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귀로(歸路)에서 베이비부머가 묻는다,
- “아픈 청춘은 그래도 행복하지 않으냐”고.
- 삶이 그믐달처럼 오그라드는 줄도 모르고 달려왔다.
- 허리가 휜다. 허무가 엄습한다.
- 아내는 어느덧 ‘낯익은 타인’.
- 누가 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
- 슬프다. 하지만 울지 않는다.
- 아니, 소리내 울지 못한다.
“쓰는 놈(記者)을 생업으로 삼은 지 20년이 더 지났다. 고발과 폭로가 전문인 사회부 기자질을 오래해선지 정서가 가문 논바닥처럼 메말랐다. 니체가 말한 무리(群衆)의 도덕에 동참하는 비굴함을 견디기 힘들었던 나는 시류와 대세에 영합해 강자에게 아부하는 자들과 한 줌의 권력을 쥐고 위세를 떠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비웃느라 내게 주어진 삶이 그믐달처럼 오그라든 줄도 몰랐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믐달처럼 오그라든 줄도 몰랐다”는 문장이 아프게 다가왔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튿날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를 샀다. ‘동아일보’ 서평이 뇌리에 남아서다.
“서평 담당 기자로 최근 1년간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슬프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닥친 문제이자 당장 먹고사는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리라. 요약하면 이렇다. 청춘만 아프냐? 50대는 더 아프다. 다만 소리 내 울지 않을 뿐….”(‘동아일보’ 3월 8일자 참조).
책은 한달음에 읽혔다. ‘삶이 그믐달처럼 오그라드는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온’ 50대의 삶이 ‘날것’으로 담겨 있었다. 공교롭게도 책에는 ‘정서가 가문 논바닥처럼 메말랐다’는, 앞서 언급한 선배의 토로도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교우해왔다는 것을 4월 11일 송 교수를 직접 만나고 서야 알았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는 송 교수가 다양한 배경을 지닌 베이비부머 10명을 심층 인터뷰한 후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엮은 ‘이 시대 50대 인생 보고서’다. 사회학 이론과 개념은 낮은 수준에서만 들어가 있다. 글쓴이의 개인사를 씨줄, 타인의 개인사를 날줄로 삼아 엮은 ‘사회사’다. 50대에게는 ‘동시대의 기록’으로 읽히고, 아랫세대에는 ‘선배 세대의 시대사’로 읽힌다.
불혹(不惑)의 기자는 베이비부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알지 못했고, 알고자 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선거 직후인 지난해 12월 21일 테니스클럽에서 운동을 함께 하는 20대 후반 여성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50대 투표율 보셨어요? 그 꼰대들 미친 거 아니에요? 오라버니는 그렇게 한심하게 늙지 마세요, 제발.”
20대는 50대의 자식 세대다. ‘버르장머리 없이…’라는 비아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 역시 ‘아버지 세대’가 걸어온 삶의 궤적과 오늘 그들의 고민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사설(辭說)이 길었다. 지금부터 주인공 송 교수 얘기를 들어보자. 1955년 11월(음력) 생인 그는 1955~1963년생을 가리키는 우리나라 베이비부머의 맏형 격이다.
▼ 이 책, 누구 읽으라고 썼습니까.
“50대가 많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잘 읽었다면서 보내오는 e메일도 50대가 대부분이에요. 어제는 1952년생 남자 분이 전화를 했습니다. ‘딱 내 얘기다,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 나도 베이비부머에 끼워달라’고 하더군요. 정책입안자가 정책을 만들 때 이 책을 참고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학자로서 그는 세대를 ‘학력, 직업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달라도 해결해야 할 시대 과제와 인생 숙제가 엇비슷한, 동질적 경험을 공유한 연령 집단’으로 정의한다. 세대 갈등은 생활 방식, 인생 숙제가 다르고 동질적 경험이 부재한 연령 집단 간에 발생하는 것이리라. 기자는 20~30대가 50대와 소통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 따님은 읽고 뭐라던가요.
“울었다고 해요.”
선배 세대가 걸어온 날것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가슴이 먹먹하지 않으면 감정이 ‘가문 논바닥’처럼 메마른 것일 게다.
▼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데요.
“그래요? 고맙죠.”
