔 20년이 다 돼서 연예계 속성을 알았다니 놀랍네요.
“그것도 복인 것 같아요. 전 방송국에서 누가 높은 사람인지도 몰라요. 누가 인사시켜줘야 알 정도예요. 기를 쓰고 ‘올인’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런가 봐요. (연예계 속성을) 뒤늦게 알았다는 사실이 좀 슬프긴 하지만 영원히 몰랐으면 더 좋았을 뻔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으니까요. 이제는 윗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도 좀 하고 그래야 할까봐요. 근데 누군지 알아야 인사를 하죠. 그러니 제가 얼마나 미웠겠어요. 나이가 적길 하나. 뭐가 정답인지는 모르겠는데 이제는 겁이 나요.”
▼ ‘자기야’는 부부이야기라서 진행하며 배우는 게 많을 것 같아요.
“그 프로는 뭐랄까. 그냥 겉핥기로 보면 ‘부부가 나와서 왜 남편을 까고, 부인을 까고 그래? 왜 부부생활을 들추는 거야?’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근데 저처럼 결혼했거나 지속적으로 본 사람은 다른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건강한 비교를 할 수 있죠. 굉장히 교육적인 프로그램이에요.”
김원희식 부부클리닉
▼ 주부로서, 아내로서 잘하고 있나요.
“잘할 수 있는 건 잘해요. 잘할 수 있는 것만, 한 우물만 파죠. 호호호.”
▼ 집에서 살림은 하나요.
“하죠. 잘 못해서 그렇지. 맞벌이 부부니까 가사를 분담해요. 빨래와 설거지는 주로 제가 하고, 청소는 우리 남편이 해요. 그것 말고도 웬만한 건 다 해줘요. 식구가 둘밖에 없으니까 치울 게 많지 않거든요.”
▼ 재테크는 어떻게 하나요.
“펀드도 하고 주식도 하고 남 하는 것 조금씩 해요. 예전에는 수입을 부모님이 전적으로 관리해주시고 전 용돈 타 썼어요. 그러다 직접 관리해보니 수익률 올리는 방법을 잘 몰라서 수입이 생기면 무조건 보통예금에 맡겼어요. 그랬더니 은행 PB(자산운용관리사)가 왜 보통예금을 하냐며 조언을 해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재테크에 조금 눈을 떠서 많은 돈을 중국펀드에 넣었는데 막차를 타서 큰 손해를 봤죠. 미국발 금융위기로 폭락했거든요. 보통예금에 넣을 걸 하고 후회했죠. 공격적인 투자는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더라고요. 전 펀드나 주식 중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걸 찾아서 해요.”
▼ 잘하는 요리가 뭔가요.
“부대찌개요. 남편도 좋아해요.”
▼ 나름의 비법이 있나요.
“그냥 김치찌개에다가 소시지만 넣으면 맛있어요. 망칠 일도 없고 소시지만 넣으면 부대찌개가 되던 걸요.”
▼ 남편이 호남에 성격도 순해 보이던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내가 하는 거에 비해 불만 없는 걸 보면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 약간의 예민함 같은 건 둘 다 있지만 ‘자기야’ 하면서 이런 생각이 참 많이 들었어요. 남편은 내가 충분히 지적당할 만한 사유가 됨에도 이해해주고, 내 일을 최우선으로 배려해주는구나.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가 많은데 그 친구들과 아무 때나 만나는 데 불편함이 없게 해줬구나 하고요.”
▼ 부부싸움을 안 하겠네요.
“왜 안 해요. 우린 스무 살 때부터 만나서 티격태격 엄청 많이 싸웠는데 오래 끌지 않아요. 사랑만은 아니고 믿음, 의리 같은 복합적인 감정으로 함께한 세월이 20년이니까 서로 자존심 세우는 게 불필요한 감정이라는 걸 알아요. 남편한테 자존심 세우지 않아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자존심이 안 상해요. 자존심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을 못하면 골이 깊어지잖아요. 웬만하면 미안하다고 해요. 다만 기 싸움할 때가 있죠. 이번에는 미안하다고 안하겠어, 그 정도지 심각하게 문제를 키우지 않아요.”
▼ 지혜롭네요.
“우린 서로한테 실례를 안 해요. 좀 독특해요. 상대방의 생활에 가리지 않고 침범하고 서로 간섭하고 치명적으로 상처주고 그러지 않아요. 둘 다 A형이라 그런지 막장으로 가지 않아요. 예를 들어 시댁이나 시어머니를 욕해서 막 싸운다든지 그런 적이 없어요.”
▼ 미안한 마음을 어떤 식으로 털어놓나요.
