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특한 방식으로 고장 난 자본주의의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한국 학자가 있다.
- 미국에서 ‘주류’를 공부한 ‘일류’ 학자가 사회과학은 엉터리라고 선언하고
- 궤도를 벗어났다. “돈이 신의 반열에 올랐다. 자본주의가 고장 난 것은
- ‘돈교’ 탓이다. 종교는 종교로 해결해야 한다.” 그는 스티브 잡스, 안철수,
- 보길도의 사례를 들면서 ‘불교자본주의’가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 1953년생<br>● 고려대 행정학과·오하이오대 경제학과<br> ● 일리노이대 대학원 석사(회계학)<br>● 동국대 대학원 석사(불교학)<br>●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대학원 박사(경영학)<br>● 동국대 대학원 박사(불교학)<br>● 텍사스대(오스틴) 경영대학원 교수 <br>●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장<br>● 고려대 정부학연구소장<br> ● 現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둘로 나뉜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이후의 자본주의’가 화두로 떠올랐다. 학자들은 자본주의를 보정하겠다면서 ○○자본주의, △△자본주의 식의 신조어를 내놓는다. 자본주의가 아닌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죽일 놈이라는 것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화제작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한다. ‘세계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여기, 특별하면서도 외로운 방식으로 고장 난 자본주의의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선 한국 학자가 있다. 윤성식(58) 고려대 교수.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는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가 아닙니다. 전지전능한 돈을 믿는 ‘돈교’가 세상을 지배합니다. 돈은 신의 반열에 올랐어요. 양극화로 신음하는 세계는 탐욕, 이기심을 부추긴 돈교 탓입니다. 사회과학으로는 대안을 내놓을 수 없어요. 종교 문제는 종교로 해결해야 해요. 기독교, 이슬람교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믿습니다. 돈이라는 신에 대항하기 어려워요. 돈은 가까이 있는 신이고, 다른 신은 멀리 있습니다. 불교는 신이 없어요. 인간이 부처입니다. 불교가 대안을 마련할 수 있어요.”
무슨 소리인지 알 듯 모를 듯하다.
그가 또렷한 발음으로 덧붙여 말한다.
“신고전학파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은 엉터리예요. 정치학, 사회학, 행정학도 마찬가지고요. 불교에 답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주류’를 공부한 ‘일류’ 학자다. 고려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후 미국 오하이오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일리노이대 대학원에서 회계학을 배웠다. UC버클리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2004~2006년) 위원장을 지냈다. 2003년엔 감사원장 후보에 올랐으나 정치적 중립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낙마했다. 신고전학파경제학을 공부하고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궤도를 벗어난 까닭은 뭘까.
“사회과학은 엉터리다”
“위기도 예측 못하는 학문이 과학입니까? 일이 터진 후에나 그럴싸하게 합리화하는 게 과학이에요? 시장주의 경제학은 기본 가정부터 틀렸어요. 회의를 느꼈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헛짓을 했구나 하고요.”
▼ 궤도를 벗어났다는 비판은 없나요.
“그런 말 들어요.”
▼ 학문적으로 완전히 전환한 거군요.
“시장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불교자본주의를 연구하는 일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막스 베버(1864~1920)가 기독교를 틀 삼아 자본주의의 태동과 성장을 분석했다면(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참조) 그는 불교를 이용해 ‘뭔가 잘못 돌아가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막스 베버가 이상적이라고 여긴 합리적, 시민적 경영과 노동의 합리적 조직을 특징으로 하는 청교도적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정치적, 투기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험가적 자본주의예요. 베버의 표현을 빌리면 천민자본주의죠. 베버는 기독교가 자본주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밝히면서 자본주의가 종국엔 기독교를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고 내다봤습니다. 불교가 해답을 줘야 할 때예요.”
2006년과 지난해 2월 그는 각각 두 번째 석사학위,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논문 제목은 ‘불교의 재정과 회계에 관한 연구’, 박사학위논문 주제는 ‘시장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의 불교자본주의 연구’다. 올해 10월에는 ‘불교자본주의’(고려대 출판부 펴냄)라는 제목의 학술서도 냈다.
아이패드.
중국에는 오래된 동아시아 학문과 서구에서 수입한 학문을 융합해 연구하는 정치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 행정학자가 적지 않다. 한국에선 비슷한 시도가 별로 없다. 궤도를 벗어나면 학계에서 괴짜로 몰리기 십상이다.