독자 반응이 좋아 고무된 듯하다. 1954년생 독자가 보내왔다는 엽서를 보여준다. K씨는 엽서에 이렇게 썼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 우리의 자화상이에요. 30년 8개월 근무한 직장에서 명퇴하고 코엑스에서 꽃집 매니저로 일합니다. 선배, 동료가 대책 없이 무너지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요. 베이비부머가 겪는 심적, 육체적 갈등을 대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 ‘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는 어쩌면 이렇게 우리 세대의 노래일까요?”
당신이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아
거리를 헤매다가
견디기 힘든 밤이 찾아올 때
당신을 위로할게요
당신편이 되어줄게요
어둠이 몰려오고 세상이 온통 고통으로 가득할 때
당신이 이 험한 세상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되어줄게요
-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사이먼＆가펑클
‘마지막 유교 세대’
‘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는 1970년대 대학가 구호였다. 송 교수는 “자신들이 몸을 누여 만든 다리가 어디로 연결될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1960년대와 1980년대를 잇는 정신적 교각을 설치하려 했던 것이 베이비부머의 1970년대였고, 청년들의 외로운 몸부림이었다”고 적었다(‘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208쪽).
송 교수는 베이비부머를 가교(架橋) 세대면서 마지막 유교 세대라고 규정한다. 근대를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자유주의자 김수영이 시(詩) ‘거대한 뿌리’에서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일갈했듯 베이비부머는 이단(異端)의 세대였으나 전통과 온전히 결별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일 법한 ‘서울대 교수’도 팔순 넘은 부친을 부양하는 장남이며 두 딸의 학비를 걱정하는 가장이다. 노후 문제를 해결할 자원 또한 넉넉하지 못하다.
“베이비부머는 리(里), 읍(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지방의 시(市)로 나아갔으며 대도시에서 가정을 이뤘습니다. 누군가는 대학에 갔고, 누군가는 공장에서 산업 역군이 됐어요. 세계 역사에서 한국의 50대처럼 압축된 경험을 한 집단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실패에 고무줄을 감아 만든 장난감 차로 유년을 보낸 소년이 자동차산업을 일궜습니다. 냇물에 고무신 띄우면서 놀던 소년이 조선산업을 창출했고요. 베이비부머의 헌신과 재능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없었을 거예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베이비부머는 1인당 국민소득 50달러 시대를 산 부모와 5000~1만 달러 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자식 세대의 의식과 취향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제삿날을 국경일보다 중요시 여기던 부모를 둔 마지막 유교 세대가 각종 ‘스펙’으로 무장한 자식 세대에게 떠밀려 현장을 떠나기 시작한 겁니다.”
그는 “누가 베이비부머의 다리가 되어줄 것인가?”라고 자문한다.
“197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는 ‘이단의 자식’이에요. 우리는 무지하게 쓸쓸합니다. ‘정신적 아버지’를 살해까지는 안 했지만, 버렸어요. 어릴 적부터 효(孝)와 충(忠)으로 단련된 의식 속에는 ‘아버지’가 군림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아버지를 소멸시켜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유교라는 굴레에서 온전하게 벗어나질 못했어요. 충, 효 같은 낱말에 매여 살았거든요. 우리는 근대, 현대를 갈라놓은 절벽에서 다리 구실을 해냈습니다. 가난했으되 당당한 부모와 개성 넘치는 자녀를 잇는 가교 말이에요. 그런데 현장에서 물러날 때가 되니 다리가 돼줄 사람이 없는 겁니다. 성공했다는 이들일수록 마음이 헛헛해요. 아내와의 사이도 안 좋고요. 성공은 자기를 버리면서 노력해야 오는 거거든요.”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슬픈 50대 이야기, 그 속에 내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진 58세의 서울대 교수도 ‘삶이 그믐달처럼 오그라든’ 초로의 선배와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외쳤다.
“허섭스레기…나는 이런 걸 생산하느라고 20년을 동분서주한 것이다!”
사회과학이 부질없어지고 칼럼 집필이 지식인의 거짓으로 다가왔다. ‘나의 생산품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아닌가, 나의 칼럼은 네가 못한 일을 실행하라고 독자에게 일갈하는 허위의식의 산물 아닌가.’
그는 어느 날, 귀로에 운전대를 맡긴 대리운전 기사와 함께 술집을 찾아 통음했다. 그가 적은 그때 일의 기록은 이렇다.