“문자로 알릴 때도 많고, 둘 다 커피 중독자여서 먼저 커피를 권하면 그게 화해의 제스처예요. 같이 있으면 커피를 진짜 많이 마셔요. 서재에서 날 부르면 벌써 커피구나 감이 와요. 그럼 내가 선수 치죠. 커피 좀 타와 하고요. 그 말을 누가 먼저 꺼내느냐가 중요해요. 두 잔 타오면 화해하죠.”
학창시절과 자화상
김원희는 1남4녀 중 둘째딸이다. 네 자매는 모두 친정이 있는 일산신도시에 모여 산다. 나고 자란 곳은 서울이지만 20대 초부터 줄곧 일산을 지키고 있다.
▼ 학창시절에는 어떤 아이였나요.
“수줍음이 많았어요. 친구들끼리 있을 땐 까불고 잘 놀았는데 선생님이 발표 같은 걸 시키면 얼굴이 시뻘게지곤 했어요. 대차긴 했는데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지금도 나서서 뭘 하라면 못하겠어요.”
▼ 성격이 화통해 보여요.
“꽁하진 않아요. 뒤끝 없어요. 앞뒤가 다른 걸 싫어해요. 진솔한 걸 좋아해요.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솔직하게 터놓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예전에는 내가 A형이라 소심한 줄 알았어요. 부끄러움을 많이 타니까요. 근데 까발리지 않아서 그렇지 소심하진 않더라고요. 대차더라고요. 큰일을 당했을 때 의기소침해지기보다는 담대해지거든요.”
▼ 원래 꿈이 뭐였나요.
“고교시절엔 스튜어디스나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고 더 어릴 때는 선생님을 꿈꿨어요. 다른 사람을 좀 바른 길로 이끄는, 훈장 선생님 같은 면이 있어요. 선생님을 해도 좋았을 것 같아요. 가르치는 데 소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이 분명하거든요. 피곤한 스타일이긴 하더라고요. 바른 길로 안 가면 지적하니까. 나한테 그런 면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내가 곱게 늙고 있는지를 신중하게 생각하다가요.”
▼ 어쩌다 연예인이 됐나요.
“친구가 혼자 가기 쪽팔린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같이 가서 시험을 봤어요. 근데 말도 안 되게 나만 붙었어요. 걔는 프로필 사진도 멋지게 찍었고, 전 스냅사진을 냈거든요.”
▼ 그 친구와 지금도 연락하나요.
“그 친군 천국 갔어요. 교통사고 나가지고. 성품도 착하고 얼굴도 참 예뻤어요. 혼혈아같이 생겼거든요. 재능 많은 CF모델이었는데 20대 초반에 그렇게 됐어요. 당시 광고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었어요. 아마 걔가 살아 있었다면 굉장한 스타가 됐을 거예요. 그 친구가 절 이 길로 인도해준 셈이에요.”
▼ 연예인이 된 걸 후회한 적이 있나요.
“후회라기보다는 내 적성에 맞나, 연예인을 하기엔 끼가 없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은 가끔 해요.”
▼ 뜻밖이네요.
“난 끼가 없어요. 60%는 운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그걸 반성했어요. 내가 왜 ‘올인’하지 않을까. 뭐든지 100%를 다하지 않을까 하고요. 내 맥시멈이 저기면 여기까지만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도전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사활을 걸어보겠어, 모험을 해보겠어, 그런 걸 정말 싫어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금방 포기해버려요. 연예인으로서 치명적인 성격이죠. 목표지점에 다다르기 위해 실패하더라도 해보려고 하는 악착같은 면이 없어요. 모질지 못해요. 간혹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 슬럼프가 있었나요.
“한 2년 전에 우울증이 약간 있었는데 금방 극복했어요.”
▼ 가세가 기운 적이 있나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출판사를 하시다가 크게 한번 망하셨죠.”
▼ 충격이 컸겠네요.
“언니는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하더군요. 저보다 세 살 위인데 되게 힘들었대요. 사춘기였나봐요. 저도 망한 건 알았지만 그 때문에 의기소침한 적은 없어요. 중·고등학교 때까지 형편이 피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잘 적응했어요. 그 나이 땐 친구가 전부인데 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았거든요. 더욱이 집만 후져졌지, 부모님이 하루에 몇 천원씩 주셔서 먹고 쓰는 데 불편함이 없었어요. 전학 초기에는 집을 보여주기 민망해서 친구들을 데려가지 않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데려갔어요. 좀 지나니 아무렇지 않더라고요.”
▼ 친구가 많았겠네요.
“많았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다가가기보다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더라고요. 그것도 축복이죠. 근데 난 사람들을 사귀고 친해지는 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해요. 아는 사람은 많지만 마당발은 아니에요. 내가 마음 가는 사람들하고는 친하게 지내지만, 다가온다고 다 받아주지는 않아요. 지금도 친한 사람들하고만 어울려요. 대신 한번 친해지면 오래가는데 인간관계는 협소해요. 그래서 우리끼리 이러죠. 우린 깨지면 안 된다. 같이 놀 친구가 없다고요. 하하하.”