“과거엔 자유시장주의자였지만 경제학이 말하는 시장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이기심과 탐욕을 마음껏 발휘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카를 폴라니가 설파한 대로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이라는 것은 책상머리에서 숫자로 만들어낸 환상일 뿐입니다. 인류학, 역사학, 심리학의 성취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어요.”
카를 폴라니(1886~1964)는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면서 인류학자다. 경제학의 마이너리티이던 그가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전 세계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그는 참혹한 실패로 끝난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그렇듯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이는 자기조정 시장 또한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일 뿐이라고 본다(카를 폴라니, ‘거대한 전환’ 참조).
학자, 정치인, 언론의 거짓말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보는 그의 관점은 제도주의자인 장하준, 폴라니의 그것과 엇비슷하다.
“3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쳤습니다. 정부가 손을 떼면 강자만의 시장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어요. 시장의 자유는 강자의 자유이기 쉬워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합니다. 시장권력이 그렇죠. 시장권력이 정치권력과 결합해 무소불위가 되고 있습니다. 권력자인 기업이 학자, 정치인, 언론과 합작으로 정부는 작을수록 좋다,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면서 사람을 속여온 형국입니다. 시장의 역할과 정부의 역할을 칼로 쪼개듯 구분해서는 안 됩니다. 시장의 영역과 정부의 영역을 나눠놓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출발부터 잘못돼 있는 거죠. 정부가 하는 일과 시장이 하는 일을 일도양단(一刀兩斷)할 수 있습니까.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기세가 다소 꺾였지만 시장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견해를 포기했다기보다는 시장에 일부 거품이 존재했다는 것만 인정할 뿐입니다. 과거 역사를 볼 때 시장에 대한 맹신은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용수철처럼 되살아날 거예요.”
▼ 비판만 하는 것은 쉬운 일 아닌가요. 폴라니도 대안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공동체주의를 연상케 하는 막연한 견해를 밝히기는 했지만…. 뭘 어떻게 바꾸자, 이렇게 해보자 같은 또렷한 의견은 없더군요.
“장하준 교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불교에 답이 있습니다.”
▼ 불교와 자본주의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입니다만….
“기독교로 경제를 들여다본 막스 베버의 주장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잖아요. 불교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생뚱맞게 보일 수 있어요. 불교는 경제와 거리가 멀다 생각하기 쉽죠. 불교는 이슬람교, 기독교보다 자본주의에 더욱 친화적이에요. 출발할 때부터 시장과 자본에 우호적이었고 재물에 긍정적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말한 무소유는 출가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에요. 기독교, 이슬람교는 이자 받는 것을 금기했습니다. 불교는 이자를 받으라고 가르쳐요. 불교는 적극적이고 현실 지향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습니다.”
말허리를 잘랐다.
▼ 불교자본주의라는 게 도대체 뭡니까.
“불교자본주의는 연기자본주의예요. 시장과 사유재산 제도를 인정하고 적극 활용하지만 시장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자본주의입니다. 시장친화적이지만 시장의 결함과 파괴성에 주목합니다.”
아리송하다. 갤럭시탭으로 용어부터 검색해봤다.
[연기사상 : 삼라만상 중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서로 관계를 가지면서 존재한다]
그가 덧붙여 말한다.
“시장자본주의가 생산력을 폭발적으로 늘린 것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기심, 탐욕을 더욱 부추겨야 좋은 세상이 될까요?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면 경기가 후퇴할까요? 이기심을 발휘하고 탐욕을 부려야 돈을 번다고 가르치는 게 시장주의 경제학입니다. 불교자본주의는 이기심, 탐욕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고 소비자도 효용을 극대화해서는 안 됩니다. 시장은 가만히 놔두면 무한경쟁, 승자독식, 이익독점, 불법, 탈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요.”
절제를 추구하는 젠 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스페인 빌바오 지하철.
“선하게 살면 성공하지 못하고 이기심, 탐욕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면 잘되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그런 모습 아닌가요. 재벌이 작은 규모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에 뛰어들어 중소기업을 도산시키거나 작은 기업을 집어삼키는 것을 경쟁이라고 할 수 없어요. 대자본의 이기심, 탐욕이라고 봐야 해요. 불교자본주의를 통해 악한 인이 좋은 과를 맺는 시스템을 고칠 수 있어요.”
▼ 경쟁은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지 않습니까. 경제학자들이 숫자로 증명해냈죠.
“불교자본주의도 경쟁의 가치를 옹호합니다. 불교경제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무조건 평등하게 나눠야 도적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대할 경우가 있으면 우대해 분배하고 성과가 좋은 사람에게 더 큰 몫을 분배하는 것은 윤리에 어긋나지 않아요. 무한경쟁은 안 됩니다. 승자독식으로 이어지고 종국엔 소비자에게 해를 끼칩니다. 공정하고 자비로운 무아적(無我的) 경쟁이 해법입니다.”