“모임에서 마신 술 탓에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대리기사는 중견기업 부장을 끝으로 퇴직한, 나와 거의 동년배인 베이비부머였다. 생활비를 보탤 겸 저녁 알바를 뛴다고 했다. 그의 지난 얘기를 들으면서 한없는 서글픔이 몰려왔다. 그것은 경험과 기억의 공통성, 그동안 감당했던 인생의 짐과 앞으로 걸어갈 길의 공통성에서 비롯된 서글픔이었다. 한때 동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잘나가던 명문대학 졸업생, 필자와 학창시절의 기억을 공유한 이들이 직장생활을 접고 이제 귀가를 명받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외출 준비를 한다. 이렇게 물러앉을 수는 없다. 베이비부머는 누구라도 소설 한 권 분량의 얘깃거리를 갖고 있는데, 고령으로 접어드는 예순다섯 살에는 두 권 분량으로 늘어날 것이다. 아니면 장편소설을 구상할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것이 한국 사회이고 베이비부머의 운명이다.”
은퇴하거나 실직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일자리를 두고 다툰다. 지난해 대선에서는 세대 대결도 벌어졌다.
“3% 승리를 만들어낸 세력은 베이비부머 중하층에 포진한 500만 명가량입니다. 노후 대책은 없는데, 부모 봉양과 자녀 부양의 짐을 잔뜩 진 가장이죠. 급진 변혁보다 점진 개혁을 선택한 배경에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도 깔려 있습니다. 못 배워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는 기억 말이에요.”
‘공고 출신 박 회장’
▼ 베이비부머의 자식 세대는, 책에 나오는 ‘공고 출신 박 회장’을 보면서 “아버지 세대는 공고만 나와도 성공할 수 있지 않았느냐”고 되물을 것 같습니다. 젊은 세대 태반이 비정규직, 계약직이에요.
“50대가 욕을 먹어도 싸요. 양극화 구조는 베이비부머가 구축한 겁니다. 빈약한 복지제도와 사회로의 진입 장벽을 높여놓은 것이 그렇지요. 반성해야 해요. 고도성장에 청춘을 바친 우리 역시 스스로 구축한 구조에 갇혀 대책 없이 노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20~30%는 우리의 잘못이고, 70~80%는 자본주의가 무거워져서입니다. 지금 한국은 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형국이에요. 1만 달러 시대가 열렸을 때(1995년) 사회제도 개편에 나섰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한국식 자본주의 자체가 붕괴해버렸습니다. 경제를 정상으로 되돌려 놓느라고 사회제도를 손볼 여력이 없었고요. 그러다 경제는 간신히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되돌아온 자본주의는 냉혹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복지 프로그램을 수용하기는 했지만 골격을 바꾸는 데는 관심이 없었고요. 그래서 지난해 대선이 ‘무상 복지’와 ‘맞춤형 복지’의 대결이 된 겁니다. 무상복지 쪽이 50대에게 참패를 당했고요. 수업에 들어가면 3, 4학년 학생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요. 걔들더러 ‘우리를 욕하지 마라. 욕먹을 짓 했지만 우리가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말했더니 ‘잘 알아요. 그런데 힘들어요’라고 하더군요.”
▼ 2장의 제목이 ‘아픈 청춘은 그래도 행복하다’인데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답을 한 건가요.
“맞아요. 일부러 그렇게 했어요. 너네는 아프면 울지만 우리는 울지도 못 한다는 거예요. 부모 세대, 자식 세대가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죠. 정치가 풀어야 할 일입니다.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밤새도록 논의해야 할 문제인데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송호근 교수는 “사회과학자보다 문장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스마트폰 전화번호부에는 750명이 입력돼 있다. 인맥을 분류해보니 크게 네 갈래로 나뉘었다.
①가족관계망 : 가족들로 구성된 관계망으로, 사생활의 핵심을 이룬다. 혈연을 바탕으로 정서적 안정을 생산하는 관계망. 약 30명
②친밀관계망 :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이, 친한 동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선후배들로 약 50명.
③친근관계망 : ②와 비슷한 성격과 유형의 집단이지만 ②에 비해서는 심리적 거리가 먼 그룹이다. 100여 명.
④공적관계망 : 직장생활을 하며 맺은 공적 관계에 속한 사람들로서 사생활 얘기를 하기 어렵고 이해 관심의 개폐 여부에 따라 언제든지 관계가 단절된다. 500여 명.