네 자매의 동업
▼ 여가를 어떻게 활용하나요.
“방송과 사적인 일에 적절히 반반씩 할애하고 있어요. 시간 활용을 잘해요. 다만 쇼핑몰과 화장품 사업 때문에 취미생활하기가 녹록지 않아요. 친구들과 만나 수다 떨기가 취미고, 교회 가서 기도하기가 특기죠(웃음).”
화장품 사업과 쇼핑몰 운영은 이제 삶의 일부가 됐다. 화장품 브랜드는 스캔들. 그녀가 기획과 디자인에 참여한 화장품에는 ‘김원희’라는 이름이 제품명에 들어간다.
“직접 써보고 의견도 내고 온라인 판매도 제가 맡아서 해요. 온라인 총판을 하는 셈이죠.”
패션 잡화를 파는 쇼핑몰 키미쇼(www.kimmyshow.com)는 그녀를 비롯한 네 자매가 함께 만들었다. 문 연 지는 3년째다. 쇼핑몰을 운영하는 연예인은 대부분 자신이 직접 모델로 나서지만 그녀는 예외다.
“연예인 쇼핑몰이지만 제가 전면에 나서진 않아요. 패션 스타일링과 촬영할 때 옷 입히고 상품 들여오는 일을 맡고 있어요. 한마디로 운영 담당이죠. 나이를 계속 먹을 테니 길게 봐서 옷 입는 건 안 해요. 사진 찍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요(웃음).”
▼ 어쩌다 쇼핑몰을 하게 됐나요.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어요. 연예인들이 한창 쇼핑몰 붐을 탈 때 네 자매가 모여 함께 할 만한 일을 찾다가 이거다 한 거죠. 동생이 일본에서 디자인학교를 나왔는데 출산 후 회사를 그만둔 상태여서 전공을 살리고 싶어했어요. 저나 다른 자매도 패션에 관심이 많아 쇼핑몰 운영을 만만하게 봤어요. 사무실도 얻고 한 1년 동안 구상만 하다가 재미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 어떤 점이 힘든가요.
“운영이라는 게 여간 힘들지 않아요. 자매들끼리 더 돈독해지는 건 좋지만 재미로 할 만한 일은 아니에요. 섣불리 가볍게 본 경향이 없지 않아요.”
▼ 여느 연예인 쇼핑몰 운영자처럼 공격적으로 홍보하지 않던데 이유가 뭔가요.
“성격이에요. 알리려면 막 나서서 ‘내 거예요’ 해야 하는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그렇게까지 해서 뭐하나 싶더라고요. 연예인이라는 걸 내세워 막 적극적으로 알리는 건 장사꾼 같아서 내키지 않아요. 페어플레이를 해야죠.”
▼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보양식이 있나요.
“따로 먹는 건 없어요. 편식 안하고 뭐든 잘 먹는 게 건강 비결이에요.”
‘따사모’와 친구들
▼ ‘따사모’ 활동을 계속하고 있나요.(따사모는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2003년 4월 그녀와 정준호, 장동건, 차태현 등 10여 명의 연예인이 만든 봉사단체다. 처음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동료 연예인들을 돕는 일에 주력하다 소외된 이웃까지 살피고 있다. 김원희는 바쁜 시간을 쪼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 공로로 2007 한국자원봉사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계속하는데 드러내놓진 않아요. 따사모 연예인들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길 원해요. 2004년 12월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가 반납한 것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예요. 봉사한다고 카메라 대동하는 건 우리 모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거든요. 사단법인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봉사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우리랑은 안 맞더라고요. 봉사는 우리 안에서 만족하고 하면 된다, 그냥 하던 대로 하자, 그렇게 된 거예요.”
▼ 회원 수는 늘었나요.
“서른 명이 넘으니 많이 늘었죠. 아직 탈퇴한 사람이 없어요. 군대에 간 사람 빼고요.”
▼ 정기적으로 모이나요.
“매달 한 번씩 모여 회의를 해요. 어디를 도울지는 그때 정하고 봉사는 ‘번개’로 해요. 예정된 것도 있지만 예정되지 않은 건 시간 되는 사람끼리 모여서 하고 끝나면 흩어지죠.”
▼ 운영 경비는 어디서 조달하는 건가요.
“다 우리 돈으로 운영해요. 회비를 정기적으로 걷고 CF 출연료의 일부를 내놓기도 해요. 외부에서 도움 받은 적이 없어요. 현재 300여 명의 초중고생에게 장학금을 계속 주고 있어요.”
김원희는 따사모에서 부회장 겸 총무를 맡고 있다. 그녀와 절친한 탤런트 김선아(38)와 김정은(35)도 따사모 회원이다. 세 사람을 가리켜 연예계에선 ‘3K’라고 부른다.