그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관계를 예로 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물건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삼성전자에 손해일까요? 이익일까요? 삼성전자에도 새로운 시장이 생긴 겁니다. 애플 광고는 삼성 광고이기도 해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라고 광고하는 거니까요. 태블릿PC도 마찬가지고요. 타인이 잘되는 게 나한테도 이득이 되는 거죠. 중소기업이 잘돼야 대기업이 잘되는 구조가 바람직합니다. 불교자본주의는 무아적 경쟁과 자리이타를 강조합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 타인의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행동하는 것을 규정한 원리. 자기를 위하는 것과 타인을 위하는 것이 동일하며 타인을 위하는 것이 자기를 위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인식을 갖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
그는 안철수 교수가 돈을 받지 않고 사람들에게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나눠준 것을 자리이타의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안철수의 자리이타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공정한 사회’ ‘상생 발전’이라는 어젠다가 그가 꾸려낸 불교자본주의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2월 출간한 동국대 박사학위 논문에 ‘초과이익의 사회적 공유’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공교롭게도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이름까지 비슷한 발상을 했습니다. 정 위원장의 구상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초과이익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불교경제학이 말하는 ‘초과이익의 사회적 공유’는 대기업, 중소기업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초과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본을 투자했다는 이유로 모든 이익을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대기업이 도산 위기에 처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구제금융, 세제지원 등으로 살려줍니다. 손실을 공유하는 거죠. 은행도 마찬가지고요. 손실은 공유하면서 이득은 독점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대기업이 낸 수익은 자본만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닙니다. 법인세만으로 기업이 이익을 사회와 공유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은 정 위원장의 주장에 대해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들어보지도 못한 용어”라고 했습니다.
“시장만 강조하는 교과서에 그런 내용이 있을 리 없죠.”
▼ 시장만큼 공정하고 평등한 장치가 없을 것 같은데요.
“틀린 얘기예요.”
▼ 사회주의 논리 아닌가요.
“손실의 공유에는 침묵하다가 이익의 공유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적 시각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억지예요. 손실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이익을 나누는 것은 생소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가 손실의 공유에만 익숙해져 있어서예요. 이익은 많은 사람의 노력이 모아져 나온 겁니다. 가장 좋은 것은 기업 스스로가 초과이익을 공공부문에 내놓는 것입니다만 그렇게 하는 기업이 많지 않을 겁니다. 한국처럼 대기업만 독식하는 국가는 많지 않습니다. 비자발적 사회적 공유의 방식을 연구해보려고 해요.”
▼ 불교자본주의는 복지국가에 호의적이겠군요.
“경전에서 상세하게 설한 이상적 사회가 복지국가입니다. 불교는 가난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최대한 충족해주는 국가를 지향해요. 북유럽 국가가 불교가 말하는 이상에 가장 가깝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유럽 국가를 무조건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 복지가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부자에게 돈을 더 많이 벌게 해 가난한 이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는 낙수(落水)경제론은 허구일 소지가 커요. 폴 크루그먼(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은 글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스웨덴의 한 카페에 앉아 칼럼을 쓰고 있다. 복지 하면 망한다더니 활기차게 잘나간다’. 불교자본주의는 정부가 공정하면서도 자비로워야 한다고 봅니다. 세금을 늘려 저소득층에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선한 인이 좋은 연을 만나는, 공정하고 자비로운 사회를 실현해야 연기적 경제관계가 가능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복지국가보다 더 중요한 게 공정한 사회예요. 불공정으로 가난하게 해놓고 생색내면서 돈이나 나눠주는 복지는 불교자본주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GDP의 환상을 버려라”
불교자본주의는 절제를 강조한다. 자리(自利)적 소유억제, 이타(利他)적 소유억제가 필요하다는 것. 막스 베버도 절제와 공동체성을 자본주의 정신으로 강조한 바 있다. 한국 우파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경제 자문역)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경제정책 기조를 바꿀 것이다. 시장의 방종을 내버려둬선 안 된다. 자본주의도 절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조선일보 11월2일자 참조).
“절제자본주의라는 말이 서구에서 유행합니다. 불교가 오랫동안 해온 얘기와 비슷하더군요. 빈자에겐 복지가 필요하고 중산층 이상에겐 절제가 요구됩니다. GDP(국내총생산)가 늘어난다고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게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 끄는 젠 스타일(zen style)이라고 들어봤죠. 미니멀리즘(minimalism·단순함을 추구하는 문화흐름)과도 상통하는 것인데, 젠 스타일의 그것처럼 사치도 인색도 아닌 중도적 생산과 소비가 필요해요.”