“은퇴하기 전에는 ④를 주로 만납니다. ②와는 오랜만에 만나기 일쑤죠. ③, ④는 현직에서 물러나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소멸됩니다. 은퇴 후에는 ③과의 관계를 일부 유지하다 ②로 후퇴하게 됩니다. 결국 퇴직자에게 의미가 있는 관계망은 ①, ②예요. 그래서 서럽고 갑갑한 겁니다. 그때면 아내는 ‘낯익은 타인’이 돼 있을 소지가 커요. 30년 동안 무관심으로 방치해온 대가를 치르는 것이죠. 가설이지만, 성공한 사람이 부부관계가 나쁠 소지가 큽니다.
서울대 교수들도 마찬가지예요. 정년퇴직하면 아무도 안 봐줍니다. 소설이나 그림을 그리는 등 아주 다른 일을 하면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명예교수의 논문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신문사마다 은퇴한 교수들이 쓴 칼럼이 쌓여 있어요. 은퇴한 교수들이 실어달라고 언론사에 있는 제자들에게 보낸 거죠. 제자들은 ‘교수님 은퇴하셨잖아요?’라면서 글을 실어주지 않죠. 그런 일을 겪으면서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겁니다. 정서적, 심리적으로 홀로 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생물학적 나이보다 주관적 나이가 젊어야 하고요.”
기자의 스마트폰 전화번호부의 관계망 비율도 송 교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②는 이따금 만나 어릴 적 쓰던 욕지거리 주고받으면서 진창 술을 퍼 마시지만, 장례식장 같은 곳에서 아주 오랜만에 볼 때도 많다. ①과는 주중에는 대화를 거의 못하고 쉬는 날에도 따로 놀 때가 많다.
▼ 교수님은 은퇴 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나도 준비는 하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편이라 더 힘들 것 같기도 해요. ‘어딘가로 미련 없이 간다’고 마음은 먹고 있는데, 점심 먹을 곳 없나 하고 학교 근처를 맴돌면 어떡하나 싶어요.”
내 푸른 청춘의 골짜기
“경제적 책임 이행 불가를 선언할 때는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더 이상 구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수반돼야 공정하고 합리적인 가족관계가 유지된다. 퇴직한 당신은 가장으로서 수행해야 할 제일 기능을 상실한 사람이기에 기존과 동일한 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대신, 상실한 기능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기능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이 ‘다른 기능’이 무엇인지는 찾아봐야겠지만, ‘새로운 계약’이 필요한 것만은 틀림없다. ‘동물의 왕국’에서 본 장면은 조금 슬프다. 늙은 사자가 가족들을 경호할 힘이 없어지자 초원을 헤매는 젊은 수사자의 습격을 받아 죽어가고, 가족들은 곧 젊은 수사자의 차지가 된다. 동물의 신계약이 체결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에게 새로운 계약이란 가족들에게서 정서적 심리적 거리를 두는 일이다.”(‘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 212쪽)
그는 가수 조용필과 친하다. 2006년 ‘동아일보’에 ‘내 마음속의 별-스타가 본 스타’에 ‘조용필 편’을 기고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지금은 함께 노래방에 가 ‘조용필 앞에서 조용필 노래를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이다.
4월 11일 그의 서울대 연구실에서 4월 23일 출시될 CD에 담긴 조 씨의 노래를 들었다. 10년 만에 나오는 19번째 앨범 ‘헬로(Hello)’에서 조 씨가 작곡한 노래는 하나다. 송 교수가 가사를 썼다. 제목은 ‘어느 날, 귀로에서’. 인터뷰 문답을 녹음한 파일에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조씨의 노래가 담겼다. e메일로 가사를 보내달라고 했다. 걱정이 됐나보다. e메일에 이렇게 써 있었다.
“노래 녹음한 거 부인에게 알려주면 안돼요. e메일로 보내달라고 하면 안 되니까. 23일까지 꾹 참고 기다려주세요.”
앞 세대도 뒤 세대를 잘 모르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서른아홉인 기자의 아내는 버스커버스커, 10센치의 노래를 좋아한다. 조 씨의 신보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무실에 돌아와 ‘어느 날, 귀로에서’를 오랫동안 들었다. 눈물이 났다.
돌아오는 길목에 외롭게 핀 하얀 꽃들
어두워진 그 길에 외롭게 선 가로등이
빛나는 기억들 울렁이던 젊음
그곳에 두고 떠나야 하네
이별에 익숙한 내 작은 가슴에
쌓이는 두려움 오오오오~
내 푸른 청춘의 골짜기에는 아직 꿈이 가득해 아쉬운데
귀로를 맴도는 못다 한 사랑 만날 수는 없지만 이제는 알 것 같은데 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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