▼ 세 사람의 우정은 변함이 없나요.
“여전하죠. 지겨운 사이죠. 하하하.”
▼ 셋이 어쩌다 가까워진 건가요.
“마음이 잘 통해요. 나이로 사귀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그런지 나이를 잘 의식하지 못해요. 김규리, 채림하고도 친해요. 따사모 회원은 아닌데 자주 어울려요. 우린 서로 할 말은 비교적 정확히 해줘요. 잘못한 게 있으면 잘못했다고 하라고 시키거든요.”
▼ 누가 잘되면 샘내진 않나요.
“우린 그런 거 없어요. 연예계의 생리를 잘 알잖아요. 안 되다가도 일어서고 잘 되다가도 힘들어지는 일이 다반사니까. 좀 힘들다고 꼬꾸라져 있는 애도 없어요. 설령 꼬꾸라져 있어도 우리가 가만있겠어요. 잘 다독여주죠. 또래 여자끼리면 티격태격할 수도 있는데 워낙 연령대가 다양해서 그런지 잘 지내요.”
▼ 만나면 뭐하나요.
“예전에는 같이 술도 마시고 그랬는데 지금은 다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걸 좋아해요. 그러다보면 대여섯 시간이 후딱 지나가요. 새벽까지 세상 사는 이야기하면서 수다 떨 때도 있고요. 예전에는 젊음으로 놀고 좋은 데도 가고 그랬는데 요즘은 얘기가 주를 이뤄요.”
▼ 술이 센가요.
“아예 못 마셔요. 술자리 분위기를 좋아해서 예전에는 자주 갔어요. 맨정신에도 술 마신 것처럼 잘 놀았거든요. 가라오케 가서도 술 대신 안주발 세우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 놀아요. 맛있는 데 가서 수다 떨고 커피 마시는 게 좋아요. 한자리에서 커피를 계속 시켜 마셔요. 커피 중독자처럼(웃음).”
▼ 어떤 커피를 좋아하나요.
“지금은 다방커피 끊었는데 전에는 되게 좋아했어요. 채림이가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나 차를 갖고 와서 따뜻한 물을 주문해 타주곤 했죠. 걔가 그런 걸 잘 챙겨요. 다방커피가 (몸에) 안 좋다고 해서 원두커피 마셔요. 커피 크림이 기름덩어리잖아요. 딱 살찌는 짓만 했더라고요.”
“거액 스카우트 제의 없었다”
올 연말에는 종합편성채널이 일제히 개국한다. 이 때문에 방송가에서는 몇몇 MC와 PD를 놓고 거액 스카우트설이 나돌았다. 예능프로그램 MC로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다진 김원희에게도 여러 채널에서 물밑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거액 스카우트 제의, 그런 건 아니고 얘기는 있지만 하나 정도 하겠죠. 많아야 두 개 아니면 세 개고.”
▼ 종편을 보는 시각은 어떤가요.
“노는 연예인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노는 연예인이 너무 많거든요. 연예인 중에서도 상위 몇 %만 일을 하고 내 또래 중에도 활동하는 사람이 몇 없어요. 문제예요. 연예인 중에는 생계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힘든 사람도 많아요. 일차적으로는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자기 탓이지만 선택의 폭이 좁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데 어쩌겠어요. 종편을 통해 일할 거리가 많이 생겨서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 ‘자기야’ 출연자 중에도 많지 않은가요.
“많아요. 그래도 남자보단 여자가 나아요. 남자연예인들은 가장이니까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요. 여자가 같이 벌면 그나마 나은데 그렇지 않은 집도 많더라고요. 거기다 아이 있으면 학비며 생활비 때문에 고민하고 고통 받는 사람을 많이 봤어요. 사실 연예인은 자기 재능을 즐겨야 제대로 발현되는데 생계가 막막하면 자기에게 맞지 않거나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해야 하잖아요. 굳이 예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그런 건 되게 안타깝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원희는 마른기침을 네댓 번 하더니 냉수 한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편도선이 부었다더니 아무래도 말을 많이 시킨 게 화근인 듯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인터뷰를 마쳐야할 시간이었다.
데뷔 후 줄곧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고, 이별과 이혼이 흔한 21세기에도 20년을 함께한 남자와 변함없는 부부애를 나누고 있는 김원희. 그래서 마무리는 그녀만의 삶의 지혜를 듣는 것으로 대신했다.
“부부가 일심동체라면서 모든 감정을 공유하는 건 좋지 않아요.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함께 나누면 둘 다 지칠 것 같아요. 한 사람은 힘이 있어야 힘없는 다른 사람을 끌어주죠. 부부라도 독립적인 생활이 필요하다고 봐요. 서로 의지한답시고 침범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후벼 파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이런 게 조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부부가 좀 독특해서 공식적인 자리에선 이런 이야기 안 해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