올해 9월 출장을 다녀온 스페인 빌바오의 지하철이 떠오른다. 건축계의 거장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지하철은 젠 스타일의 진수다.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아름다움을 극한으로 밀고 나간다. 미니멀리즘도 전 세계에서 뜨고 있다. 절제미를 강조한 북유럽 공산품이 각광받는다. 스티브 잡스가 단순함의 가치를 강조한 것도 불교의 영향 덕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티브 잡스 결혼식 주례를 스님이 섰습니다. 아주 절제된 소비를 했고요. 빌 게이츠가 이렇게 작은 집에서 온 식구가 사느냐고 말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청바지, 터틀넥 셔츠, 운동화만 몸에 걸쳤고요. 잡스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이패드가 세상에 나왔을 때 경쟁자를 당혹스럽게 한 게 뭐였냐면 품질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는 것이었어요. 잡스가 돈을 많이 벌려고 열정을 불사른 게 아닙니다. 혼이 담긴 제품을 내놓으니 저절로 돈이 벌린 거죠. 잡스의 삶은 불교자본주의에 투철한, 딱 들어맞는 모형이에요. 이익, 이기심을 극대화하려 하면 탐진치에 빠집니다.”
[탐진치(貪瞋痴) : 자기가 즐기는 것을 탐애(貪愛)해 구하고자 하는 것. ‘나’와 ‘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탐진치에는 고통이 수반되게 마련이죠. 랜든 존슨이라는 사람이 미국의 자수성가한 인물 100명과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돈이 아니라 가치를 좇아야 한다. 악착같이 돈을 벌려 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일, 또 세상을 위해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보길도의 인드라망 자본주의
한국에도 탐욕을 고발하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를 본뜬 시위가 상륙했다. 10월1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청년들이 상자에 들어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인드라망 : 인간과 자연이 조화로운 삶을 유지하고 인간과 인간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공동체]
“인드라망은 구슬이 달려 있는 그물망이에요. 각각의 구슬은 비어 있지만 다른 구슬로 인해 빛이 납니다. 한국은 이웃한 구슬을 떼어내려고 해요. 공동체가 붕괴하고 있어요. 얼마 전 보길도에 가서 들은 얘기인데, 보길도 동쪽지역은 관광으로 먹고살고, 서쪽은 전복양식으로 돈을 벌어요. 서쪽 사람이 동쪽 사람을 향해 ‘남을 재워주고 어떻게 돈을 받느냐’고 힐난한다고 해요. 전복양식 일이 고되어 몸이 불편하거나 늙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서쪽 마을은 수익을 쪼개 늙었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매달 1인당 80만원씩 줍니다. 인드라망을 보여주는 기막힌 사례예요. 이기심, 탐욕에 의해서 세상이 발전하는 게 아닙니다.”
▼ 윤리를 회복하자는 당위만 얘기하는 것이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것 같은데요.
“윤리의 회복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일을 한 사람이 이익을 누리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해요. 좋은 인이 좋은 연을 만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 한국에서 개인이 ‘불교자본주의 윤리’대로만 생활하면 망할 것 같습니다.
“나도 자신 없어요.”
그는 불교자본주의는 세계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 그게 가능할까요.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죠. 2008년 이후 세계가 불교자본주의가 주장하는 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기는 합니다. 이기심, 탐욕으로 인해 같이 죽는 길로 갈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일어나면 세계적 차원에서의 협조가 가능하다고 봐요.”
▼ 주류 학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시장주의자들은 무슨 소리냐면서 당연히 반대하고요. 생각보다 많은 사회과학자가 일리 있다고 지지해주고 있습니다.”
▼ 고작 이런 내용으로 기존의 자본주의를 대체하겠다는 것이냐는 눈초리도 있을 듯한데요.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이야말로 단순하고 평이해요. 시장에서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하고 자본이 거둔 이득을 독점하는 것을 허용하고 재산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불교자본주의는 혁명에 가까운 획기적 전환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대안이 현실성을 갖는 데 필요한 구체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실행되지 않으면 효과를 거둘 수 없기에 현실에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부분적으로 실행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부분적인 실행을 거치면서 일관성 있고, 체계성 있는 사상체계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게을리 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석가모니의 유언을 소개하면서 웃는다. 낙엽이 흩날리는 교정이 우중충한 날씨 탓에 을씨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