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호

연극‘게르니까’로 한국 관객 만난 극작가 페르난도 아라발

  • 글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사진 / 지호영 기자

    입력2011-12-22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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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게르니까’로 한국 관객 만난 극작가 페르난도 아라발
    노인은 작았다. 금빛 문양을 화려하게 수놓은 중국풍 재킷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관객 가운데서 그를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미소를 머금은 듯 부드러운 눈빛도 ‘부조리극의 대가’라는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극작가 페르난도 아라발(79)의 힘은 무대 위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2011년 12월 서울에서 공연된 연극 ‘게르니까’는 아라발이 1961년 집필한 희곡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 이 공연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아라발과 연극이 끝난 뒤 극장 객석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지난 50년간 세계 각국에서 이 작품을 100번 이상 봤는데 이번 공연이 가장 좋았다. 가슴이 뛰고 눈물이 흘러 감정적으로 많이 격앙된 상태”라며 입을 열었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게르니카 마을 폭격 사건을 소재로 삼은 이 연극은 강한 반전 (反戰)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당시 나치는 새로 개발한 무기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민간인 주택에 폭탄을 투하했다. 이때 무너진 집의 잔해에 깔려 생매장된 할머니와 그를 꺼내주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할아버지가 이 작품의 주인공. 노부부는 서로를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농담을 건네고 ‘나를 사랑하나요’ 물으며 존재를 확인하지만, 끝내 죽음을 맞고 만다. 아라발은 “1959년 집필한 첫 희곡의 소재도 전쟁이었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전쟁터 속의 소풍’을 썼다. 이후 모스크바에 갔다가 북한 극단이 그 작품을 공연하는 걸 보며 감회에 젖은 기억이 난다”고 했다.

    ‘전쟁터 속의 소풍’도 ‘게르니까’처럼 평범한 이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의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최전선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 자포에게 부모가 면회를 온다. 싸온 음식을 펴놓고 함께 피크닉을 벌이려는 찰나, 적군 병사 제포가 들이닥치자 자포는 그를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한다. 그러나 결국 모두 폭탄세례를 받고 죽고 만다는 얘기다. 스페인 출신인 아라발은 세 살 때 스페인 내전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내 연극은 이스라엘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도 공연되고 있다. 전쟁은 우리 주위에서 늘 벌어지고,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가는 전쟁을 계속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그것이 왜 나쁜지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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